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이나 계기가 무엇이든, 흔히 자실의 배후에는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질환이 있다. 자살했거나 자살을 기도한 사람의 95%가 정신장애를 갖고 있다는 의학통계가 있다. 이 가운데 우울증이 80%로 정신분열(10%), 치매나 섬망(5%)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 이제 우울증은 한 개인이나 특정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9세 남, 우울증 치료중 김 아무개씨는 서울에서 의대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 계속해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3년 전 급작스럽게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해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뒤늦게 군대에 입대했으나 우울증으로 의병 제대했고 며칠전 집에서 유리창을 깨면서 자해를 시도, 식구들이 정신과를 찾아 상담한 뒤 입원시켰다.
26세 여. 이 아무개씨는 취직에 번번이 실패하자 비만한 체형 때문이라고 스스로 판단을 내렸다.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인터넷 네트워크 게임에 광적으로 몰두하다 끝내 음독자살을 선택했다. 우울증은 이처럼 본인도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 자해, 나아가 자살로 이어지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정신과적으로 알코올과 같은 물질남용, 우울증, 정신분열, 기타 정신장애가 자살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자살자나 자살기도자의 95%가 정신장애로 진단되고 있다. 그 중 우울증이 80%, 정신분열이 10%, 치매나 섬망이 5%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우울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자살을 기도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우울해할 것은 없다. 조사된 의료계 통계에 의하면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자살을 기도하는 비율은 15% 정도에 머문다. 다만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고 방치됐을 때 보다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충격을 던져준 교수, 의사 등 인텔리들의 자살 사건은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자극억제력이 크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분석됐다. 성격이 완벽주의에 가깝거나 내성적인 성격일수록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자살 등 극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정신과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경희대의대 정신과 송지영 교수는 “심한 우울증의 경우 자살시도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누군가가 ‘죽어버릴까…’라는 말을 한다면 단순히 넘기지 말고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말한다. 장래 계획이 없거나 자기 소유물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사람, 갑자기 유언을 남기는 사람, 최근 큰 상실을 경험한 사람도 자살의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우울증은 그대로 두면 갈수록 깊어지고 고치기 도 힘들지만 초기에 본인의 적극적인 자세와 주 변에서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고칠 수 있다. 자 살이라는 최악의 선택도 우울증에서 오는 경우 가 많다고 한다. | ||
그런 공상들 중에는 △복수·권력·지배 △징벌·용서·희생·탈출 △수면·구원·재생·죽은 사람과의 재회 △새로운 삶과 같은 4단계의 심리적 소원들을 포함하고 있다.
인하대병원 정신과 김철응 교수는 “자살하려는 공상을 실행에 잘 옮기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자존심 손상을 크게 당한 경우, 지나친 분노·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거나 죽은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은 일명 ‘마음의 감기’라고 불린다. 슬프거나 울적한 느낌이 단순히 기분에 그치지 않고 신체와 생각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쳐 개인이나 사회생활에까지 장애를 발생시키는 상태라면 반드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
우울증은 생각보다 널리 퍼져 있다. 심각한 우울증보다 정도가 덜한 ‘기분부전증’과 ‘반응성 우울증’까지 포함하면 우울증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은 일반인들의 40~50%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하다. 여성이 20%로 남성의 10% 보다 배가 많으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 성공하는 비율은 보다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남성에게서 더 높다.
우울증은 △생물학적·유전적 요인 △심리·사회적 요인 △만성 신체질환 △대인관계 △생활사건과 △환경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는 발병전 상당기간 생활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특히 11세 이전에 부모를 잃는다든지, 배우자 상실, 죽음, 이별, 실패, 불화 등의 생활사건으로 인해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우울증은 지위나 학식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걸릴 수 있다. 다만 완벽하고 꼼꼼한 성격,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이 더 잘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일상속에서 ‘목표한 것의 85% 정도만 이루어도 만족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문의들은 입을 모은다.
우울한 기분이 찾아온다면 대화나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된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사람들과의 수다는 좋은 약이다. 에어로빅 등 운동은 말초신경 자극을 통해 저하된 뇌신경 기능을 올려줌으로써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 또 적정한 체중관리도 정신건강에 필수조건이다.
우울증과는 정반대 현상을 보이는 조증도 있다. 지나치게 명랑해 보이는 조증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고 수다스러워지고 때로는 횡설수설한다. 들뜨고 과장되며 과민하고 흥분해 공격적으로 되는 것이 전형적인 증상이다. 쉽게 말해 자주 ‘오버’하는 경향이다. 직업이나 학업 혹은 성 활동이 예전보다 증가해 처음에는 일이 더 잘되고 열심히 하는 등 좋은 현상으로 보이지만, 불안 초조한 듯이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설쳐 마침내는 낭패를 보기 쉽다. 과대한 자존심으로 주변 사람들과 잦은 마찰 혹은 싸움을 일으키게 된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조울증이다. 뜻밖에도 조울증 환자의 대부분이 우울증에 해당한다. 우울증 없이 조증만 보이는 환자는 10~20%에 머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우울증은 심각한 정도에 따라 경도, 중등도, 중증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치료법도 다양하다. 오래될수록 치료가 어려워지고 상황도 심각해진다. 고려대 의대 이민수 교수는 “급성 우울증은 2~3개월 정도 치료하면 되지만 만성화된 경우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의 장기간 치료를 통해 경과를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신과에서의 진단은 먼저 전문의와의 면담과 신체적 질환검사, 심리검사 등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울증이 초기에 치유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이 병원 이용을 꺼린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김창윤 교수는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 정신과도 질병을 치료해주는 진료과의 하나로 생각하고 편견없이 이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젠 스스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정신과를 찾을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다.
[‘기분장애’극복 위한 자기관리]
▲너무 어렵거나 과중한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
▲큰 업무를 우선 순위에 따라 나누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자기 스스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혼자 지내기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도록 한다.
▲기분 좋은 활동에 참여한다.
▲이혼이나 사직 등 중요한 결정은 가족이나 정신과 의사와 상의하고 될 수 있으면 병이 호전된 후 결정한다.
▲증세가 갑자기 좋아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박소연 의학전문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