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각국의 유명 제약사들이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들을 속속 개발 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제약사들도 신약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사 진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희소식이 된 먹는 항암제 글리벡. | ||
암 환자나 가족이 가장 기대를 거는 것은 암치료. 그중 편리성과 부작용 최소화가 장점으로 부각되는 있는 먹는 항암제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최근 ‘글리벡’과 ‘젤로다’ 등 먹는 항암제가 등장하면서 암 치료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과연 먹는 항암제는 암 정복이란 목표치에 어느만큼 도달하고 있는 것일까. 그 현황과 전망을 알아본다.
미국 암협회에 따르면 97년 한해동안 1백4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암 진단을 받았다. 미국에서 암은 심장질환에 이어 사망원인 2위. 한해동안 죽은 사람의 4명 중 1명의 사인이 암과 관련돼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암으로 죽는 비율이 더 높다. 통계청의 ‘2000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1위가 암, 2위가 뇌혈관질환이다. 암중에서도 발생률 1위는 위암이며, 사망률 1위는 폐암으로 조사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의 암 치료법은 크게 수술이나 화학요법, 방사선치료로 나뉜다. 여기에 생물학적 요법을 추가해 구분하기도 한다.
이중 항암화학요법은 항암제(과거 정맥주사용)라는 약물을 사용해 암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한가지 약제 또는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몇 가지 약제를 함께 사용한다. 정확하게는 ‘암세포증식억제제’라 불리는 항암제는 현재까지 1백종 넘게 개발됐으나 실제 임상에 사용되는 것은 20여종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항암제의 가장 큰 취약점은 부작용이다. 암세포는 본래 인체의 정상세포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세포구조나 분열증식이 정상세포와 동일하다. 때문에 항암제가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별하지 못해 살아 움직이는 모든 정상세포까지도 손상을 입히는 것이 문제였다.
항암제는 특히 세포분열이 활발한 머리카락, 골수의 조혈세포, 위장관 점막세포 등 정상세포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암세포 증식보다 항암치료에 따른 부작용이 더 치명적이란 비판도 당연히 일어났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광범위하게 잔류하는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사용하는 독한 항암제가 모든 암에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직 항암제로 치료 가능한 암은 급성백혈병, 악성림프종, 융모상피암, 고환암, 윌름종양 등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발생률이 높은 위암이나 간암, 폐암, 대장암 등에는 비교적 효과가 높지 않다. 항암제 치료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는 주로 일정 기간 투약을 계속하면서 암세포들이 획득하게 되는 항암제내성 때문이다.
서울내과의원 장석원 원장은 “항암제는 생명을 구하는 영약이 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생명을 빼앗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양날을 가진 칼의 어느 쪽을 이용하는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다”고 설명했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최근 주사용 아닌, 먹는 항암제가 자리를 넓혀가고 있는 것은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 전이성 대장암과 전이성 유방암의 적응증을 인정받은 젤 로다. 한국식약청은 전이성 위암에도 적응증을 승인했다. | ||
서울대병원 암연구소 방영주 소장(내과)은 “먹는 항암제가 다른 치료에 비해 항암효과가 더 높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경구용이라는 편리성과 다른 치료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다는 점 때문에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먹는 항암제들은 특히 약이 체내에서 암세포만을 보다 정확히 선별해 공격하는 선별능력을 높였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먹는 항암제가 선을 보인지는 꽤 오래됐다. 80년대 후반 위암의 적응증으로 선보여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로슈의 ‘후트론’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먹는 항암제에 대한 효능과 치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의료진들이 많았다.
현재 국내에 알려진 먹는 항암제는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노바티스의 ‘글리벡’. 2001년 5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글리벡은 유도미사일처럼 암세포만 골라 파괴하는 선택성이 높아 기존의 항암제와 달리 정상세포를 거의 죽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작용도 크게 줄어 현기증과 근육통 등 경미한 반응만 나타난다.
일본에서 임상시험중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레사’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승인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다. 그러나 시험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발견되면서 FDA가 최근 좀더 검토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로슈의 ‘젤로다’는 FDA로부터 전이성 대장암과 전이성 유방암의 적응증을 인정받은 경구용 항암제. 한국 식약청으로부터는 다시 전이성, 진행성 위암 적응증을 승인받아 더 관심을 모았다. 젤로다는 2주 투약 후 1주 휴식하는 사이클로 복용한다.
한국로슈 젤로다 담당 권수진 과장은 “젤로다는 미 FDA로부터 공신력을 인정받아 세계 60개 이상의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며 “다른 제약사들도 먹는 항암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로슈도 또 다른 경구용항암제들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 일본에서만 허가를 받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암과 대장암에 대한 먹는 항암제로 제일약품의 ‘UFT-E’가 있다. 제일약품은 또 위암과 두경부암을 적응증으로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TS1’을 들여와 한국식약청에 허가를 신청해놓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돼 성공적 효능시험을 거쳐 임상 전단계 실험에 들어간 동성제약의 항암제 신물질도 관심대상이다.
항암제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90년대 이후 등장한 대체의학 개념의 연구흐름속에서 항암효과를 가진 천연식품들이 많이 보고됐다. 이를 이용한 ‘항암치료 개선 건강보조식품’들이 올해만해도 수종 출시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국내제약사들이 먹는 항암제의 카피 품목을 선보이고 있으며 많은 항암제들이 동물실험 중이거나 임상시험을 거쳐 주사제나 경구용 신약으로 준비중이다.
가톨릭의대 암센터 홍영선 교수는 “먹는 항암제는 효과가 탁월하다는 점보다는 부작용이 많지 않다는 장점이 부각된다”며 “아직은 초기단계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더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좋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신약 1개 품목의 개발은 자동차 3백만대 생산과 맞먹는 순이익을 창출한다. 제약회사들도 먹는 항암제 시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하고 있어 새로운 항암제의 개발은 줄을 이을 전망이다.
암치료에 거는 기대는 이제 먹는 항암제로부터도 몇단계 더 나아간 형태까지 예상이 가능하다.
‘앞으로 암치료는 분자생물학적 방법을 이용한 맞춤치료가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 정부는 이 분야에만 연간 3천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맞춤치료는 새로운 항암제 개발의 플랫폼 역할까지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일본암센터 임상종양학 팀장인 나가히로 사이조 박사가 밝힌 암치료의 전망이다.
사이조 박사는 암은 현재 부위별 분류와 병리적 소견으로만 종류를 구분하고 있으나 유전정보를 분석할 때 매우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되며, 이에 따라 항암제의 선택과 치료방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특성에 따른 약물 적합성을 판별해 환자 개인마다 가장 효과적인 항암제를 따로 처방하거나 용량을 개별 적용함으로써 부작용은 극소화하고 치료 효과는 투약법, 혹은 새로운 항암제의 개발이 가능하리라는 것. 이는 치료의 질 향상은 물론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도 덜어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 중 한 사람인 릴란트 하트웰(Leland H. Hartwell) 박사(프레드 허친슨 암센터 소장)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현재 정상세포는 그대로 두고 암세포만 목표로 하는 약물개발이 항암제 개발의 주요 목표가 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세포주기와 암의 발생에 관한 연구에 유전학의 방식을 최초로 도입한 그는 개인적으로 암은 향후 10년 내에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혈청에서 특정 암의 발생을 예측해 주는 단백질 혹은 DNA를 검출하는 조기 진단법이 다양하게 개발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박소연 건강전문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