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타라 리핀스키, 옥사나 바울, 사라 휴즈 | ||
아이스링크를 벗어나지 않고 여전히 피겨 팬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있는 금메달리스트들은 생각보다 소수다. 물론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독일 방송에서 해설가로 활동하는 카타리나 비트와 2006년 토리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는 리포터와 해설자를 병행하며 여전히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지지 않은 사례다.
그러나 이렇게 안정적으로 피겨계에서 자리를 잡은 경우는 많지 않다. 정상에서 내려온 후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훈련에 따른 부상과 경제적인 문제로 고초를 겪으며 일찌감치 은반 위에서 멀어진 금메달리스트들이 대부분이다.
우크라이나의 피겨 여왕 옥사나 바울은 금메달을 딴 후 유난히 가파른 삶을 살았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16세의 나이에 릴레함메르 올림픽(1994)을 제패했지만 그간의 혹독한 훈련으로 인해 무릎 관절염 수술을 받게 되고 의사로부터 두 달간 스케이팅을 타선 안 된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그러나 양부모님 밑에서 어렵게 피겨의 꿈을 키워왔던 그녀는 자신을 돌봐 준 가족들에게 하루 빨리 경제적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수백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아이스쇼와 뮤지컬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결국 1년도 가지 않아 부상의 후유증이 심해져 점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이후 3년의 시간 동안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으며 정신적 고뇌에 시달렸던 그녀는 델라웨어대학의 코치를 만나 재기의 꿈을 꿨지만 결국 실패했다. 현재는 개인 의상실과 쇼핑몰을 운영하는 등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타라 리핀스키는 15세의 나이에 정상의 자리에 섰다. 그 역시 은퇴 후 바로 프로 계약을 맺지만 골반 부상 후유증이 심해져 아이스링크를 떠났다.
언론의 비난과 명문대 입학으로 아이스링크를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는 선수도 있다.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미국 대표로 나선 사라 휴즈는 홈텃세를 등에 업고 우승했다는 비난에 시달리다 심적인 고통으로 은반 위의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예일대학에 진학, 한 번 아이스쇼에 출연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시는 스케이트화를 신지 않았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