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를 무시하면 고래등이 터질 것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두 거물 간의 양자 대결 구도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 최근 그가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다. 손 전 지사가 경선 불참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강공책으로 돌아서자 당내에서는 경선 성사 자체가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손 전 지사 측은 “경선 불참을 각오하고서라도 경선론 대세론에 대항해 경선 룰을 합리적으로 바꾸는 게 목표”라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손 전 지사가 이렇게 경선 방식 변경 등에 관해 바짝 고삐를 당기는 속내는 복잡하다. 현재 그의 정치적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시각이다.
사실 손 전 지사 측은 올해 초부터 지지율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말 보좌진을 대폭 보강하고 공보 라인도 강화하는 등 공세적인 캠프 운영을 펴며 연초 지지율 대반전을 내심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지지율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학규 브랜드’의 인지도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데다가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도 크게 어필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는 오히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의 후보로 거명되면서 지지율 제고에 더욱 애를 먹고 있다.
전도유망한 장외 우량주가 초반 기대와 달리 아직까지 상장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캠프 내부에서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현재 캠프에는 “탈당하자”는 의견과 “일단 남자”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탈당파’들은 “어차피 당에 남아서 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특히 여야 공히 대권 주자로 ‘인정’ 받으면서 ‘양다리 걸치기’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덧칠되고 있다. 그럴 바에는 확실하게 제3의 길을 걸어 중도세력 통합의 구심점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가 깃발을 올린다면 여권 탈당파 등의 지지를 받아 세력을 모을 수 있다. 최소한 20명 이상의 의원들이 모여 교섭단체까지도 만들 수 있다. 그럴 경우 대선에 실패하더라도 18대 총선에서는 중도세력의 구심점으로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우리를 지지하는 의원이 1명 정도에서 20여 명으로 늘어나는 것 자체가 성공한 것 아니냐”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손 전 지사 캠프에서는 일부 정무 파트 쪽에서 이탈을 통한 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대체로 잔류로 기울어지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는 손 전 지사 측이 구상하고 있는 돌파구를 두 가지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먼저 끊임없이 당내 개혁을 요구해 두 주자와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손 전 지사를 지지하는 지방의 한 인사는 “한나라당의 현재 지지도는 여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이 많이 깔려 있다. 당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손 전 지사가 당의 정풍 운동을 주도한다면 국민적 지지를 받아 상승세를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 전 지사는 최근에도 계속 “한나라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줄 세우기, 편 가르기, 세몰이 등 구체적 행태, 수구적 행태와 투쟁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손 전 지사의 이런 가능성에 대해 “손 전 지사는 승산이 없는 경선에 불참하고 당내 개혁을 위해 계속 당에 남아 투쟁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당내 개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탈당을 위한 명분을 쥐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여권의 후보로 전격 옮겨가거나, 아니면 한나라당 대권 후보가 후반에 갈수록 인기가 떨어져 대타가 필요할 경우 손 전 지사가 갑자기 부상할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이에 대해 “손 전 지사는 앞으로도 외곽을 돌며 관망하는 동시에 게릴라성 전략전술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경선 방식 등을 조기에 합의해 주기도 어려우며, 반대로 급작스러운 탈당을 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일단 현 시점의 ‘절대강자’인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도 흐름을 지켜보며 기회를 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손 전 지사가 경계를 넘나들며 중도 전략을 구사한 것은 크게 보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리면서 한나라당 또는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판짜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이 전 시장의 지지도에 큰 변화가 생기고, 한나라당 내부가 ‘혼란’ 상황이 온다면 언제든지 자신이 주도하는 ‘새판 짜기’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다”라고 진단했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정기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원하는 차기 대통령상으로 ▲수도권 출신 ▲50대 ▲남성 ▲정치인으로 ▲사생활이 깨끗한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 손 전 지사를 지지하는 한 관계자는 “손 전 지사는 한국 정치의 병폐인 계파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다. 시대정신을 가지고 깨어져도 끝까지 명분을 가지고 간다면 국민들이 바라는 지도자상과 딱 들어맞을 시점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