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이렇다. 지난해 한 체육회 관계자가 체육회 비품 명단을 보다가 이 커다란 그림(높이만 4m가 넘는다)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재산가치가 있는 동산의 경우 기증자의 이름을 넣어 보관하는데 그림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김운용 전 IOC 수석부위원장이 대한체육회장으로 있을 때 개인적으로 기증한 것이었다.
“맞다. 내가 1999년께 개인적으로 구입해 대한체육회에 기증했다. 스포츠외교를 하다 보니 대한체육회에도 유명한 그림이 하나쯤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 재산가치도 높아지기 때문에 일석일조였다.” 김운용 전 위원의 회고다.
김 전 위원은 당시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후 사무총장, 총무부, 태릉선수촌 등이 동원돼 그림찾기 소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그림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보직을 맡은 김철수 태릉선수촌 관리팀장은 “솔직히 답답한 심정이다. 미술품의 경우 이전에는 대한체육회의 공식비품관리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뭐 그림의 이름이나, 장부상의 관리, 심지어 사진조차 없다(이 그림 실종 사건 후 사진까지 찍어 관리하고 있다고 함). 이전 근무자들에게 탐문한 결과 현재는 2005년 무교동에 있던 체육박물관을 태릉 국제스케이트장(2층)으로 옮길 때 없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칸딘스키의 그림은 1999년 김운용 당시 회장이 구입해 대한체육회에 기증했고, 워낙 덩치가 큰 물건이었던 까닭에 대한체육회가 있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 1층에 전시됐다.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배순학 씨는 “맞다. 확실히 그림이 있었다. 높이가 4m는 족히 됐고, 그림 내용은 뭐 계단이 있고, 좀 검은색 톤의 추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001년 인근 올림픽파크텔에 있던 서울올림픽기념관이 올림픽회관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이 그림은 미술 문외한인 체육인들에게 ‘애물단지’가 됐다. 워낙 높이가 높아 전시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 2000년 1월 증축한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하 빙상장)에 공간이 있어 입구 옆 2층 회의실로 올라가는 벽면에 설치됐다. 그런데 2005년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무교동에 있던 체육박물관을 태릉 빙상장 2층으로 옮겨버렸다. 무교동 공간에서 임대수익을 얻자는 목적이었다. 이때 박물관 소장품이 대거 옮겨졌고, 빙상장 2층은 시설 보수를 했다. 이 과정에서 빙상장 입구에 걸려있던 그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증언이 다른데 심지어 쓰레기로 분류돼 태워졌다는 얘기도 있다. 대한체육회는 현재 기증품의 경우 기증자의 이름을 넣어 관리하고 있다. 김운용 전 위원이 기증한 다른 그림 두 점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가장 고가이고, 가장 큰 칸딘스키의 그림은 사람들의 기억에만 존재할 뿐 감쪽같이 사라졌다.
미술품 가격전문 회사인 아트프라이스의 고윤정 팀장은 “이 경우 솔직히 가격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최근 2년간 국내에서 칸딘스키의 그림이 공식적으로 거래된 적은 없다. 작품의 크기, 재질, 예술성 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칸딘스키의 진품이라고 하면 가격 평가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로 고가일 것”라고 의견을 나타냈다. 칸딘스키의 그림은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쓰레기로 분류돼 불태워졌을까? 아니면 누가 슬쩍 가져가 비밀창고에서 잠자고 있을까? 정말 수수께끼 같은 ‘칸딘스키 명화 실종사건’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