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장수군 계남면 주민들이 고로쇠 수액을 시음하고 있 다. 고로쇠는 보통 경칩(3월5일)을 전후해 채취하는 수액 이 가장 약효가 좋다. 우태윤 기자 | ||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되면 대지는 촉촉히 물기를 머금고 생명들은 그 물기를 취하며 긴 잠에서 깨어난다. 나무들은 밤 사이 대지로부터 물기를 흡수해 온몸에 채우고 아침해를 맞는다. 생장을 위해 사용하고 남은 물은 다시 땅으로 되돌리는 균형감각도 지녔다.
새봄의 생명이 깃든 이 수액은 예로부터 봄을 맞는 사람들에게도 생기를 더하는 건강음료로 이용돼왔다. 이 가운데 수량도 풍부하고 독성이 없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해온 것이 고로쇠나무의 수액이다. 바야흐로 수액 마니아들의 고로쇠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에는 생명체가 필요로하는 각종 미네랄과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요즈음은 전화 한 통으로도 고로쇠수액을 택배로 받을 수 있지만, 막 받아낸 수액의 건강을 그대로 섭취하기 위해 생산지까지 직접 찾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로쇠는 깨끗하고 큰 산이 있는 지역에서 자생하기 때문에 고로쇠여행은 새봄맞이 여행을 겸하기에도 좋다.
고로쇠는 물 좋고 공기 좋은 지역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잘 알려진 산지들은 지리산, 백운산, 장안산 등 중남부 지역이다. 주로 산세가 험하다는 악산(惡山)에 많이 자라 경사가 완만한 능선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수액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조건은 까다롭다. 낮 기온이 10℃ 이상으로 따뜻하고 밤 기온이 영하 5 이하로 내려가는 등 일교차가 크고 날씨가 화창해야 수액이 풍부해진다. 같은 날이라도 오후에 접어 들어야 수액이 잘 나온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가려가며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 한 그루에서 얻을 수 있는 수액의 양은 하루 0.5ℓ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히 귀한 물일 수밖에 없어 가격도 비싸다.
전북 장수군의 장안산에서 대대로 고로쇠를 채취하고 있는 양남덕씨는 이 때문에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고 생각되면 의심을 해보아야 한다. 물과 희석하거나 다래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등 다른 나무의 수액과 혼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조언한다.
우리 민족이 고로쇠 수액을 마시기 시작한 역사는 1천 년도 더 되었다. 그만큼 얽힌 일화도 많다. 체력이 허약해진 변강쇠가 고로쇠 수액을 먹고 건강을 회복했다거나 삼국시대 때 전쟁에 지친 신라, 백제의 군사들이 고로쇠 수액을 먹고 단숨에 갈증을 해소했다는 등의 이야기다.
▲ 고로쇠를 채취하는 모습. | ||
국립보건원이 발표한 분석자료에 따르면 고로쇠 수액은 사람의 골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칼슘 함유량이 높고, 혈압을 조절하는 칼륨 마그네슘 철분 망간 비타민C 등 10여 종의 미네랄과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어 ‘골리수(骨利水:뼈에 이로운 물)’라 불리기도 했다.
따라서 노약자나 골다공증에 시달리기 쉬운 중년 여성들이 뼈를 튼튼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라시대 고승 도선대사는 몇 달 동안 가부좌를 한 채 참선을 하다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굳어 펴지지 않자 마침 옆에 있던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받아마시고 무릎이 펴졌다고도 한다.
당도는 1.8%∼2.0%로 높은 편이다. 고로쇠 수액은 한마디로 천연성분의 ‘알칼리성 이온음료’에 해당한다. 염산이온 황산이온 마그네슘 칼륨 등 미네랄 성분이 일반 물보다 40배 이상 많다. 이온수라 체내 흡수도 빠르다.
채취된 지역이나 수종에 따라 함유성분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2001년 임업연구원은 국내의 여러 산지에서 채취된 고로쇠수액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지리산 수액은 다른 수종에 비해 칼슘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거제지역의 붉은고로쇠는 칼륨과 마그네슘 성분이 가장 많으며, 울릉도에 자생하는 우산고로쇠의 수액은 규소 성분이 상대적으로 많이 함유돼 있다고 밝혔다. 우산고로쇠는 다른 지역 고로쇠에 비해 자당 성분이 1.5∼1.8배로 단맛이 강하다.
채취 시기에 따라서도 효능은 조금씩 달라진다. 일반적으로는 경칩(3월5일)을 전후해 채취하는 수액이 가장 약효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채취한 고로쇠를 냉장고에 넣어 놓고 물 대신 마시는 것이 가장 간편하긴 하지만 수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방에서 한증을 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먹는 것이 좋다. 땀과 소변을 통해 계속 수분을 배출하면서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북어포 오징어 땅콩 멸치 등 짭짤한 간식거리를 곁들여 마시면 단맛에 질리지 않고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다. 토종닭이나 흑염소 등 영양식이나 일반 요리에 고로쇠 수액을 사용할 수도 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보관하며 냉장 상태로는 한 달 정도까지 보관이 가능하지만 지속적으로 선도가 떨어지므로 너무 오래 두지 않도록 한다. 다른 나무의 수액과 혼합된 경우 순수 고로쇠 수액보다 빨리 변질되며 맛도 탁해진다. 수액에 약간 뿌옇게 뜨는 부유물은 식물성 섬유와 당분이 얽혀 있는 것으로 인체에는 해가 없다.
지리산 산지인 전북 장수군에서 3월 첫 주 고로쇠 축제가 열린다. 계남면 ‘장안산관광농원’(☎063-352-0308, 011-684-3523)에서는 3월8일 고로쇠 무료 시음회를 개최한다. 윤은영 건강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