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하나로 해치울 수 있게 되리라던 공상소설 속의 미래식은 아직 없다. 바람은 오직 하나, 아침 식사를 아예 걸러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쁜 계절이 돌아오면서 아침을 먹는 게 좋은가 거르는 게 좋은가가 다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아침식사를 안하면 에너지가 부족해져서 두뇌 및 신체활동이 저하된다는 주장과, 체내의 독소를 배설하기 위해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는 위를 비워주는 게 좋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과연 어느 편이 좋을까를 짚어봤다
바쁘기도 하고 입맛도 없고 걸핏하면 거르기 일쑤인 아침식사. 실제로 ‘입맛이 없어서’ ‘다이어트를 위해서’ ‘시간이 없어서’ ‘밥 먹는 시간에 더 자고 싶어서’ 등등 갖가지 이유로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우리나라 국민의 식사습관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국민건강 영양조사’(1998년도)에 의하면 하루 세끼를 모두 먹는 사람은 응답자의 77.2%에 머물렀다. 이밖에 일상적으로 두 끼를 먹는 사람이 20.7%, 한 끼만 먹는 경우도 0.6%나 되었다.
특히 이들이 주로 생략하는 식사는 아침식사에 몰려있다. 13∼19세 중고등학생의 46.3%, 20∼29세 성인의 59.4%가 아침을 먹지 않고 있었다. 7∼12세의 초등학교 학생들 가운데도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34.3%나 됐다.
다른 조사들도 결과는 비슷하다. 20∼4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아침밥을 매일 먹는가’란 설문에서는 ‘꼭 먹는다’는 사람이 40%, ‘불규칙하다’가 30.6%로 원칙적으로 먹는 사람은 3명 중 2명꼴이었다. ‘아예 먹지 않는다’는 사람이 29.3%나 됐다. 그 이유는 대개 시간이 없거나 입맛이 없어서라는 대답이었다.
이들 중 절대 다수인 92.6%는 ‘시간이 넉넉하다면 아침식사를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소량이라도 먹겠다’고 답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는 아침식사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침식사가 건강관리를 위해 필수적이냐, 혹은 더 좋은가 나쁜가에 대한 답이 한결같지는 않다. 그러나 대다수 의사나 영양학자들은 아침식사로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특히 아침을 규칙적으로 챙겨먹는 것은 금연, 금주, 소식 등과 마찬가지로 평생 건강을 지키는 좋은 습관이라는 것.
이런 사실을 증명해 주는 연구결과도 많이 나와 있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남자는 40%, 여자는 28% 사망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좋은 예다.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허갑범 박사는 “매끼 식사는 활동 에너지의 근본인 만큼 세끼를 잘 챙겨 먹는 게 좋다”며 “아침을 거르면 전날 저녁식사만으로 다음날 점심시간까지 15∼16시간 동안 뇌세포의 에너지 공급원인 포도당을 공급하기에 무리가 있으므로 뇌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왕 한 끼를 생략한다면 차라리 점심을 거르고 아침과 저녁을 잘먹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체조, 세수 등으로 30분 정도 몸을 움직인 뒤 식사를 하면 소화도 잘되고 입맛이 돌지 않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장 안좋은 것은 숙취 후 아침을 거르는 것이다. 술은 위 점막을 자극하기 쉬운데 아침식사마저 거르면 위산이 쌓여 위궤양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고 허 박사는 충고한다.
반면 아침식사를 거르는 게 좋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주로 남다른 자연건강법을 실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의견이다. 이들은 생리적으로 볼 때 오전 시간은 몸 안에 남아있는 요산 등 독소를 배설하는 시간이므로, 이때 다시 음식을 먹으면 새로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시키느라 독소를 완전히 배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체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심장 등 자율신경계의 활동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여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을 ‘기초대사량’이라고 한다. 성인 기준 1일 기초대사량은 1,200∼1,400kcal. 여기에 하루동안 소모되는 열량을 더한 성인 표준 칼로리는 하루 2,400∼2,700kcal이다.
자연건강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침식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이런 칼로리 영양학 자체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칼로리 영양학 때문에 우리 몸에 필요 이상의 과다한 영양이 공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침식사를 하면 배설이 잘 되지 않고 머리가 아프며 몸이 나른해지는 만큼, 아침은 먹지 않고 점심과 저녁은 자연식 또는 생식을 하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매일 세끼를 먹던 사람이 갑자기 아침을 먹지 않는 2식을 시작하려면 쉽지 않다. 그러나 두 달 정도 계속하면 차차 적응이 된다고 한다. 아침을 먹지 않는 대신 생수나 감잎차를 마시면 공복감이 없어지고 장 기능도 좋아진다고 한다.
자연건강법 전문가로 유명한 일본의 고오다 미쓰오 박사는 하루 900kcal의 초소식(超小食) 요법을 실천한 많은 환자들이 건강을 회복했다고 주장한다.
아침식사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은 이렇게 맞서고 있지만, 무엇보다 꼭 먹어야 한다거나 결코 먹어서는 안된다는 식의 강박관념을 버리고 내 몸에 가장 필요한 음식의 종류와 필요한 양을 필요한 시기에 섭취한다는 유연한 생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아침식사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생체리듬이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듯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답을 갖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텍사스주립대 의과대학의 유병팔 노화연구소 소장은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 끼건 두 끼건 과다 칼로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많이 먹으면 먹는 만큼 활성산소도 많이 나오고, 30% 절식하면 수명도 30% 연장된다. 성장기가 지나면 30%는 섭취량을 줄여야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성장 발육단계에 있는 청소년이나 오전부터 많은 힘을 써야 하는 육체노동자라면 아침을 꼭 챙겨먹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 하지만 이 경우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
아침식사로는 탄수화물 지방 등 에너지 위주의 식단보다 과일 채소 우유 등으로 필요한 영양만 공급하는 식단이 바람직하다. 특히 중년 이후에는 샐러드 우유 등으로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해 주면서 대사기능을 자극하는 정도의 가벼운 식사를 하는 것을 공통적으로 권하고 있다. 아침식사를 하면 어떤 점에서 좋을까.
1. 오전의 에너지원이 된다
식후 4시간 정도가 지나면 혈당량이 줄어 피곤하고 짜증이 나며 집중력이 떨어진다. 아침식사를 자주 거르면 뇌를 비롯한 우리 몸 곳곳에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해지고, 기능도 저하된다.
아침식사 ‘breakfast’의 의미는 밤부터 아침까지 8시간 가량의 긴 공복상태(fast)를 깨뜨리는(break) 것. 인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아침식사는 필요하다.
2.업무 및 학습 능력을 높여 준다
점심식사 전 오전의 3∼4시간 동안은 두뇌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간인데, 이때 에너지가 부족하면 집중력과 사고력이 떨어지고 학습 능력과 업무능력이 저하되기 쉽다.
지난해 10월 가톨릭대 성기선 교수 팀이 서울시내 고교 1, 2학년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아침을 먹는 학생이 거르는 학생보다 학습 성적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 의대 소아영양연구원 로널드 클라이맨 박사는 “아침식사를 하는 어린이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수학성적 향상이 두드러지고, 아침을 거르는 학생에 비해 출석률과 수업참여도가 높은 반면, 지각 횟수와 양호실 방문 횟수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3. 체지방을 효율적으로 연소시킨다.
살을 빼기 위해 아침을 굶는다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하지만 아침을 거르면 오히려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
체중을 조절하려면 하루 세 차례 영양의 균형을 맞추어 비슷한 양으로 나누어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점심, 저녁을 과식하거나 간식을 찾게 마련이다. 아침식사를 하면 신진대사가 빨라져 체내에 지방이 쌓일 틈이 없다. 실제로 중등도 비만인 여성 중 아침을 거르는 사람에게 꼭 아침을 먹도록 했더니 체중이 감소되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4. 성인병을 예방해준다
미국 뉴저지주립대의대 심장내과 전문의인 장석주 박사는 아침을 굶으면 혈소판이 증가해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거나 담석증 장암이 많이 발생하는 등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고 경고한다.
하루 중 아침 9∼11시에 심장마비나 뇌졸중 발생율이 가장 높아지는데, 이 시간대는 인체의 아드레날린 분비가 많아져 혈압이 오르고 혈소판의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 아침까지 굶으면 혈소판 농도가 더욱 높아져 잠정적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 불리하다.
아침 식사를 거르면 쓸개에 담긴 담즙이 쏟아져 나오질 않고 그대로 남게 되어 담석증, 장암 발생률도 높아진다.
5. 장운동을 원활하게 한다
아침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면 변비 개선에 도움이 된다. 일정한 시간에 음식물이 들어가면 장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배변습관이 좋아진다.
송은숙 건강전문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