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 빌’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데이비드 캐러딘이 2009년 호텔에서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돼 여러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킬 빌’ 스틸컷.
아내인 애니 비어먼을 비롯한 캐러딘의 가족들은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FBI에게 수사를 의뢰했다. 캐러딘의 에이전트인 척 바인더는 팔이 뒤로 묶여 있었다는 것과 침대에 남겨진 발자국이 캐러딘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제2의 인물이 캐러딘의 죽음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캐러딘의 변호사인 비키 로버츠도 뭔가 범죄적 행위가 있었을 거라며 FBI의 개입을 촉구했다. 하지만 수사는 태국 경찰에 의해 이뤄졌고, 캐러딘의 죽음엔 캐러딘 이외엔 그 누구도 개입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 담당자인 워라퐁 츄프레차 서장의 발표에 의하면, 목에 감긴 줄과 페니스에 감긴 줄이 있었고, 검시 결과 사고에 의한 갑작스런 질식사였다. 하지만 발표는 조심스러웠다. “자살인지 혹은 질식사나 심장마비로 인한 죽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때 셀러브리티 전문 병리학자인 폰팁 로자나수난은 자살은 아니며, 사고에 의한 질식사로 단정하며 자기색정사(autoerotic asphyxiation)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법의학작인 마이클 베이든도 “발버둥쳤거나 반항한 흔적이 없는 걸로 보아 타살은 아니고, 유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자살도 아니”라고 소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스스로 목을 맨 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며, 정성스레 밴디지(줄로 묶는 것)를 한 것은 성적 쾌락을 위한 행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색정사는 일반적인 마스터베이션과 달리 과도하게 기구나 장치를 이용한 자위행위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이다. 줄을 이용해 스스로 목을 죄면서 자위를 하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데이비드 캐러딘도 이 사례에 속했던 것. 목에 줄을 감고 목을 맨 상태에서 조심스레 힘 조절을 하며 손으로 자위를 해야 하는데, 이때 자칫 삐끗하면 위험한 섹스 게임은 순간적인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위험한데도 목 조르기를 굳이 강행하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 속에서 성적 쾌감이 올라가기 때문인데 <감각의 제국>(1976)의 섹스 신에 그 정황이 잘 나타나 있다. 뇌에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아득해지는 현기증과 사정의 느낌이 결합될 때의 쾌감인 셈이다.
이때 전처였던 게일 젠슨과 마리나 앤더슨은 캐러딘에게 밴디지의 성향이 있었다고 말했고, 마리나와의 이혼 서류에서 “죽을 수도 있는 변태적인 성 행위를 강요했다”는 구절이 발견되었다.
한편에선 자살설이 지속됐다. 캐러딘의 자서전엔 그가 한때 침대 맡에 항상 권총이 있었으며 총을 쏴 머리를 날려 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는 대목이 있었던 것. 알코올과 마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얻은 듯 보이지만, 그의 어두운 내면은 여전히 그를 괴롭혀 왔다는 주장이었다.
유족들은 캐러딘이 범죄 세계와 연루된 쿵푸 조직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는 점을 들어 암살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캐러딘의 에이전시 대표인 티파니 스미스는 “우리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절대로 자살은 아니라는 것”이라는 말만 남겼고, 결국 캐러딘은 자기색정사에 의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정리됐다.
1주기가 된 2010년. 캐러딘에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아내인 애니가 유작이 된 <스트레치>의 제작사인 MK2 프로덕션을 고소한 것. 당시 제작사는 캐러딘에게 최고의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계약을 했고, 낯선 도시인 방콕에선 항상 어시스턴트가 가이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하지만 죽은 채 발견되기 전날 밤 저녁 식사 때 캐러딘은 숙소에 홀로 남겨진 상태였다. 연락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어시스턴트와 스태프는 캐러딘을 남겨 둔 채 호텔을 떠났고, 한 시간 뒤 캐러딘이 전화했을 때 그들은 시내 관광 중이었다. 결국 그날 밤 캐러딘은 홀로 남겨진 것. 이에 과실을 물어 소송을 걸었고, 결국 영화사는 1년 후에 40만 달러로 합의했다.
한편 캐러딘의 전처였던 마리나 앤더슨은 2010년 6월에 캐러딘에 대한 책을 내며 타살설을 주장했다. “나는 그가 어떤 의도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는 마리나가 지목한 살인자는 방콕의 매춘 조직 ‘레이디보이스’(ladyboys). 이들은 돈 많은 미국인 남자를 주로 노리는데 캐러딘이 그 타깃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돈을 가지고 다녔고, 두둑한 팁을 뿌리곤 했다. 누군가 그것을 봤을 것이고 그를 미행해 방 번호를 알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그다지 호응을 얻진 못했고, 죽은 전남편을 통해 책장사를 하려 한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