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힘들다는 의사 표시를 했어도 결국에는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삼성전자였기에 프로축구연맹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매달렸다. 35억 원에 이르는 연간 후원 금액이 반토막 날 각오까지 하고 2009년 예산을 짜는 등 삼성전자가 마음을 돌리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2월 중순 상황은 완전 종료됐다. 삼성전자는 후원 철회를 재고할 방침이 전혀 없음을 프로축구연맹에 분명하게 알렸다.
# “이근호 맘 알겠다”
삼성전자의 후원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자 프로축구연맹은 새로운 후원사를 찾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굴지의 통신그룹과 접촉했고 모 은행과도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하지만 통신그룹은 회사 사정을 들어 난색을 보였고 은행 역시 금융감독원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야구단과 축구단을 동시에 운영하는 한 기업은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도 타이틀 스폰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 마당에 축구 쪽의 부탁을 덜컥 들어줄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준하 연맹 사무총장은 사석에서 “연맹 처지가 이근호 같다. 여기저기에서 테스트를 받고 입단을 추진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부정적이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넋두리로 던졌다.
# 회장사가 나서라?
2009 K리그 개막(3월 7일)이 코앞에 다가오도록 연맹이 타이틀 스폰서를 잡지 못하자 이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모 구단 단장을 중심으로 “연맹 회장사에서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프로연맹 회장을 겸하던 1998년 현대가 스폰서로 나섰고,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이 연맹을 맡았던 2001년에는 ‘POSCO K리그’가 있던 걸 언급하며 곽정환 프로축구연맹 회장을 압박했다.
이사들은 곽 회장을 몰아붙이면 타이틀 스폰서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지만 2009년 3월 현재, 곽 회장에게 ‘개인적으로’ 35억 원 규모의 돈을 당겨올 능력은 없었다.
지난해 12월 연임에 성공하면서 “타이틀 스폰서 문제는 내게 맡겨 달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곽 회장은 삼성전자가 떠난 마당에 35억 원을 한꺼번에 부담할 기업이 없다는 판단 아래 정규리그와 컵 대회 스폰서를 분리하기로 했다. 리그는 20억 원대 수준에서, 컵 대회는 10억 원대 수준에서 별도로 스폰서를 유치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여차하면 컵 대회 타이틀 스폰서 정도는 개인적으로 유치할 힘이 있다는 곽 회장의 계산이 깔려있었다.
# 급한 불은 껐지만…
이사들 요구도 있고 돌아가는 상황도 마땅치 않아 곽 회장은 결국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피스컵조직위원회가 K리그 컵 대회를 후원하도록 손을 썼다. 액수는 컵 대회 후원 규모 치고는 꽤 큰 12억 원.
애초 곽 회장은 3월 초에 피스컵조직위의 컵 대회 후원을 결정하고 12일 정도에 정규리그 타이틀 스폰서와 함께 발표할 생각이었지만 정규리그 스폰서 계약 협상 타결이 난항을 겪자 24일로 연기했고 그래도 결론이 안 나자 결국 24일 오후 늦게 컵 대회 타이틀 스폰서만 발표했다.
컵 대회 타이틀 스폰서를 발표한 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은 급한 불을 껐는데도 개운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회장사가 일시적으로 돈을 댈 수는 있지만 이제 누가 연맹 회장을 섣불리 하려고 들겠는가’라며 한숨을 쉬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연맹 이준하 사무총장은 “당장은 메인 스폰서를 잡지만 장기적으로는 복수의 오피셜 스폰서가 일정액의 후원금을 부담하는 J리그처럼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K리그의 브랜드가치가 올라가면 한 기업이 모든 금액을 혼자서 부담하기는 힘든 만큼 다자 스폰서 체제로 갈 생각이라는 얘기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