▲ 이규섭의 부활과 함께 삼성이 6연패의 사슬을 끊고 펄펄 날고 있다. 그간 이규섭은 발목 대수술 후 고통스런 재활의 시간을 극복해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정지원(정): 최근 삼성이 연승 행진을 벌이고 있어요. 선수 입장에선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해요?
이규섭(규): 전적으로 수비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6연패 후에 팀 전체가 정신적인 재무장을 했어요. 얼마 전 합류한 외국인 선수 헤인즈의 역할도 연승에 커다란 힘이 됐고요. 저 자신도 다시 신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열심히 수비를 하게 됐죠. 팀 실점이 확 줄어들다보니 수비에 대한 자신감이 승리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졌어요.
정: 이규섭 선수는 지난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 지명이라는 영광을 누렸고 데뷔 첫 해부터 신인상에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거머쥐는 초특급 행운의 주인공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는 강력한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 같진 않아요.
규: 저도 느끼고 있는 부분이죠. 돌이켜보면 항상 너무 잘나가는 선배들과 함께 플레이를 해 와서 그런 것 같아요. 신인 때부터 주희정, 문경은 등 당대 최고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뛰었어요. 당연히 우승의 초점도 그 형들에게 맞추어졌죠. 남들은 평생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우승을 저는 프로에서 두 번이나 차지했는데요. 두 번째도 서장훈, 강혁 등 역시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일구어내면서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을 비켜갔죠.
정: 꽤 속상했겠는데요?
규: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래서 전 아직도 더 보여줄게 많은 선수라도 자부하고 있어요. 어느새 서른세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됐지만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답니다(웃음).
정: 센터 출신인데 외곽 슛에도 일가견이 있어요.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죠?
규: 사실 슛이 나름대로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외곽 전문 슈터는 아니었죠. 그런데 제가 상무에 입대하자 국내 최고의 센터였던 서장훈 선수가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거예요. 그 소식을 접하면서 포지션 변경에 대한 고민이 싹텄고 남은 복무기간 동안 당시 상무 추일승 감독님의 양해 하에 슈터 변신 과정을 거치게 됐죠.
정: 그래도 센터와 스몰포워드는 구조적으로 다른 포지션인데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어요. 뭔가 특별한 이유나 전환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정: 지난해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동부에게 무너졌었는데 패배도 패배지만 당시 이규섭 선수가 받았던 압박감이 대단했다면서요?
규: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요. 그 당시 발목이 너무 아팠었는데 언론에서는 ‘삼성은 이규섭만 살아나면 된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거예요. 마치 저의 부진 때문에 팀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부담스런 상황,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발목에 별 이상 없음’으로 진단을 했어요. 나중에 미국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니까 한국에 있는 병원들이 완전히 오진을 했던 거였어요.
정: 미국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왔는데요?
규: 이미 제 발목 인대가 끊어져서 뼈 위로 감겨 올라갔다는 거예요. ‘닥터 쾅’이라는 중국계 미국 의사가 “네가 정말 이런 상태에서 경기를 했냐?”며 오히려 놀라서 묻더라고요. 더 황당한 건 인대가 끊어진 지 너무 오래돼서 성패가 불투명한 대수술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한국에서 이미 두 차례나 MRI 촬영 결과 ‘이상 없음’ 진단을 받았었는데 생각할수록 너무 화가 치밀더라고요. 다행이 대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한숨 돌릴 수 있었죠.
정: 큰 수술과 고통스런 재활과정 속에서 느낀 바도 많았겠네요?
규: 그럼요. 5개월 동안 하루 10시간씩 매일 재활 훈련을 했는데 한 3개월 지나니까 정말 죽겠더라고요. ‘다시 뛸 수는 있을까’라는 의문 속에서 무조건 트레이너 형이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와서 뛰어보라’는 지시에 두려운 마음으로 시도했더니 뛸 수 있는 거예요. 결국 시범경기를 2주 앞두고 처음으로 농구공을 잡았죠. 한 달 동안 러닝과 슈팅 연습을 하고 나서 곧바로 경기에 투입된 거예요. 특히 코트에 나선 첫 날은 승패나 기록에 대한 욕심보다 다시 뛰게 됐다는 벅찬 희열만 느꼈어요. 새삼 농구에 대한 열정과 고마움이 생겨났죠.
해가 바뀌어 33세가 된 이규섭. 스타 선배들 사이에 낀 불리한 세월이 길었던 그도 어느새 베테랑 선수가 되었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건만 스타들이 즐비한 소속팀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환경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그의 긍정적인 사고는 이규섭의 저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긍정의 힘이 선수생명을 건 대수술을 선택하게 했고 고통스런 재활의 지옥훈련을 견디게 하지 않았을까. 성숙해진 이규섭이 있어 삼성의 상승세가 더욱 예사롭지 않다.
CJ미디어 아나운서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