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그 가운데서도 20대 여배우의 뚜렷한 활약을 찾아보기 어려운 데는 복잡한 이유가 뒤섞여 있다. 단순히 여배우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환경’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최근 들어 변화가 극심한 TV 드라마 장르의 다각화의 여파가 고스란히 20대 여배우의 활동 위축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등 한류를 겨냥한 드라마가 늘어나는 분위기 역시 이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로맨스 줄고, 장르 드라마 늘고
요즘 TV에서 방송하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가운데 20대 여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한 KBS 2TV <태양의 후예>의 여주인공 송혜교의 나이는 30대 중반, 또 다른 화제작인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여주인공 고현정 역시 40대 중반의 나이다. 지상파 주말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KBS 2TV <아이가 다섯>의 주인공 역시 실제로 두 아이를 둔 엄마인 30대 중반의 연기자 소유진이 맡고 있다.
20대 여배우의 활동 부진은 최근 3~4년 사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방송가에서는 이들이 활동할 만한 무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짚는다. 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20대 배우들의 주요 무대로 꼽히는 로맨스 장르의 드라마가 사라지는 대신 범죄극이나 시대극 등 장르 드라마가 늘어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한때 ‘트렌디드라마’라는 장르로 자리 잡았던 로맨틱코미디 드라마는 이제 몇몇 인기 작가의 고유한 영역으로 치부되는 상황. 대신 범죄나 액션 등 하나의 장르에 치중해 집중적으로 사건을 파고드는 ‘장르 드라마’가 각광받고 있다.
박신혜는 20대 여자 연기자를 통틀어 가장 돋보이는 스타다. 사진출처=‘피노키오’ 공식 홈페이지
그나마 남아있는 로맨스 드라마는 대부분 ‘한류를 향한 기대치’로 중국 시청자까지 겨냥한 채 기획된다. 앞서 <태양의 후예>가 그랬고, 전지현과 이민호 주연으로 SBS가 11월 방송할 예정인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도 같은 시도를 한다. 이런 드라마의 제작진은 한류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하는 드라마들은 당연히 한류스타를 주인공으로 원한다”며 “여배우 가운데 한류스타는 전지현과 송혜교 정도이고, 20대에서는 박신혜가 유일하다”고 밝혔다.
# 아이돌 스타의 연기 도전…연기자는 더 위축
20대 여배우들이 주목받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한 데는 걸그룹 출신 스타들이 대거 연기 활동에 나선 상황도 간과하기 어렵다. 그룹 미쓰에이의 수지를 비롯해 걸스데이 혜리, AOA의 설현 등 걸그룹 소속 스타들이 경쟁적으로 연기 활동에 나서고 있다.
수지는 7월 방송을 시작하는 KBS 2TV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주인공으로 시청자와 만난다.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의 방송도 준비하고 있다. 그만큼 주인공을 엄선해 선택했고 그 자리를 수지가 차지했다. 혜리 역시 현재 방송 중인 SBS 수목드라마 <딴따라>의 여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걸그룹 멤버는 아니지만 아이돌 스타만큼이나 영향력이 큰 가수 아이유 역시 SBS가 8월부터 방송하는 드라마 <보보경심:려>의 주인공으로 시청자와 만난다.
이런 아이돌 스타들은 케이팝의 인기에 힘입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다. 화려한 활동은 그대로 각자의 인지도로 쌓이고, 자연스럽게 연기에만 집중해온 배우들보다 화제를 모은다.
걸그룹 멤버인 스타들이 대거 연기를 시작하면서 요즘 TV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의 나이 차이도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10살 차이는 ‘우스운’ 수준이다.
김고은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영화에서 출발한 그는 TV 드라마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영화 ‘계춘할망’ 스틸컷.
물론 20대 여배우의 활약이 저조하고 그들이 마음껏 자신의 재능을 펼칠 만한 무대가 적다고 해도 어김없이 빛을 발하는 연기자는 있다. 박신혜와 김고은이 대표적이다.
박신혜는 20대 여자 연기자를 통틀어 가장 돋보이는 스타다. 5∼6년 동안 거둔 성과는 박신혜를 향한 신뢰를 높이는 배경. 2009년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부터 2013년 <상속자들>, 2014년 <피노키오>의 성공을 기점으로 톱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더욱이 케이팝 스타가 아닌 이상 여배우가 한류의 주역이 되기는 어렵지만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과 콘서트를 겸한 아시아 투어를 진행하는 유일한 여배우의 위치도 차지하고 있다.
영화에서 출발한 김고은은 최근 무대를 TV 드라마로 넓혔다. 올해 tvN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에 출연해 대중성을 넓힌 그는 <태양의 후예>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가 11월에 내놓는 새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