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먹던 닭고기와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식탁이 조심스러워졌고 양계농가는 때아닌 불황에 빠졌으며 동남아 관광도 위축되는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반 독감 정도의 증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질환들 앞에서 현대의학이 무력한 것은 이 바이러스들이 날로 새롭게 변형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여 그에 맞는 백신을 생산할 즈음이면(6개월~1년) 이미 바이러스는 새로운 종으로 변이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의학적으로 정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 조류독감은 아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전염이 안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은 전남의 한 지역에서 오리를 매몰하고 조류독감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생석회를 뿌리고 있는 장면. 사진제공=전남일보 | ||
조류독감, SARS. 좁게 보면 새로운 독감 바이러스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세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바이러스들의 기습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후진국의 불결한 환경이 조류독감의 원인이라며 느긋하게 뒷짐지고 있던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순식간에 조류독감의 공포에 휩싸였다. 자신들만은 안전할 것으로 믿었지만 이들 나라에서도 예외없이 새로운 종류의 조류독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학 발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이 같은 신종 전염병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되풀이될 것이라는 점과 사스의 경우처럼 일단 발생하면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철새들에 의해 전파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조류독감은 ‘날개 달린 바이러스’라 할수 있다. 국경과 대륙의 관문도 무의미하게 지구상 어느 한곳 마음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날개가 없는 사스라 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사스는 발병하기 무섭게 전 지구촌을 강타했다. 광둥에서 사스 환자를 치료한 중국인 의사로부터 호텔에서 감염된 12명의 다른 투숙객을 통해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베트남 아일랜드 등지로 사스가 확산됐고, 이후 한 달 동안 이 경로를 통해 감염된 환자만 2백49명이나 됐다.
빠른 세계화, 도시화 덕택(?)에 이제는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없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정희진 교수는 “신종 전염병은 어느 한 지역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항생제 남용이나 성생활의 변화, 나라간 교류의 증가, 식품의 세계화 그리고 개발을 위한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와 지구 온난화 같은 환경적 요인도 신종 전염병의 발생을 부추긴다.
▲조류독감 현황
조류독감은 이미 한국 일본 중국에서 발생이 보고되었다. 국내에서는 다행히 일부지역 닭에게서 발병된 직후 적극적인 대처로 확산되지 않았으며 사람에게로 옮겨지기 전에 진정되었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가 남쪽 지역인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으로 옮겨가면서 인명피해가 발생, 2월12일까지 태국과 베트남에서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국과 베트남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조류독감 변종바이러스인 A/H5N1형으로 동북아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형이다. 이 바이러스는 1997년과 작년 홍콩에서 발생해 사망자를 냈던 것과도 같은 형이다.
조류독감은 멀찍이 떨어진 미국과 유럽에서도 발생됐다. 지난 12일 미국 델라웨어주와 뉴저지주에서 조류독감이 발견돼 의심지역의 닭 오리들도살처리되는 등 비상에 걸렸다. 유럽의 노르웨이에서는 조류독감 증세를 가진 야생오리가 발견됐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아시아지역의 바이러스와는 구조가 약간 변형된 것이었다.
▲전파 가능성
사스의 경우 공항 검역과 환자에 대한 격리치료 등으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조류독감은 어떤 형태로도 차단막을 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철책이든 국경이든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넘나드는 철새들의 출입을 제한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철새들이 왕래하는 지역에서 다른 가금류가 접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 전파 차단책일 뿐이다.
사스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는 중국은 조류독감이 발견된 광시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사 및 통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감염된 오리 농가 근처에는 역시 야생 조류들이 모여드는 수목지대가 있었다. 중국의 수의학자들은 “H5N1를 보유한 철새 한 마리가 배설한 미량의 배설물로도 가금류에게 대규모 감염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계절이 바뀌어 철새들이 북쪽으로 돌아갈 때면 조류독감은 새들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북상할 가능성도 높다.
▲인체감염 여부
변형된 조류독감이 인체에 감염되어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으나 아직 조류독감 환자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전염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류독감으로 사망한 환자들은 모두 새와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자들은 닭 오리를 키우는 농부들이거나 병든 오리를 돌본 소녀, 투계장을 자주 찾던 소년들이었다. 그러나 세계 의학계는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본래 바이러스는 다른 종에게 감염되더라도 위협이 안되지만, 그 숙주 안에 다른 바이러스가 있는 경우 쉽게 결합하여 위협적인 변종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유전자 하나를 바꾸자 곧바로 쥐에게로 감염되는 바이러스가 만들어지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한 사례도 있다. 구조가 단순한 바이러스의 빠른 변신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미국 질병통제센터 줄리 거버딩 소장은 12일 “사람에게 감염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체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사람 사이에 전염될 수 있는 형태로 또다른 돌연변이를 일으킬 경우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될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방대책
바이러스의 위협이나 피해는 이처럼 거창하지만 대비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조류독감 발생지역은 가급적 출입을 자제하고 평소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지난해 사스 출현 이후 ‘손씻기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바이러스가 흔히 유입되는 경로는 배설물을 통해서다.
동물이나 환자의 배설물에 섞인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형태로 대기나 먼지, 흙 속에 잔류하게 되므로 외출에서 돌아왔거나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으라는 것이다. 또 먼지를 뒤집어 쓴 뒤에는 반드시 샤워할 것도 권고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질병관리본부는 “베트남 외에 태국, 캄보디아 등 조류독감이 발생한 동남아 지역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이 지역을 다녀온 사람은 특히 개인 위생에 주의하고 귀국 후 12일 내에 독감 증상이 보이면 즉시 보건소나 병원을 찾도록 당부하고 있다.
의심되는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자가치료나 임의로 약을 사먹으며 시간을 끄는 경우 제대로 진단이 되지 않고 증상이 악화되거나, 그 기간동안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킬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닭고기 먹어도 되나
조류독감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금류의 분변을 통해 옮겨질 수 있으므로 가금류와 접촉하지 않는 것은 확실한 예방법이 될수 있다. 감염된 생닭이나 오리에 노출되지 않는 한, 닭이나 오리고기를 먹고 감염될 위험성은 없다. 조류독감 바이러스 역시 다른 감기 바이러스처럼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강남성모병원 감염내과 김상일 교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70℃ 이상의 온도에서 5분 이내에 죽기 때문에 닭고기나 오리고기는 보통의 가열 조리방법으로 요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조류독감 감염이 의심되는 가금류에 대해서는 즉각 방역과 폐기 등 적극 조치를 취하고 있으므로 조류독감에 감염된 닭고기가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