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부인과의 진료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관련없음. | ||
세계적으로 공인된 포경수술 비율(90%)을 비롯하여 한국인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수술까지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요즘들어 성년 여성들에게 흔해진 자궁근종 역시 수술 남발이란 비판의 소재가 되고 있다. 자궁에 양성 종양이 생기는 자궁근종의 경우, 너무나 손쉽게 자궁을 들어내는 자궁적출 수술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높다.
쉽게 말해 여성을 남성과 구별하는 대표적 장기가 자궁이다. 여성만의 고유 기능인 ‘임신’을 담당하는 기관인 동시에 여성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끼게 하는 일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궁에 질환이 생길 경우 임신 및 출산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며 이미 단산한 여성의 경우라 해도 심리적 위축감을 고려해 자궁을 떼어내는 데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혼 여성의 상당수가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속칭 ‘빈궁마마’다. 중장년층은 물론 20~30대 젊은 여성까지 거의 절반 가까운 여성이 크고 작은 자궁근종을 경험한다. 의학적으로 적절한 치료법이 없지 않은 데도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자궁근종을 치료하는 방편으로 자궁적출을 권유받고 있다.
자궁적출은 일반적으로 자궁근종, 자궁경부암, 골반염 등과 같은 여성 질환이나 분만 과정, 또는 산후 과다 출혈을 원인으로 주로 행해진다. 자궁적출 수술을 받는 여성 중에는 출산이 끝난 40대 이후의 중년층이 많아 ‘자궁이 없어졌다’는 심리적 상실감이 갱년기 증후군과 마침 맞물리면서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다. 아직 20~30대의 한창 나이 여성인 경우 그 후유증은 전신마취에 따른 신체적 데미지보다는 심리적 위축감이 더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암과 같이 치료법이 여의치 않은 경우라면 수술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수술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충분히 치료 가능한 다른 방법이 있는 경우에도 손쉽게 자궁적출수술이 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제왕절개율 뿐 아니라 자궁적출률에서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지적을 뒷받침한다.
자궁근종은 자궁에 생기는 물혹(양성 종양)으로 자궁강 내부(점막하근종)나 자궁표면(장막하근종), 자궁근육층 안에(근층간근종) 생긴다. 그중에서도 점막하근종은 출혈 및 통증이 심한 것이 특징이다. 각 근종의 특징에 따라 출혈 및 통증을 없애거나 근종의 크기를 줄이는 등의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리즈산부인과 이형근 원장은 “본인의 자각증상이나 불편이 없다면 서서히 크기를 줄여나가는 약물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양성 종양(물혹)의 경우 크기가 더이상 자라나지 않는다면 몸속에 그대로 두고 살아도 굳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작은 물혹이 있는 상태에서 임신 출산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근종의 크기가 어른 주먹만큼 커서 출혈, 복통, 빈뇨, 주위 기관을 압박하는 등 증상이 심할 때, 또는 근종이 갑작스럽게 커질 때, 임상적으로 악성 종양과 감별이 어려울 때는 근본적인 원인제거를 목적으로 한 적출수술이 가장 효율적인 치료가 될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아직 임신이 필요한 젊은 여성인 경우 수술은 최후의 수단일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임신율을 최대한 높이고 출산까지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방향을 정한다.
6개월마다 한번씩 정기 검진을 통해 근종의 크기가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급속히 커질 경우에 후속치료를 시도하는 ‘기대요법’이나 약물요법이 여기 해당된다. 임신과 상관없이 수술을 원하지 않는 환자에게도 이러한 치료법은 적용될 수 있다.
양방에서의 비수술요법은 약물을 사용하는 호르몬 요법이 대표적이다. 근종이 생기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자궁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양분으로 하기 때문에 근종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에스트로겐을 제한하는 호르몬요법을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출혈이 심한 환자의 경우 방사선 치료를 통해 난소를 제거, 폐경을 유도해 증상을 호전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방사선 치료의 경우 임신이 불가능해지며 호르몬 요법의 경우는 치료를 중단하면 다시 근종이 커질 수 있어 자궁근종에 대한 근본 치료는 수술이라는 것이 양방의 입장이다.
이형근 원장은 “수술을 할 때에도 상태에 따라 자궁 속의 근종만 들어내는 근종절제술과 자궁 자체를 들어내는 자궁적출술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근종만 깔끔히 떼어내기 어려운 경우, 환자가 더 이상의 임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궁 자체를 들어내는 수술이 일반적으로 선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궁적출의 선택이 지나치게 흔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수술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주장이다. 십장생한의원 심용섭 원장은 “자궁근종이 있으면 임신율이 떨어진다. 또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통증, 출혈 등 외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근종에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수술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그간의 치료 사례를 볼 때 약물치료, 식이요법 등을 통해 거의 대부분 자궁근종이 사라졌다”며 “사라지지 않는 경우라도 환자가 느끼는 불편한 증상은 없앨 수 있으므로 건강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굳이 적출수술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몸에 티눈 하나가 박혀 있어도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수술이냐 비수술이냐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자궁근종이 발생한 사실만으로 지나치게 긴장하여 덜컥 수술을 선택하기보다는 자궁을 떼어내지 않고 치료할 방법은 없는지 먼저 여러 경로로 충분한 정보를 얻어 비교해본 뒤에 환자 스스로가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이상적일 수 있다. 물론 환자가 의사의 결정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것은 사실이다. 의사가 수술을 권하면 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으로선 그 말을 흘려듣기가 힘들다는 것.
물론 의사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과연 자궁적출 외에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는가는 한번쯤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흔히 이루어지는 자궁적출수술은 의사들의 편의적 선택에 따라 어느새 우리나라 의료계의 타성처럼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외적 이유도 이런 의구심의 배경이 되고 있다. 수술 건수 자체가 의사의 이력에 도움이 되고 수술을 통해 근종 자체를 없애는 것을 양의학에서는 ‘완치’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술을 통해 얻는 병원측의 경제적 이득도 무시할 수 없다.
2001년6월 미국 <메디컬 케어>라는 의학 전문지에 실린 논문이 있다. ‘의사의 유인과 제왕절개수술률과의 관계’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95년 캘리포니아주의 출산 통계를 중심으로 의사의 성향이 제왕절개 수술 여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논문이다. 물론 지금 논의하고 있는 것은 자궁적출의 문제지만, 수술률을 결정하는 데에는 의사 개인의 성향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논문에 따르면 제왕절개 수술이 주로 시행되는 시간은 밤시간. 의사가 취침이나 식사시간, 휴식시간 등 사생활을 방해받을 수 있는 시간대로 분석됐다. 의학적 필요성보다는 의사의 편의에 따라 수술이 선택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분석이다.
산통이 길어질 경우 한 환자에게 매여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수술을 결정하는 사례도 많았으며, 보험수가가 높은 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경우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받은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최고 24.2%:최저 15.8%).
자궁근종 수술의 경우 업무 시간 중에 행해지므로 의사의 사생활과는 무관하지만 환자에게 투여하는 총 치료시간이나 경제적 요인 등이 어떤 치료법을 선택하느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사 개인의 철학도 수술이냐 비수술치료냐를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