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잠이 업무효율을 높여준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이제 책상에 엎드린 사람을 보고 게으르다고 타박해선 안될 듯하다. | ||
흔히 낮잠을 자면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하기 쉽지만 “낮잠을 잘 자면 피로를 말끔히 풀어 일의 효율을 높이고, 건강을 지키는 데도 좋다”는 것이 낮잠 예찬론자들의 주장이다. 나라에 따라서는 스페인처럼 ‘시에스타’ 라고 해서 전통적인 낮잠 문화가 있는 곳도 있다.
원래 우리 몸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지 8시간 정도가 지나면 다시 수면이 필요하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6~7시에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오후 2~3시에 많이 졸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식곤증을 호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식사량이 많든 적든 수면리듬상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다. 졸음이 쏟아지는 데도 억지로 참고 커피를 연거푸 마시면서 일해야 할까. 아니면 잠깐의 낮잠으로 더 활기찬 오후를 보내는 게 좋을까.
낮잠 예찬론자들은 낮잠을 자고 나면 창의력과 기억력, 생산성 등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수면의학자들도 일부러 낮잠을 잘 필요는 없지만 오후의 낮잠이 일의 효율을 높이고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데 동의한다.
실제로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최근 직장인들을 낮잠을 자는 그룹과 자지 않는 그룹으로 나눠 작업효율을 조사했더니,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잔 그룹의 작업효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낮잠을 잘 경우 대뇌가 정보를 가공하는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대뇌 정보량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작업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낮잠을 자면 정보가 기억 속에 고정된다는 것이다.
과학잡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는 하루 10~20분의 짧은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학습·기억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루 15분 낮잠기술>이라는 책의 저자 브루노 콤비는 여러 연구결과를 인용해 밤잠과 마찬가지로 낮잠도 뇌파가 느슨해지며 스트레스와 피로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 만큼 건강과 장수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낮잠을 잘 필요는 없다. 밤잠이 부족하지 않도록 밤에 깊이 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단, 낮에 졸려서 일에 집중이 안 되고 피곤을 참을 수 없는 경우, 여행이나 휴가 출장 등으로 피로가 쌓여 있는 경우, 풀리지 않는 문제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억지로 참기보다는 짧은 낮잠을 청하는 것이 좋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식사 후에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거나 오후 2~4시 무렵에 낮잠을 자면 된다.
하지만 너무 긴 낮잠을 자면 오히려 자지 않느니만 못하다. 너무 긴 시간 자게 되면 밤잠을 방해하고 오히려 무기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이 ‘낮잠을 길게 자면 기운이 빠진다’고 했던 말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예송이비인후과 수면센터 박동선 원장은 “가장 적합한 시간은 10~15분 정도”라며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잠을 자되 길어도 30분은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10~20분 정도 짧게 잘 때는 일의 능률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반면, 30분 이상 잔 사람들은 낮잠 뒤 30분 정도 무기력 상태에 빠져 오히려 일 능률이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30분 이상의 낮잠이 좋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30분 이상이 지나면 3단계 이상의 깊은 수면(델타수면)주기에 들어서는데, 이때는 눈을 뜨기 힘들 뿐만 아니라 억지로 일어나게 되면 더 졸음이 쏟아진다.
보통 1~4단계의 논렘수면과 렘수면이 한 주기를 이룬다. 1, 2단계는 얕은 잠이고 3, 4단계는 깊은 잠에 든 상태이며, 렘수면은 꿈꾸는 수면이라고도 한다. 이 중 1, 2단계일 때는 쉽게 깰 수 있지만 3, 4단계에 들어가면 깨기 힘들고, 깬 다음에는 더 피곤하고 졸린다.
참고로 한 주기를 거치는 데는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밤에 잠을 잘 때는 자는 시간에 따라 수면주기가 4~6번까지 반복된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애용하던 팔걸이 의자에서 낮잠을 즐겨 잤는데 바닥에 금속접시를 놓고 스푼을 쥔 채 자는 습관으로 유명하다. 이런 버릇은 수면이 깊은 단계로 넘어가 렘수면 단계에 이르면 근육긴장이 느슨해지면서 스푼이 떨어지게 되고, 금속접시에 부딪쳐 큰소리가 나면서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기 위한 것이었다.
한방에서도 기가 한 번 순환하는 시간인 30분 내외의 낮잠이 가장 적당한 것으로 본다. “오관을 닫고 몸을 편하게 하는 낮잠은 위기, 즉 양기를 아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30분 이상 자게 되면 오히려 위기의 정상적인 흐름을 방해해서 몸이 힘들어진다”는 것이 서초 함소아한의원 김상복 원장의 설명이다.
참고로 한방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인 기(氣)를 크게 위기(衛氣)와 영기(榮氣)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몸의 외부인 몸체와 팔다리 그리고 몸의 내부인 5장 6부 구석구석을 밤낮없이 50번이나 돌고 있는 것이 영기, 낮에는 몸체와 팔다리,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감각기관을 일컫는 오관 등 양의 부위를 25번 돌고, 밤에는 5장 6부인 음의 부위를 25번 도는 기가 위기다.
자세는 옆으로 누어서 자는 것이 낫다. 사무실에서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의자에 기대 잠깐 조는 것만으로도 행복 그 자체이지만 가능하다면 휴게실 소파 등을 이용해 옆으로 누워서 무릎을 구부리고 자는 자세가 가장 좋다. 앉아서 잘 때는 ‘마부자세’라고 해서 허리의 중심을 약간 낮게 하고 머리와 상체는 앞으로 기울인 다음 다리를 가볍게 벌리고 자는 자세를 취하면 된다. 양손은 무릎이나 다리 위에 편하게 내려놓으면 힘들이지 않고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다..
만약 평소 불면증이나 수면장애가 있는 경우는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증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불면증이 없던 경우라도 긴 시간 낮잠을 자는 게 습관이 되거나 오후 4시 이후에 낮잠을 자면 수면주기에 문제를 일으켜 불면증이 생기기 쉽다. 따라서 아이들 낮잠을 재울 때도 가능하면 2~4시에 재우는 것이 좋다.
또 수면무호흡이 있거나 코를 고는 사람들이 밤잠에 문제가 있어서 주간 졸음증을 겪는 것이 아닌지 낮잠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밤에 코를 골고 수면무호흡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낮에 심한 졸음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항상 피곤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명료하지 않은 상태라 낮 동안 지속적으로 졸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는 일반적인 졸음이나 나른함과는 달리 참지 못할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는 중요한 회의시간에도 깜빡깜빡 졸거나 운전,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졸게 된다. 몸을 움직이고 있어도 졸음이 쏟아지고 웃거나 흥분할 때 증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면 기면병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박동선 원장은 “유난히 낮에 졸릴 때는 단순히 나른하게 졸린 것인지 병적인 졸음인지부터 체크해보라”고 조언한다.
기면병이나 수면무호흡증 같은 질병이 의심된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있을 때는 다음날 낮에 찾아오는 피로와 졸음은 물론 그대로 두면 고혈압이나 심장병, 뇌졸중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수면 중 돌연사의 위험도 있다. 또한 짜증을 잘 내고 화를 참지 못하며 기억력, 집중력,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낮잠효과 200% 올리기]
1. 잠을 방해할 만한 것들을 제거한다 → 창문은 닫고, 전화벨과 조명은 잠깐 꺼두는 것이 좋다.
2. 커피를 한 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 →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면 신경이 긴장돼서 잠이 쉬 들지 않는다.
3. 자는 자세는 최대한 편안하게 → 사무실에서 잘 때는 의자등받이를 이용해 깊숙이 앉아 다리를 올리고 자거나, 책상에 엎드린 채 선잠을 자는 것도 좋다.
4.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잔다 → 매일 정해진 시간대에 일정 시간 동안 잠깐 눈을 붙인다.
5. 너무 길게 자지 않는다 → 10~15분 정도가 적당하다. 휴대폰이나 시계로 알람을 맞춰 너무 길게 자는 일이 없도록 한다.
자료=예송이비인후과 수면센터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서초 함소아한의원 김상복 원장, 예송이비인후과 박동선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