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 전육 KBL 총재가 스티븐슨 주한미대사에게 감사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 | ||
# ‘무명신화’ 사라지나
오는 2월 초 열리게 될 2010년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어느 정도 이름값이 있거나 소속팀 감독의 인맥을 통해 프로팀과 ‘얘기가 끝난’ 선수들만 프로 진출의 꿈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드래프트 당일 오전에 모든 선수들과 팀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리는 트라이아웃이 KBL의 결정에 따라 올해부터 폐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트라이아웃은 각 구단들이 선발 대상자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용도로 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매년 예기치 않았던 무명 선수들이 의외의 기량을 뽐내며 프로행의 꿈을 이루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이 사실이다. KBL의 논리는 간단하다. 어차피 프로에서 대학 선수들을 사전에 자세히 파악하고 있고, 트라이아웃이 드래프트 지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지명 받은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들의 정서 문제도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의 말은 다르다. 신인 드래프트 행사는 농구인 전체의 연중 행사다. 농구인들은 “선발 되고 안 되고를 떠나 프로행을 위해 10여 년을 넘게 꿈을 키워온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기회는 줘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프로 감독 중 대다수가 트라이아웃 폐지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KBL은 “각 구단 사무국장회의와 이사회를 거쳐 결정됐기 때문에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절차’에 당연히 포함돼야 할 대학농구와의 조율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KBL의 일방통행식 결정 과정은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 지방팬은 ‘봉’인가
올 시즌 플레이오프 일정을 협의 중인 KBL은 또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일부 고위인사에 의해 은밀하게 추진했던 챔피언결정전 5~7차전 서울 개최 방안이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4라운드가 한창인 요즘, 4강권을 형성하고 있는 구단은 모두 지방구단(울산 모비스, 부산 KT, 원주 동부, 전주 KCC)이다. ‘특2강’으로 분류됐던 서울 삼성이 5할 승률 언저리에서 허덕이고 있고, 서울 SK는 이미 시즌을 포기했다.
그런데도 우승팀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챔피언결정전 5~7차전을 굳이 서울 잠실에서 열겠다는 KBL의 주장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KBL은 이 방안을 추진한 초창기에 관중수와 수입의 차이를 내세웠으나, 매 경기 수억 원의 차익이 발생하는 프로야구와 달리 농구는 지방구장과 잠실에서의 관중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새해 첫 날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1·2위 맞대결 울산 모비스-부산 KT전에 1만 명의 관중이 모이면서 KBL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KBL 관계자는 “챔프전 잠실 개최의 명분은 관중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지방 구단들은 격렬한 거부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각 구단 관계자들은 실무적으로도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지방 구장의 각종 광고물의 경우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해 턴키로 계약한 경우가 많은데 챔피언결정전의 하이라이트인 5~7차전을 잠실에서 치른다면 이에 대한 배상은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또 경기장을 빌려줘야 하는 삼성과 SK 역시 KBL과의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줄곧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삼성과 SK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대가로 50억 원의 입성금을 낸 상태. 서울에서 경기를 치르는 효과의 수혜자는 삼성과 SK가 돼야 하는데도 KBL이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는 비판이다.
# 견제할 방법 없나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뛰고 있는 모든 선수들은 항상 두 손에 전육 KBL 총재의 사인을 지니고 다닌다. 무슨 말인가. 올 시즌부터 모든 공식 경기구에 전육 총재의 사인을 새겨 넣은 것이다. “미프로농구(NBA)에서도 공식 경기구에는 커미셔너의 사인을 넣는다”는 KBL 고위 관계자의 설명에 많은 농구인들이 조소를 보낸 일은 유명하다.
사실상 KBL의 최근 업무 처리는 한국 농구의 발전보다는 총재의 구미에 당기는 일에만 집중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 구단 관계자는 “KBL 내의 특정세력이 농구발전과는 무관한 이벤트성 안건을 주도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들과 사전협의 없이 은밀하게 안건을 발의하고, 농구에 문외한인 총재의 승인을 받아 ‘좋은 게 좋다’식의 이사회를 거쳐 최종 결정에 이르는 식이다.
이 같은 일은 KBL 이사회라는 의사결정 기구가 있기에 가능하다. 10개 구단 단장과 KBL 인사 2인 등 12인으로 구성되는 이사회는 사실상 KBL이 진행하는 안건에 대해 브레이크 없이 일사천리로 승인을 해주고 있다. 이사직을 맡고 있는 각 구단의 단장들은 대부분 농구에 문외한이고, 전임 단장이 아니라 다른 업무와 겸임을 하고 있다.
KBL 이사직을 경험한 전직 단장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안건이 올라와도 표결할 때만 되면 ‘대승적’이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농구에 무지한 단장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일이 있다”고 지적한다.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