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정지원(정): 트리플 더블 기록 작성은 서로 전혀 다른 세 가지 카테고리의 기준을 다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정말 어렵다고 하는데요. 득점이나 리바운드보다는 어시스트 10개를 채우기가 가장 힘들지 않았나요?
박정은(박): 4쿼터 7분이 남았을 때 이호근 감독님께서 저에게만 살짝 귀띔을 해주셨죠. 옆에 있던 (이)미선이가 “언니! 왜?” 하고 묻더라고요. 내가 “어시스트 2개 더 하면 트리플 더블!”이라고 말했더니 그 때부터 기록을 의식하게 된 후배들이 긴장하면서 쉽게 넣을 골도 못 넣는 거예요. 3분이 흘렀는데 어시스트 추가는커녕 20점 이상 나던 점수 차만 10점 이내로 좁혀졌어요. 그 때 미선이가 “언니! 공을 내게 줘”라고 하더라고요. 찬스가 생기면 미선이에게 패스했는데 1분 만에 어시스트 2개가 추가되면서 대기록을 수립하게 됐어요.
우연의 일치인지 인터뷰 이틀 후에는 이미선이 KB국민은행을 상대로 생애 첫 트리플 더블(15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을 달성했다. 종료 2분여를 남겨놓고 2개의 어시스트가 부족했던 이미선의 패스를 받은 박정은이 깨끗한 3점슛을 성공시키며 트리플 더블을 도왔다.
정: 이번 올스타 투표에서 투표인단의 99% 지지를 얻어 최다득표의 영광을 누렸는데 혹시 예상했던 결과였나요?
박: 솔직히 못할 줄 알았어요. 벌써 서른두 살인데 나이는 역시 속일 수 없더라고요. 팬 투표에서는 김은혜(우리은행)가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고 들었어요. 전 3위를 차지했고요. 기자단 투표 등 종합득표에서 1위에 오른 것이기 때문에 예상을 못했어요. 결혼을 하고 나니 남성 팬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고 나이가 들면서 골수팬들만 남더라고요. 사실 어린 팬들에게 저는 ‘언니’나 ‘누나’라기 보다는 ‘이모’정도로 느껴지겠죠(웃음).
박: (웃음) 처음에 후배 미선이와 함께 나갔어요.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약속을 했는데 운동을 마친 후라 배가 너무 고파서 음식을 많이 시켰고 신랑은 달랑 과일주스 한 잔을 시키는 거예요. 황당한 생각이 들어 “왜 밥을 안 드세요?”라고 물었더니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서요”라고 답하더라고요. 너무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오는 길에 “미선아, 너나 만나라”며 시큰둥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었죠.
정: 그런데 막상 결혼해 보니 어떻던가요?
박: ‘모범답안’이에요. 피곤할 정도로 너무나 잘 챙겨주는 편이죠. 제가 운동을 하면서 합숙도 하기 때문에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내조가 많이 부족한 데도 잘 참고 이해해줘요. 지방에서 경기 끝나고 새벽에 올라오면 신랑이 그 때까지 잠 안자고 기다렸다가 데리러 나와요.
정: 요즘 남편의 인기가 워낙 높아져서 같이 다니면 사인공세가 박정은 선수 못지않을 것 같은데요?
박: 예전에 같이 다니면 저한테만 사인을 원하는 팬들이 몰렸죠. 그러다 남편이 <하얀 거탑>에 출연하면서 인지도가 상승하자 팬들이 반반으로 갈렸어요. 그런데 신랑이 ‘홍국영’역을 맡고 나서는 제가 완전히 밀려났어요. 남편이 인기가 높아진 것은 좋은데 한편으로는 씁쓸하더라고요. ‘스포츠가 드라마에게 이렇게 밀리는 구나’ 하는 안타까운 심정 때문에(웃음).
초등학교 시절 국가대표 센터 출신 성정아가 양쪽 무릎에 아대를 차고 치렀던 은퇴경기를 보면서 농구스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박정은. 이제 그 소녀가 자라서 농구 9단, 주부 9단의 칭송을 듣고 있다. 몇 년 후일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퇴장을 위해 오늘 흘리고 있는 그녀의 땀방울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CJ미디어 아나운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