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입시가 끝난 후에도 잠을 충분히 잔다고 자는데도 ‘졸음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무슨 병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어 신경정신과를 찾기에 이르렀다. 병원에서의 뇌파검사 결과, 갑자기 잠을 참지 못하는 기면증이라는 수면장애라고 했다.
약물치료를 받은 후부터 수업시간에 졸리지 않고 집중력이 높아졌다. 책을 읽거나 교수의 설명을 듣는 데도 그만큼 효율성이 높아졌다.
수면장애의 유형으로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이 가장 흔하고, 기면증, 수면무호흡증도 많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식사하는 도중에도 졸음을 참지 못하는 기면증은 한창 학업에 열중하는 청소년이나 젊은 성인에게 흔한 편이며, 학업성적이나 직장에서의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잠자는 도중 호흡이 길게 자주 멈추는 수면무호흡증은 뇌졸중, 심장병, 치매 같은 합병증을 만들 수도 있다.
생활 양식이 복잡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는 그만큼 정신적 긴장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수면장애가 생기기 쉽다. 물질만능 개인주의 성취지향적인 환경들이 스트레스 지수를 높인다.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나 불안 긴장, 교통사고 전쟁 자연재해로 인해 생기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불규칙한 수면시간 등 환경적 요인이 수면장애를 가져오는 원인이다. 우울증의 한 증상으로 생기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회피반응’으로 생기기도 한다.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수면장애의 발병률은 8% 정도로 추정된다. 우울증, 조울증 등 다른 정신질환이 있을 때도 대부분 수면장애 증상이 함께 나타나므로, 이런 경우까지 합치면 비율은 더 높아진다.
수면시간이 짧은 주기로 자주 바뀌는 교대근무자, 야간 근무가 많은 사람은 직업 특성상 취약하며, 신체적 질환이 있는 사람과 노인들도 쉽게 수면장애에 빠질 수 있다. 수면은 기본적인 생체리듬, 신체적 또는 심리적 변화, 일조량(햇볕을 쬐는 양)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이중 교대근무자의 경우, 불면증과 잠이 많아지는 수면과다증이 함께 올 수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더 뚜렷해진다.
잠은 기본적으로 그날 그날 쌓인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자는 동안 신체상태를 건강상태로 복원시키고, 체온이나 화학적 성분 등의 평형을 유지하는 생리적 ‘항상성’을 조절하는 데에도 긴요하다. 하루 동안 보고 들은 머릿속의 정보를 재정리해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 두뇌의 기억창고에 정리하여 기억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성인의 적당한 수면시간은 하루 7∼8시간 정도. 24시간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일분일초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기는 아까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면 최대한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이 필요하다. 왜 그럴까.
만일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를 한번 가정해보면 대답이 간단해진다.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는 동물실험에서는 동물이 체중과 체온이 감소하고 면역력이 떨어져 결국은 일찍 사망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사람도 잠이 충분하지 못하면 피로가 쌓여 항상 긴장에 시달리고 만성 두통, 소화불량이 생기기 쉽다. 집중력과 기억력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불면증을 가진 사람이 교통사고를 내는 비율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5배나 많다고 한다.
코골이나 수면무호흡 등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도 낮에 졸음이 쏟아지면서 집중력 기억력 저하가 나타난다. 이때는 작업이나 운전 중에 사고가 생기기도 쉽고, 기억력이 저하되며 무기력, 의욕 감퇴에도 영향을 미친다.
불면증
가장 흔한 것은 불면증. 자리에 누워도 잠이 빨리 들지 않거나 취침중 자주 깨어나거나 새벽에 번번이 잠을 깨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불면증에 속한다. 의학적으로는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잠든 후 중간에 깨어 있는 시간이 30분 이상이거나 수면효율이 85% 미만인 경우를 불면증으로 진단한다.
일단 잠이 들면 자주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어야 좋은 수면. 수면시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낮 시간의 활동에 지장 없이 또렷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수면시간이 적당하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불면증은 10명 중 2명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고, 남성보다는 여성, 특히 폐경 후의 여성에게 가장 흔하다.
신경이 너무 예민하거나 시험, 면접, 중요한 업무, 생활의 변화 등 심한 스트레스가 있을 때 생기는 불면증이 가장 많다. 정신분열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에도 흔하다. 스트레스 등으로 나타난 2주 이하의 일시적인 불면증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진다. 그러나 일시적인 불면증이라도 습관적으로 반복된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자신의 수면습관이나 환경을 바로잡으면서 최면, 명상, 심호흡, 점진적 근육이완법 등의 여러 가지 이완법이 도움이 된다. 필요하다면 의사의 처방을 받아 수면제를 복용한다. 수면제는 장기간 사용하면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침, 한약과 함께 방향성 한약제를 이용한 향기요법이나 기호흡, 명상법 등의 방법으로 불면증을 치료한다.
약물 때문에 생기는 불면증도 있다. 복용하던 안정제나 수면제를 갑자기 끊거나 체중감소를 위한 약, 항암제, 경구피임약, 항우울제, 항경련제 등을 복용하면 불면증이 생길 수 있다. 카페인 함유음료나 알코올도 마찬가지다.
알코올의 경우 술을 마시면 쉽게 잠이 들기는 하지만 밤에 자주 잠에서 깨게 되거나 악몽을 꾸게 될 수가 있다. 담배 역시 적은 양에서는 졸음을 유발하고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많은 양의 담배는 깊은 잠을 방해한다.
단순히 불규칙한 생활로 늦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수면위상증후군’은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는 노력으로 고칠 수 있다.
기면증
불면증과는 반대로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다면 기면증에 속한다. 잠 들려는 순간 혹은 깨려는 순간에 환각증상이 있거나 아침에 분명히 깨어 의식이 있는데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수면마비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주의해야 한다.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회피반응으로 잠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다. 주로 청소년기나 젊은 성인에게 많다. 낮에 일정 시간 낮잠을 자면 도움이 되고 상태가 심하면 약물치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수면무호흡증
코를 심하게 골며 자다가 숨이 턱 막혀 호흡이 한동안 중단되는 현상이다. 코골이는 수면 중 목젓의 윗부분 근육이 내려앉아 떨려서 나는 소리. 심해지면 자면서 10초 이상 숨을 쉬지 않는 수면무호흡증이 자주 나타난다. 수면무호흡증은 크게 폐쇄성 중심성 혼합성 3가지로 나눈다.
코골이나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은 숙면을 방해할 뿐 아니라 뇌졸중 심장병 치매 돌연사 등 합병증으로 이어지기 쉬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자는 동안 뇌의 혈액순환 장애가 심해져 저산소혈증으로 혈액의 점성이 증가되기 때문에 뇌졸중이 더 잘 일어난다는 것이다. 고혈압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위험성이 높다.
남성, 특히 중년이면서 비만인 경우 요주의 대상이다. 턱이 작은 경우나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있어도 잘 생긴다.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밤에 자면서 땀을 많이 흘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마르고 두통이 생긴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낮에는 졸리고 기억력이 떨어진다. 수면중 코를 통한 공기유입기를 설치하거나 이비인후과 수술을 받기도 한다. 수면무호흡증이 있을 때 수면제를 복용하면 이완된 근육이 기도를 막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사건수면
야경증, 사지운동증, 수면보행증 같은 사건수면도 흔하다. 야경증은 남자아이에게 많은데, 갑자기 깨어 울고 소리지르면서 극심한 공포를 나타낸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 없애면 도움이 되고 드물게는 약물치료를 받기도 한다.
자면서 걸어다니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수면보행증은 흔히 몽유병으로 불린다. 성인보다는 소아에게 많고 무엇보다 스스로 다칠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무릎 아래 근육이 주기적으로 수축돼 깊은 잠을 못 자는 사지운동증은 약물치료를 하면 좋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며 당뇨나 신장질환, 빈혈이 있는 경우에 많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남성모병원 정신과 김정진 교수, 고대안산병원 수면클리닉 신철 교수, 분당차병원 신경과 김옥준 교수, 한양대병원 신경정신과 노성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