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문중 소유 산의 벌목 전 모습.
광산김씨 문중 소유 산의 벌목 후 모습.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일대에는 2182㎡ 상당의 야산이 있다. 이 야산의 소유는 광산김씨 첨주공파 종중으로 스물네 개의 광산김씨 조상의 묘가 안치돼 있다. 광산김씨 족보에 따르면 최초로 묘지가 안치된 시기는 조선시대 숙종의 집권시기인 1792년이다. 지금까지 150여 명의 후손들은 조상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등 광산김씨의 역사와 전통을 고수해오고 있었다.
문제는 지난 6월 초에 일어났다. 300년 동안 수십 그루의 소나무로 우거진 녹음을 자랑하던 선산이 하루아침에 훼손돼 볼품없는 민둥산이 돼버린 것. 게다가 벌목한 나뭇가지와 줄기들은 산에 그대로 적치돼 있었다. 광산김씨 종친회 총무를 맡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졌는지 세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나무들이 베어졌다”며 “종친회 어르신 한 분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 쓰러지시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잔디를 깎을 때도 신선제를 지내는데 후손도 아닌 제3자가 나무를 베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산지관리법에 따라 국유림이 아닌 산림 내 산지의 전용 허가를 위해서는 시장·군수 등에 신고해야 한다. 화성시 관계자는 “벌채를 신청하는 쪽에서 벌채를 목적으로 시청에 먼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청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때 토지소유자의 동의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며 “토지소유자의 동의 없이 사전 벌채를 하면 산지관리법에 위배돼 불법이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성시에 확인한 결과 이곳은 벌채 허가가 신청된 내역이 없었다.
벌채 이후 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산에 적채돼 있다.
벌목을 한 주체는 SK건설의 협력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광산김씨 종친회가 업체로부터 받은 ‘사유지 벌목 수량표’에 따르면 선산에 있던 소나무와 참나무 등 54그루가 베어졌다. 광산김씨 종친회 측에서는 업체로부터 실수로 벌채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협력업체에서는 “SK건설에서 다 허가를 받았으니 벌채를 해도 된다는 말만 들었다. 다음 주 이후 가지와 뿌리를 전부 모아 파쇄까지 진행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SK건설 관계자는 “해당 협력업체의 실수였다. 광산김씨 선산이 SK건설이 조성하는 정남산업단지 구역에 편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 매입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 광산김씨 문중 소유의 산이 맞는데 이에 대해 협력업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매입을 위한 합의가 앞으로 진행될 계획인데 합의 전에 사유지를 무단 벌채한 것은 잘못했다”고 해명했다.
화성시는 지난해 12월 SK건설이 정남면 음양리 632 일원(56만 9791㎡)을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승인 및 고시를 했다. 이에 SK건설은 지난해 화성 정남일반산업단지(산단)사업의 시행자로 선정됐다. SK건설은 회사 보유 토지 49만 561㎡에 개인 소유 토지 7만여㎡를 추가로 매입해 오는 2019년까지 민간개발방식으로 정남산단을 조성하고 있다. SK에 따르면 산단 구역 내에 종친회 선산이 포함돼 있다.
광산김씨 문중 소유의 산은 C-27 도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
종친회 측에서는 이 선산이 산단 지역의 요지가 아닌 가장자리에 불과하니 제외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불가능하다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종친회 측에서 매각을 원하지 않아도 산업단지로 지정된 구역 내의 토지는 개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2008년부터 시행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산단특례법) 때문이다. 산단특례법은 산업단지 개발사업자와 토지 소유자 간의 토지 협상을 간소화하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토지를 팔지 않으려고 해도 산단 시행자의 감정평가를 거쳐 시행사가 토지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해당 선산 역시 감정평가를 앞두고 있다.
김 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원상복구다. 아직 토지 수용이 진행되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벌목을 해버렸다”며 “사실상 토지 수용이 정해진 상황이긴 하지만 조상 묘지를 옮길 선산도 알아봐야 하고 묘지를 옮길 때도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이렇게 벌목이 된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SK에서는 “이미 산단 지역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편입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어렵다. 또 이미 벌채한 산을 복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산으로 이장한다면 벌채 이전의 모습 그대로 원상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