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로로 인한 과로사가 늘고 있다. 사진은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진료 모습. | ||
일로 인한 피로 못지 않게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도 신체에 무시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겨준다. 불황일수록 책임이 무거워지고 업무상의 프레스도 높아져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승하기 쉽다. 서로 신경이 날카로와지면서 인간관계도 더욱 미묘해지기 쉬우므로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심신의 피로를 가중할 수 있다. 평소 혈압이 높다거나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면 더 한층 주의가 요구된다.
멀쩡하게 일에 열중하던 사람이 잠자다가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적지 않다. 과로에 의한 심근경색, 더 지나치면 과로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과로 또는 업무 관련 피로로 인해 급성 질환이 발생하거나 악화되어 사망하는 과로사(過勞死)는 사실 의학적인 용어가 아니라 사회적인 용어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상 사망’이 대개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 업무상 과로로 사망하거나 병에 걸리는 근로자가 매년 10% 정도씩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박신구 교수는 설명한다.
산재보험에서는 과로사나 스트레스를 질병코드로 분류하지 않고 있으므로 과로사에 해당되는 뇌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을 알면 과로와 스트레스 질환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자료에 의하면 지난 수년간 업무와 관련하여 뇌나 심혈관계 질환을 인정받는 노동자의 수는 1999년 1천2백14명에서 2002년 2천56명으로 배나 되게 늘었고, 이 가운데 사망자 수는 1999년 4백20명에서 2002년 7백60명으로, 매년 10%씩의 증가율을 보였다.
인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로하면 이를 이겨내기 위해 산소와 영양소를 급격히 소모하게 된다. 이때 대사과정에서 노폐물, 즉 젖산 암모니아 시스틴과 잔여 질소 등 소위 ‘피로물질’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물질이 몸 밖으로 배출되거나 몸안에서 소멸되기까지는 체내에 잔류하게 된다. 특히 피로현상이 계속될 경우 피로물질은 몸안에 축적되어 좀체로 해소되지 않는 만성피로로 발전될 수 있다.
피로물질의 축적은 신체기능의 조절능력을 떨어뜨린다. 만성적인 피로는 정신신경기능, 자율신경기능, 내분비기능, 대사기능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흔히 피로의 상태를 그 심도에 따라 피로-과로-곤비(困憊) 등 3단계로 나눈다. 하루 정도 휴식으로 충분히 회복되는 정도는 피로, 피로가 즉시 회복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과로, 피로가 축적되어 단기간의 휴식으로 회복될 수 없는 병적인 상태를 곤비라 한다.
갑자기 강도 높은 일을 했을 때 생기는 급성피로는 회복도 비교적 빨라 오히려 위험성이 적다. 정상적인 신체상태라면 대개 하룻밤 자고 나면 회복된다. 그러나 그 다음날까지 피로가 지속되는 상태가 매일 계속되면 만성피로가 된다.
만성피로에는 급성피로가 회복되지 않아 생기는 경우와 체력 저하, 질병으로 항상 피로 상태에 있는 경우가 있다. 만성피로는 정신적 생리적 기능이 다 같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계속 피로가 더해지면 질병이 생기기 쉽다. 이때는 장기간의 휴식이 필요하다.
과로사의 전형적인 직접 원인은 뇌와 심혈관 질환이다. 뇌출혈이나 뇌경색 심근경색 협심증 부정맥 등이 그것이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 흡연 과음 비만 스트레스 등은 뇌 심혈관 질환을 안겨주는 주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공개된 많은 연구들은 직장에서 받는 업무 스트레스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성격은 경쟁적이고 공격적이며 참을성이 없어 쉽게 화내는 유형이다. 이런 성격을 A형 성격이라고 하는데, 매사에 완벽주의다 보니 현대 경쟁사회에서 업무를 꼼꼼하고 완벽하게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아 승진이 잘 된다. 그러나 무리하게 몰두하다 돌연사나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은 성격이기도 하다.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 업무상 부담이 늘어나 육체적, 정신적 과로를 피할 수 없는 업무여건도 과로사의 위험을 높인다. 예를 들어 월말이나 연말정산에 쫓기는 경리 관계자처럼 업무량이나 업무시간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육체적 힘을 많이 소모해야 하는 경우에는 심신의 피로를 줄일 수 있도록 스스로 최대한의 배려를 해야 한다.
하루 중 노동시간이 너무 길거나 야간근무, 교대근무를 많이 하는 경우에도 주의해야 한다. 수면부족, 생체리듬의 혼란, 사회 가정생활의 트러블 같은 스트레스가 교대근무자에게 심리적, 신체적으로 해로울 수 있다.
한 보고에 따르면 주야 교대근무자는 정상적인 기초체온과 생체리듬의 유지가 힘들어져 밤에는 잠들기가 어렵고 낮에는 졸리며 작업능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주야교대를 하는 공장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철도기관사 등은 과로사의 고위험군이다.
운전을 하거나 지나치게 추운 곳이나 더운 곳에서 일하는 경우, 높은 곳에서 일하는 경우, 장기간의 출장이 잦은 경우, 소음과 진동 속에서 일하는 경우도 요주의 대상. 한번에 장시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업무, 관리감독 등 책임감이 큰 업무도 만성과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업무 자율성이 적거나 시간에 쫓기는 경우, 직장 상사나 동료, 부하직원과의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도 스트레스가 커진다. 승진이 계속 미뤄지거나 아랫사람이 먼저 승진을 하는 바람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과로 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히 볼수 있다.
과로사를 예방하는 데는 정기적 건강검진이 큰 도움이 된다. 건강의 이상 신호가 있을 때 무시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하고, 일상적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면 작업환경을 바꾸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사소한 증상이라도 거듭해서 나타날 때는 합병증이나 다른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뇌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는 고기보다 야채,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고, 금연 절주도 필요하다. 운동도 1주일에 3일 이상은 꾸준히 하도록 한다.
자기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최희정 교수는 “근무 외 시간을 이용해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으로 긴장을 풀고,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업무 스트레스를 줄여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도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이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모든 일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지나친 책임감도 버리는 게 좋다. 일을 처리할 때는 중요한 순서대로 분류해 효율성 있게 처리하고, 하루에 최소 30분이라도 모든 스트레스를 잊고 쉬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최희정 교수,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박신구 교수, 직장인스트레스연구소 김민경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