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균이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와 입단계약을 맺고 13일 오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뉴시스 | ||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김태균이 몸담게 된 팀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한신 타이거스, 주니치 드래건스 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바 롯데는 결코 빅마켓 팀이 아니다. 요미우리처럼 자금력을 앞세워 선수를 싹쓸이하는 팀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지바 롯데가 한국인 타자를, 그것도 추정 총액 7억 엔짜리 계약으로 영입한다는 건 평소의 팀컬러로 봤을 때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거액을 주고 김태균을 데려간 건 이유가 있다.
구단주의 직접적인 의사가 담긴 계약이기 때문이다. 지바 롯데의 구단주는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이다. 야구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신 부회장이 “김태균을 데려오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게 일본 프로야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지바 롯데는 2004년에도 삼성에서 FA가 된 이승엽을 2년짜리 계약으로 영입했었다. 기존의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올 시즌을 끝으로 물러난 지바 롯데는 니시무라 노리후미 신임 감독 체제로 내년에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지바 롯데는 발렌타인 전 감독과 구단 수뇌부 사이에 갈등이 표출되는 등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은 끝에 올해 퍼시픽리그 5위에 그쳤다. 이승엽 이후 한국프로야구가 낳은 타자 최대어인 김태균을 영입해 전력을 업그레이드하고, 동시에 한국 야구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 배경이다. 더구나 구단주의 직접 지시가 있었으니 아낌없이 돈다발을 안겨줄 수 있었다.
일본 진출에 앞서, 한화와 LG가 김태균을 잡기 위해 꽤 공을 들였다는 소식도 들렸다. 한화 경우엔 한국 프로야구 역대 FA 최고액인 4년간 60억 원(2005년 심정수)보다도 많은 돈을 베팅했지만 잔류시키는 데 실패했다. LG가 보상금 포함 100억 원 가까운 돈을 준비해놓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만약 김태균이 일본 진출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돈 싸움에선 LG가 승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FA 영입의 전략상, 김태균에게 많은 돈을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걸 공표하진 않았지만 분명 LG는 물밑에서 준비했다는 게 야구인들의 증언이다. 여러모로 한화는 김태균을 놓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울러 김태균이 “일본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한화에 남겠다”고 말한 건, 그만큼 일본에 가겠다는 의지가 강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일이었다.
엉뚱하게도, 같은 팀에서 FA가 된 이범호가 수혜자가 됐다. 이범호의 통산 기록을 봤을 때, 예년 같으면 4년간 30억 원 남짓한 규모의 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범호는 한화가 4년간 40억 원 이상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롯데 자이언츠도 이범호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범호가 4년간 40억 원 이상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뒤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본래 겨울철 FA 시장에선 최대어 한두 명의 거취에 따라 나머지 선수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A급 중의 A급인 김태균이 훌쩍 떠남에 따라 두 번째 자원인 이범호를 잡기 위해 예년에 비해 높은 금액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범호 본인도 김태균이 지바 롯데와 거액의 계약에 성공한 걸 본 뒤 상당히 고무됐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김태균만큼이야 안 되겠지만 본인 역시 일본에 진출할 경우 한국 보다 훨씬 많은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어차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러브콜을 받고 있는 입장이라 서두를 것 없이 차근차근 계약을 진행해도 되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바 롯데는 이미 시즌 중에 김태균에게 확실한 영입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내내 한신, 요코하마, 주니치 등 여러 팀에서 김태균에 관심이 있다는 일본 현지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 당시에도 지바 롯데만이 진짜 의지가 있었다는 게 일본 쪽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어찌됐든 김태균의 일본행을 통해 ‘팔러 다니지 말고, 팔려나가야 한다’는 해외 진출의 정석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과거 몇 년간 김동주(두산)가 적극적으로 일본 구단들과 접촉하며 해외 진출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매번 결과가 좋지 못했다. 스스로 팔러 다녔기 때문이다. 일본 구단이 진짜 관심을 갖고 있다면 기다리기만 해도 된다. 김태균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야구판에선 김태균의 지바 롯데행으로 인해 최대 피해자는 동기생 이대호(롯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대호는 2년 후 FA가 된다. 모그룹이 같은 롯데에서 뛰고 있는 이대호가 일본 진출을 원할 경우 지바 롯데에서 영입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하지만 김태균이 일본에서 성공할 경우엔 3년째 시즌까지 지바 롯데에서 1루를 지킬 것이며, 같은 1루수인 이대호는 일본 내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선배인 이승엽과의 묘한 경쟁 심리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센트럴리그(이승엽)와 퍼시픽리그(김태균)에 한국 프로야구 출신의 최고 타자가 각 한 명씩 있게 됐으니 거의 매일 비교 대상이 될 게 뻔하다.
김형기 야구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