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이주영 한선교 표를 다 모으면 70.7%야. 투표한 당원과 대의원, 여론조사까지 10명 중 7명이 친박계를 찍었다는 것 아니야. 그게 그 후보들 표겠어. 박근혜 표야. 당원과 대의원들, 그리고 국민은 아직도 박근혜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결과를 보고나서야 분석할 수 있지만 사실 이정현 대표의 당선에는 여러 복선이 있었다. 정치권이 애써 그 시그널을 외면했을 뿐이다.
8월 9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신임 당대표가 선출되어 당기를 인계받아 흔들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1. 8월 7일 일반·책임당원 사전 투표에서 이미 결판이 났다
일요일이었던 7일 전국 252개 투표소에서 일반당원과 책임당원 투표가 진행됐다. 오후 6시 종료된 투표율은 20.7%. 2014년 7·14전당대회의 사전 투표율보다 약 10%포인트 모자랐다. 주호영 캠프에서는 난리가 났다. 투표율이 높아야 친박계 충성도가 낮은 당원들도 투표에 참여한 것이 되는데, 승리의 매직 넘버인 당시 투표율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이다.
주호영 캠프는 정치부 기자들과 데스크, 안팎의 실무진과 정치꾼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리며 분석에 나섰지만 패색은 짙었다. 한 관계자는 “당원 10명 중 2명꼴로 투표장에 갔다는 것은 그만큼 충성도가 높은 당원만 그 폭염에 꾸역꾸역 찾아간 것이고 8명은 포기를 했다는 것 아니냐”며 “결국 우리는 조직력 싸움에서 진 것으로 본다. 동원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결과는 그의 말 그대로였다.
2. 8월 7~8일 여론조사 결과가 유출됐다?
전당대회가 진행되던 중 정치권에선 출처 불명의 숫자가 카카오톡 상에서 돌고 또 돌았다. 각 후보들의 여론조사 결과였다. 진원지로 지목된 언론사는 “그런 여론조사를 진행한 바 없다”고 해명했지만 결과는 그대로였다. 전국 3000명의 여론조사로 3만 2622명의 표본을 충족해야 했으니 1표당 10.8표의 의미가 있었다. 당원과 대의원 10명이 투표하는 것과 여론조사 응답자 1명이 응답한 것이 같은 가치였던 것이다.
한 정가 인사는 “호남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정현 후보 인지도가 가장 앞섰다는 평가는 절대적이었다. 당원들 사이에서도 이정현 후보가 여론조사에선 대세이니 밴드왜건 효과(선거 운동이나 여론 조사 등에서 우위를 점한 후보 쪽으로 유권자들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을 것”이라며 “비박계 주 후보의 대중성이 너무 형편없었던 탓도 크다”고 했다.
여론조사에선 이정현 당선자가 38.2%, 주호영 20.5%, 이주영 15%, 한선교 26.2%였다. 방송인 출신인 한 의원이 비박계 단일화 후보인 주호영보다 6%포인트나 앞섰다. 7일 당원 사전 투표와 8일까지 이어진 여론조사에서 사실상 뒤집을 수 없는 전당대회 결과가 도출된 셈이다.
3.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이 지나치게 밝았다
전당대회에서 박 대통령의 등장에 장내는 “박근혜” “박근혜”를 연호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퇴장을 할 때에는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한 바퀴를 손을 흔들었다. 2014년 전당대회 당시 굳은 표정과, 축사 이후 곧바로 빠져나가던 모습과 크게 대조되면서 일각에선 “여론조사나 당원 사전 투표 결과가 청와대로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고 수군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선거에 개입하는 듯한 발언도 일절 않았다. 다만 자주 웃었고 옆 자리에 앉은 고위급과 자주 대화를 나눴다. 그의 표정과 여유에서 결과를 예측한 일부는 부랴부랴 꽃다발을 사기 위해 전당대회장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4. 박 대통령과 TK 초선 의원들의 청와대 회동 취지가 결과에 반영됐다
전당대회를 닷새 앞둔 4일 박 대통령은 대구경북(TK) 초선 의원들과 사드 배치가 확정된 성주 지역구의 재선 이완영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했다. 전당대회 전 선거 개입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특정 지역구 의원들과의 오찬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부적절하다”고 각을 세웠던 행사였다. 청와대는 “전대와 아무 관계 없다”며 김 전 대표를 향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오찬 당일 전당대회 관련 언급이 일절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직접적인 ‘전대 개입’ 논란은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비등비등할 것 같았던 이정현 후보와 주호영 후보의 득표 결과가 나오자 즉각 다른 해석이 나왔다. 정가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의 당시 오찬은 텃밭 TK의 표를 완전히 갈라놓은 절체절명의 한 수”라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TK 초선들은 사실상 대부분 전략공천이 된 인물들로 당협위원회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당협은 19대 국회의원들이 다져놓은 곳으로 여전히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들의 오더(order)가 먹혀들 가능성이 농후한 조직이라는 얘기다.
이에 박 대통령이 특별히 TK 초선들만 불러 ‘내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대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한 셈이 됐다는 해석이다. 다른 한 여권 관계자는 “만약 신공항 무산과 사드 배치로 성난 민심을 확인하려 했다면 지역민 스킨십이 적은 초선보다는 재선 이상급 의원들을 불러야 했다”며 “초선들은 박 대통령과의 이 특별 회동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것이고, 당협 조직을 정비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5. 이정현 캠프의 절묘한 기호 추첨
이 당선자의 한 여비서는 당대표 기호 추첨이 있던 날 사무처를 향했다. 한 당직자는 “사람이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이 후보의 여비서가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진행을 잘 하는지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최근 10년간 선거에서 기호 1번이었고,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무조건 1번’을 찍는 노년층이 절대 다수라는 얘기다. 이 당직자는 “기호 1번을 들자 옆에서 ‘이정현은 선거운동 더 안 해도 되겠네’라는 말을 하더라”라며 “될 사람은 된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박 대통령은 이정현 신임 대표의 취임 이틀째 되던 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전기료 누진율을 임시 완화했다. 이 대표와 신임 지도부가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동한 지 단 6시간 후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전대를 기다렸다는 듯 민란이 예고됐던 누진세 논란이 해결됐다”며 “앞으로도 이렇게 건건이 이정현 체제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정필 언론인
비박 후보 주호영 패착…‘평소 어장 관리 좀 하시지’ 김무성 “비박 단일화” 설레발로 컨벤션효과 감소…오세훈과 회동도 ‘오판’ 새누리당의 8·9전당대회가 친박계 친정체제 구축으로 사실상 끝이 나면서 비박계는 완패했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번 전대의 최대 수혜자로 주호영 의원을 꼽고 있다. 당초 6명의 후보 중 가장 늦깎이 출마자였지만 비박계 단일 후보로 추대되는 기염을 토하며 덩치를 키웠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1억 원’의 기탁금 외에는 큰돈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1억 쓰고 수십억의 주가를 올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박계 주자로 나섰던 김용태 의원은 정병국 의원과 단일화되면서 후보군에서 물러났다. 그 뒤 정 의원은 주 후보와 단일화에 나섰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주 후보로 단일화됐다. 표심을 알 수 없는 수도권보다 새누리당 충성 당원이 많은 TK 주자를 내세워야만 승산이 있다는 비박계의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도출됐다. 본인이 단일화 후보가 될 것이라 예상을 못한 탓인지 주 후보 캠프는 우왕좌왕했다. 2006년 강재섭 당 대표 이후 10년 만에 잘만 하면 TK의 맹주이자 새누리당의 간판이 될 찬스를 잡은 것이다. 가뜩이나 TK 정치권은 김무성 전 대표의 등장으로 PK에 비해 정치적 위상이 위축된 상태였다. 주 후보 캠프는 국회 앞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을 200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한 달 간 빌렸다. 노트북 2대를 대여했고 테이블 2개, 의자 10개를 빌렸다. 그렇게 든 돈이 몇 십만 원 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는 ‘주호영을 사랑하는 모임’과 ‘주호영과 함께 하는 사람들’로 채웠다. 불교계와 교감이 깊은 주 후보를 두고 불교계가 나섰고, 4선을 할 동안 알음알음 도왔던 사람들이 당원을 모아 버스를 대절해 권역별 연설회장에 나타났다. 주 후보 캠프는 고무됐다. 당 원내부대표,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에다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특임장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특보를 한 이력을 내세웠다. 당무 경험이 가장 많다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패착은 크게 두 곳에서 나왔다고 자평한다. 하나는 전국 배낭여행 중인 김 전 대표의 설레발이었다.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주 후보의 말이 무색하게 김 전 대표는 “비박계 후보가 단일화할 것이고 나는 단일화 후보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전당대회를 나흘 앞두고 실제 주 후보로 단일화했지만 이런 예고된 단일화는 컨벤션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전대 전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의 조찬 회동이 꼽힌다. 여권 한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은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 서울 종로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패한 패장”이라며 “당내 세력이 없고 비박계에서도 비토 여론이 있는 그를 오로지 차기 대선 주자라는 이유로 만났다. 무슨 이득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지난 총선에서 옆 지역구 의원이었던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자신의 지역(대구 수성을)을 ‘여성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하면서 주 의원은 낙천했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며 살아 돌아왔고 예상보다 빨리 복당도 됐다. 하지만 그를 두고 의원들 사이에선 “평소 술, 밥 잘 사지 않던 주 의원이었지만 복당하고 나서는 밥 한 번 살 수 있었지 않느냐”며 “하지만 그런 자리를 전혀 하지 않다가 불쑥 당 대표에 나선다고 하니 누가 도와주려했겠는가”라고 수군대고 있다. 평소 어장 관리를 제대로 하라는 일종의 비아냥거림이다. 하지만 주 후보는 당 대표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하며 분투했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