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RI로 정밀진단을 하고 있는 모습. | ||
명절에 모처럼의 모임도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치매 환자는 신체상의 문제뿐 아니라 우울, 불안, 초조, 공격적인 양상 등을 나타내기 때문에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초래하게 된다.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다. 한창 사회적 역할이 크고 가족도 부양해야 할 40~50대, 혹은 그보다 이른 나이에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 특히 40대의 치매발생 환자가 해마다 늘고 있어 충격적이다. 일단 치매가 발병하면 획기적인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가 아닌 중년의 치매는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를 시작하면 예상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직 40대라도 치매와 같은 증상이 발견될 때는 ‘설마’하지 말고 서둘러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부터 출근을 제대로 못해요. 하루는 고향집에, 또 하루는 한강에…. 자꾸 이상한 곳에 가게 되죠.” 이제 40대 초반인 남성 김아무개씨는 치매 환자다. S병원 신경과 외래에서 만난 김씨의 상태는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를 분간할 능력이 있는, 아직 초기에 해당하지만 이 나이에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다.
그는 이미 회사 등 예전의 일상을 모두 포기하고 치료와 휴식만으로 ‘투병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그 생활이 자기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노인들만 이런 병에 걸리는 줄 알았는데, 나이 40에 치매라니요.” 그가 걸린 치매는 노인들에게 많은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아닌 혈관성 치매다.
다행히도 노인성 치매에 비해 치료 가능성은 높은 편이지만 발병 초기 치료의 기회를 놓치면 그대로 남은 생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대표적 노인성 질환으로 여겨졌던 치매가 40~50대에서도 급증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여의도 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박사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지나친 스트레스와 음주, 흡연, 비만 등 치매를 일으킬 수 있는 원인들에 중년 남성이 많이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음주, 흡연, 비만 등은 혈관성 치매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양 박사는 “40~50대 치매 환자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적당한 운동으로 관리를 하는 등 적극적인 예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흔히 성인병 등 건강의 적신호가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40대, 그들에게는 치매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2년 현재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8.3%인 29만명 정도가 치매를 앓고 있다. 이는 지난 90년 17만 명에서 10년 뒤인 2000년 27만 명으로 무려 10만명이나 늘어난 데 이어 다시 2만여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혈류. | ||
심지어 딸 결혼식에 가려고 미장원에 갔다가 깜빡 잊는 바람에 결혼식이 엉망이 됐다는 사람도 있다. 아직 노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40~50대의 사람들은 본인이나 가족들이나 중년에 찾아온 건망증 정도로 여겨 쉽게 넘어간다. 이것은 치매에 대한 조기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건망증이 심한 편이라면 치매 초기증상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발병원인 확인과 조기발견이 필수다. 양동원 박사는 “치매는 원인과 치료법이 여러 가지인 질병이다.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게 되면 원인에 따라서 완치 가능한 경우도 많다.
완치가 안되더라도 경과를 2~3년 정도는 늦출 수 있다”며 반드시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신경과의 진단은 병력조사와 정신상태 검사 등으로 시작된다. 이때 본인과 가족이 제공하는 생활상태 등이 진단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밖에 신경심리검사와 혈액 소변 혈액화학 혈청전해질 심전도 엽산치 검사, 갑상선 기능 검사도 받게 된다.
경우에 따라 뇌에 대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등이 필요하다. 이런 검사를 통해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치료가 시작된다.
치매는 종류가 6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무척 다양하게 분류된다. 대표적인 치매는 노인성 치매라 불리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 두부외상과 관련된 치매, 알콜성 치매 등 4가지다.
▲ 알쯔하이머성 치매: 국내 치매환자의 50~60%가 알츠하이머성으로, 노화에 따른 퇴행성 피질성 치매다. 정상적으로 활동하던 뇌세포의 수가 점차 소실되면서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병이 서서히 시작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악화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많으며, 부모가 치매였거나, 뇌를 다친 적이 있거나, 알루미늄 중독이 있는 경우 더 잘 걸린다.
▲ 혈관성 치매: 두 번째로 많은 유형으로 전체 환자의 20~30%를 차지한다. 뇌혈관이 터지면서 굳은 피가 뇌세포를 압박, 손상시켜 나타난다.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거나 좋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비만, 고혈압, 당뇨, 심장병, 흡연, 과거 뇌졸중(중풍)을 앓은 적이 있는 경우에 위험성이 높다. 대부분 환자들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를 동시에 갖는 경우가 많다.
▲ 외상으로 인한 치매: 사고로 인해 머리뼈가 깨져 뇌가 드러나는 외상을 입었거나, 사고로 뇌에 멍이 들었거나, 뇌출혈 등에 의해 뇌에 넓은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치매 증상이 생길 수 있다. 프로권투 등 격투기 선수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 알코올성 치매: 40~50대 환자들은 주로 과도한 음주에 의해 치매를 부른 경우가 많다.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한 환자의 3% 정도, 인지기능 장애가 의심되어 검사받는 환자의 7% 정도가 알코올성 치매로 추정된다. 50대 이상의 여성이면서 지속적으로 술을 먹은 사람이 알코올성 치매에 잘 걸린다.
치매는 일찍 발견해 치료하면 진행을 늦추고, 환자의 정상적 능력을 보다 오래 보전할 수 있다. 치매의 치료는 약물치료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심리치료, 사회성치료, 재활치료 등을 병행한다. 혈관성 치매는 조기발견하면 더 이상의 진행을 막을 수 있고 완전히 회복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권에서는 혈관성 치매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기 때문에 예방과 치료가 더욱 중요하다. 우선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심장병 등 뇌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병, 즉 치매 위험요소를 찾아 치료하는 것이 적극적인 치매 예방법이다.
혈관성치매로 진단되면 아스피린이나 티클로피딘을 써 혈전이 생기는 것을 예방한다. 더욱 강력하게는 와파린 등 항혈소판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경동맥이 좁아진 경우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기타 신경매독, 수두증, 뇌종양, 뇌경막하출혈, 비타민결핍증, 갑상선질환 등, 전체 치매의 10%가량을 차지하는 다른 종류의 치매들은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 치매도 증상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와 분간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지레 ‘치료불능’으로 판단하여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치매증상이 나타날 때에는 바로 신경과를 찾아가 치료 가능한 치매인지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주희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