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스코트의 주인공은 왼쪽부터 SK 와이번스 ‘비룡’ 의 구자언, 권봉욱,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현재 각 구단의 마스코트들은 대부분 춤추는 실력이 출중한 댄서 출신이 많다. LG 트윈스 마스코트인 ‘쌍둥이’ 중 한 명인 유재민 씨(26)는 춤 연습할 수 있는 연습실이 없어 이벤트 회사 연습실을 빌려 쓰다 캐릭터 할 사람을 급하게 구한다는 이벤트 회사의 요청으로 마스코트를 하게 됐다. “당시 고1이었는데 대우 프로농구팀 마스코트를 하게 됐다”는 유 씨는 벌써 10년차의 베테랑 마스코트다. 두산 베어스의 ‘반달곰’ 정민석 씨(26) 역시 아크로바틱 팀에 있다가 이벤트 회사에 들어오면서 5년째 마스코트로 활동하고 있다. “농구만 하다 두산 오종학 응원단장과 친구라 소개받고 왔다”는 정 씨는 “올해 처음 야구 마스코트로 왔는데 농구는 공연을 많이 할 수 있어 좋았다면 야구는 관중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관중들이 마스코트를 워낙 사랑해줘서 행복하다는 정 씨는 “LG는 홈런을 치면 텀블링을 하지만 두산은 감독님이 경기 중에 그런 걸 하는 걸 싫어해 못 한다”며 아쉬운 마음을 보이기도 했다.
턱돌이 부상으로 야구 포기
그런가 하면 삼성 라이온즈의 ‘블레오’ 김상헌 씨(28)와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두 구단의 마스코트를 번갈아 가며 맡고 있는 권봉욱 씨(29), 구자언 씨(33)는 같은 이벤트 회사 무용단 소속으로서 마스코트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 16년 차인 구 씨와 12년 차인 권 씨가 각각 94년, 98년도에 입사해 지금의 ‘블레오’ 전의 ‘사돌이’ ‘사순이’ 마스코트로 활동했으며 그 뒤를 이어 99년 입사한 김 씨가 현재 ‘블레오’로 활동 중이다. 고교 시절 유승준의 백댄서로 활동하기도 했다는 김 씨는 “마스코트는 남을 때려도 퍼포먼스가 되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성역”이라며 “2005년부터 ‘블레오’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의 선배인 권 씨는 삼성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마스코트 관련 공연 문화 공부를 마친 후 올해 구 씨와 함께 SK와 한화 마스코트를 맡고 있다. 올 초 5개 구단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최대한 겹치지 않는 스케줄의 두 구단을 선택한 구 씨와 권 씨는 “시즌 중 딱 세 번 겹친다”며 “지난달에는 화 수 목, 금 토 일 번갈아가며 계속 SK와 한화 홈경기가 있어 체력적으로 힘이 들긴 했다”고 설명한다.
KIA 타이거즈 ‘호돌이’ 서인학 씨(20)는 이벤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 선배들의 추천으로 마스코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요즘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히어로즈 ‘턱돌이’ 길윤호 씨(27)는 부산상고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하다 부상으로 인해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마스코트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응원단에서 북을 치다 마스코트가 너무 하고 싶다며 졸라서 마스코트를 하게 됐다”는 길 씨는 “처음 2~3경기 동안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고 나서 15만 원짜리 비디오 카메라를 구입해 야구, 농구, 배구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마스코트를 찍고 연구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2년 전 KIA 타이거즈의 호돌이로 인기를 얻었고, 이제는 국내 최고 인기 마스코트인 ‘턱돌이’로 활약하고 있다.
일곱 구단 마스코트들 중 가장 선배격인 구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때로 95~96년도를 말한다. 당시 삼성에만 한복, 캐주얼 등을 입은 마스코트들이 8명 정도 등장했는데 그 인기가 대단했단다.
“클리닝 타임 땐 무조건 마스코트가 공연을 했어요. 그것 때문에 야구장 오는 팬들도 있었고, 치어리더가 나오면 ‘마스코트 공연 봐야 하니까 내려가라’며 역정을 내시는 분도 있을 정도였죠. 이제는 치어리더가 인기고, 전광판 이벤트가 많아져 마스코트들이 할 일이 줄다 보니 그 때가 참 그리워요.”
‘블레오’를 맡고 있는 김 씨는 억울했던 일을 토로한다. 바로 10년째 하고 있는 ‘블레오’복을 잠시 벗고 군입대했을 때 고대하던 삼성의 우승 소식이 들려온 것. 김 씨는 “내무실에 앉아 TV를 켜니까 마침 삼성의 우승 장면이 나오는 거예요. ‘내가 교육시키던 막내들이 영광을 안았구나’란 생각에 배가 아팠다”며 “전화를 해도 자축파티를 한다고 전화도 안 받더라”고 회상했다.
이 얘기를 들은 김 씨의 선배이자 SK와 한화 마스코트 권 씨는 “내가 군대 갔을 때 삼성 라이온즈 두 번째 우승이었는데 그 땐 (김)상헌이가 전화를 안 받았다”고 웃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이승엽의 아시아 신기록 56호 홈런 때로 당시 현장에서 내가 이승엽 선수와 세리머니했던 게 아직도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턱돌이’ 길 씨는 “턱돌이 때문에 야구장 온다면서 과일 바구니, 보약 등을 챙겨 주시는 팬 분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특히 더운 날 고생한다며 보약을 지어온 관중에게 정말 감동했었다고.
반대로 LG ‘쌍둥이’ 유 씨는 관중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2007년 SK 마스코트로 있을 당시 상대 원정팀 팬들이 유 씨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빼앗아 도망갔다는 것. “치어리더 옷 벗긴 것과 똑같다”는 유 씨는 뺏은 마스크를 들고 장난치는 관중과 다툼을 벌이게 됐고, 일이 크게 번져 그만둘 뻔했지만 다행히 구단에서 유 씨의 ‘프라이버시’를 인정해 무사히 넘어갔다고 한다. 올해 LG 마스코트가 된 유 씨는 종종 SK 선수들로부터 “왜 여기 있느냐”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이진영 선수와 함께 트레이드 됐다”고 농담으로 받아친다.
▲ LG 트윈스 ‘쌍둥이’의 유재민 씨.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마스코트들이 가장 힘들 때는 아무래도 여름이다. 1~2분만 춤을 춰도 온몸이 땀에 젖는데 무더운 여름 경기는 가장 지칠 수밖에 없단다. 그런데 짓궂은 팬들 때문에 곤란할 때도 종종 있다. ‘블레오’ 마스코트인 김 씨는 “예전에는 ‘블레오’가 좀 못되게 생겼었는데 이번에 귀여운 얼굴로 바뀌니까 사람들이 많이 때린다”며 “아주머니들이 와서 귀엽다며 이상한 부위를 만지기도 하고, 여자 캐릭터를 입고 있을 땐 아저씨들이 가슴을 만지고 가기도 한다”고 울상을 짓는다. ‘호돌이’ 서 씨 역시 “계속 외야를 돌아야 하는데 술 취한 어르신들이 술 권하고 붙잡는 게 참 곤란하다”며 웃는다. 반면, SK를 맡고 있는 권 씨와 구 씨는 “한화나 삼성, 기아 등 지방은 정이 많은데 SK는 선진문화랄까, 마스코트를 보고도 별 반응이 없다”며 “그래서 한화에서는 악수 한 번 해줄까 말까한 도도한 마스코트인데, SK에 오면 내가 먼저 다가가는 등 구단 관중 성향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도 바뀐다”고 말한다.
프로 선수들과 똑같이 경기장에서 살다시피 하다 보니 징크스도 있기 마련. 마스코트들은 대부분 “응원이 잘되면 선수들도 잘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 중 ‘호돌이’ 서 씨는 “이상하게 응원단상 위에 올라가서 응원할 때면 점수가 잘 난다”고 답했으며, ‘블레오’ 김 씨도 “퍼포먼스가 잘 되는 날은 팀도 이긴다. ‘블레오’가 삼성의 수호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턱돌이’ 길 씨 역시 “선수나 감독이 심판에 항의할 때 내가 심판을 놀리면 꼭 우리팀이 역전한다”며 독특한 징크스를 소개했다.
“마스코트 회사 설립이 꿈”
마스코트계 최고참 선배인 권 씨와 구 씨는 “일본은 마스코트가 전문직으로 구단과 계약을 해 시즌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몸값이 오른다”며 “국내는 대부분 이벤트 회사 소속으로 하기 때문에 이벤트 회사 소속이 아니면 마스코트를 할 수 없으니까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으면 마스코트 전문 회사를 설립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가 하면 히어로즈가 국내 최초 ‘구단 소속 마스코트’로 영입할 의사를 밝혔던 ‘턱돌이’ 길 씨는 “현재 내가 정식채용을 신경 쓰면 지금처럼 잘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날이 오면 생각해보려 한다”며 “최초 정식 채용보다는 연예인이 아닌 내가 한류열풍을 일으켜보겠다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