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고진화 의원, 원희룡 의원, 정세균 의원,강운태 전 장관, 김혁규 의원, 김두관 전 장관 | ||
사실 ‘잠룡’의 의미도 불확실하다. 자천타천으로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으나 지지율 10%대 이하의 인사들을 뜻한다면 이명박 박근혜의 ‘빅2’를 제외한 모두가 잠룡이다. 더구나 범여권은 아무도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잠룡들에게 기회일 수도 있다.
현재 한나라당에서는 ‘빅3’로 요약되던 대권후보군 외 원희룡 고진화 권오을 의원 등이 이미 대권도전을 선포한 상황. 한편 범여권에서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김근태 현 의장 외에 정세균 천정배 의원, 강운태 김두관 전 장관 등이 잠룡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재야 인사나 민주당 민노당의 예비후보군을 포함한다면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20명이 넘는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대권도전 의사를 밝힌 이들 잠룡들은 어떤 행보를 준비하고 있을까.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잠룡’ 중 한 명은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이다. 고 의원은 이미 지난해 말 공식적으로 대권 도전을 선언한 바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 당과 다른 입장을 내보여 당내에서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아온 고진화 의원이 최근 다시 한번 당 안팎의 관심을 끈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31일 한나라당 참정치 운동본부에서 주최한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대선전략’ 세미나에서 유석춘 교수가 ‘대놓고’ 고진화 의원의 탈당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일고 있는 ‘사상검증’ 논란과 관련, 유 교수는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몇몇 의원들을 가리켜 ‘열린우리당 2중대’라고 비난하며 “한나라당 내부에 열린우리당 친북좌파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가끔씩 발언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분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는 고진화 의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이날 유석춘 교수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고 의원에게 도움을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고진화 의원이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마인드’를 갖춘 인물로 대표되면서 새삼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된 것. 한나라당 대권후보임에도 사이드에 비껴가 있던 그를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결과를 만든 것이었다.
유 교수의 발언에 대해 고진화 의원실 관계자는 “시대착오적 망언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거론한 것은 공작정치가 있다고 의심하게 만든다”고 설명하며 “유 교수가 공개적으로 (고 의원을) 비난한 것이 오히려 우리 쪽에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반면 원희룡 의원은 고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 의원 측은 한나라당 대권주자 ‘빅4’군으로 거론되고는 있으나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에 머물고 있으며 화제거리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김용갑 의원이 ‘원희룡 고진화 의원의 경선불참 요구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고진화 의원과 의견을 함께하고는 있으나 그동안 돌출적 발언은 자주 해온 고 의원이 상대적으로 돋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원희룡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고진화 의원은 고진화 의원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이고 나와는 그 부분에 대한 대화나 교류가 있지는 않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근래 돌아가는 정황상 ‘보수정당’의 색채를 가진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성향’ 이미지로 고진화 의원과 함께 ‘묶이고’ 있는 것이 원 의원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 세배 문제로 곤욕을 치른 원 의원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다. 한때 수요모임의 대표주자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그가 대권주자로 나서면서 오히려 ‘개혁적 이미지’를 잃고 말았다는 분석이다. 이는 비단 원 의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요모임의 위기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수요모임이 최근 대권주자들에 대한 줄서기에 앞장선 모임으로 전락하면서 원 의원의 이미지도 함께 실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한나라당 내에서 권오을 의원, 홍준표 의원이 잠룡군으로 거론되고는 있으나 ‘대권행보’를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권 의원은 원희룡·고진화 의원과 함께 ‘개헌발언’에 대해 뜻을 함께한 이후 독자적인 목소리를 주저하고 있다. 이외에도 김진선 강원지사와 김태호 경남지사도 예비 잠룡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나라당 대권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이들의 움직임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본격적 대권경쟁이 시작된 이후 이들의 행동 때문이다. 현재 잠룡들 중 일정부분 지지세력을 갖고 있는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이 손학규 전 지사 쪽에 무게를 실어준다면 한나라당 대선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한 지지율 2위에 주저앉아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이들을 ‘끌어갈’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당내 지지 세력은 적지만 20~30대 젊은 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들의 힘이 박 전 대표 측에 가해진다면 증폭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여권의 후보군 구도는 고건 전 총리의 대통령 선거 불출마 선언 이후 그 양상이 복잡해진 상황이다. 고 전 총리의 표를 흡수할 수 있는 대안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당내 의견이 분분하다. 제각각 고 전 총리의 빈자리를 향해 달려가고는 있으나 뚜렷한 대권후보가 떠오르지 않는 분위기다.
그나마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이후 정동영 전 의장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상황이지만 여권 정계개편의 향방과 맞물려 정 전 의장의 스탠스도 부침이 심하다. 한나라당 소속인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군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점도 정 전 의장에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는 “여권 후보가 워낙 없다보니 유력주자로 분류되어야 할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와 같은 이들이 잠룡들보다도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는 쓴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여권에서는 고 전 총리를 대신할 ‘호남권 주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현재 호남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 외에 정세균 전 산자부 장관이 있다. 정세균 전 장관은 호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기반 외에도 당 의장을 무난하게 역임했다는 전력이 긍정적으로 꼽히고 있다. 여차하면 친노세력이 정 전 장관을 업을 수도 있다.
여권의 잠룡주자들 중에서는 화순 출신의 강운태 전 장관이 공식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 1월 31일 자신의 정책구상을 담은 책 <똑똑한 정부 빛나는 대한민국>을 내고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강 전 장관은 이날 구체적인 대권주자로서의 스케줄을 발표하기도 했다. “3월 말까지 창당준비위를 구성하고 독자적인 정치결사체인 ‘국민봉사정치연합’을 창설해 민주적 경선절차를 거치겠다”는 것이 요지다.
과연 강 전 장관이 여권의 유력 주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포스트 고건’이 부재한 상태에서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이력에 기대를 하고 있다.
한편 탈당세력들의 움직임과는 달리 당 사수파인 친노그룹에서는 ‘영남후보’를 내세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꾸준히 거론돼왔던 김혁규 의원과 김두관 전 장관은 얼마 전 여의도에 개인사무실을 내고 대권행보를 시작했다. 두 주자는 각각 친노직계 그룹 의정연구센터와 참여정치실천연대의 지지를 받고 있어 양측의 대결도 주목되는 상황. 이미 의정연 내부에서는 오는 2월 전당대회에 김혁규 의원을 추대하기로 합의했고, 김두관 전 장관 또한 당의장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노심’의 향방에 따라 급부상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향후 노 대통령의 대권시나리오에 맞춰 행보를 함께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잠재적 대권주자로 꾸준히 거론돼온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은 아직까지 ‘고사’ 입장이다. 영남 출신에 경제전문가라는 이점을 안고 있는 진대제 전 장관 또한 이명박 전 시장을 겨냥한 범여권 카드로 거론되고 있으나 현재로선 정치 참여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정치권 관계자들은 “현재까지는 이들이 몸을 낮추고 있으나 언제든 깜짝 등장해 돌발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