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 못지않게 가족들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식기.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가볍고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그릇을 모두 내다 버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흔히 쓰는 플라스틱 용기는 크게 폴리프로필렌(PP) 제품과 폴리카보네이트(PC) 제품 두 가지로 나뉜다. 폴리프로필렌 제품은 탄소와 수소로 결합된 것으로 반투명한 재질이고, 폴리카보네이트는 화학물질인 비스페놀A를 원료로 한다. 이 중 젖병이나 물병, 캔 내부 코팅제, 가전제품 부품 등으로 많이 쓰이는 PC 소재의 경우, 열을 받으면 인체의 내분비계에 이상을 일으키는 물질인 비스페놀A가 나온다는 논란이 벌써부터 제기돼 왔다.
최근 PP 소재 제품을 생산하는 코멕스가 “PC 소재는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와 학계에서 유해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업체 간의 공방이 뜨겁다.
실제로 세계적인 환경운동 단체인 그린피스는 유독성에 따라 플라스틱의 순위를 매긴 `플라스틱 피라미드’에서 PC를 폴리염화비닐(PVC) 다음으로 유해한 것으로 규정했다.
환경호르몬을 유발해 생식·면역기능을 약화시키고 암 발생률을 높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태울 경우에는 유독성 화학물질인 다이옥신까지 발생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강력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은 생식기 장애와 발달장애, 면역계 손상, 호르몬 이상 등을 일으키는 성분으로 쓰레기를 태울 때 가장 많이 나오고 자동차 배기가스, 담배연기 등에서도 나온다. 특히 PC에는 납이 포함돼 있어 미세먼지 등과 섞여 체내에 흡수될 경우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폴리우레탄(PU), 폴리스티렌(PS) 등도 PC와 같은 순위를 차지했고, 주스나 음료를 담는 페트병인 폴리에틸렌텔레프탈레이트(PET)는 유해도가 한 단계 낮았다. 다음으로는 폴리프로필렌과 폴리에티렌(PE)이었다.
하지만 ‘락앤락’을 만드는 하나코비는 “PC 제품은 전체의 5% 정도만 만들고 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정한 공인기관에서 아홉 차례 실험을 해 안전성을 입증받았고 미국 식품의약청, 유럽 식품안전청, 일본 후생성의 엄격한 검사도 통과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또 “비스페놀A가 2.5ppm(100만분의 1) 이하로 검출되면 된다는 식약청 기준에 따라 생산하고 있다. PC에서 비스페놀A가 검출된다고 해도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하나코비는 코멕스를 상대로 2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상태다.
이런 공방을 지켜보는 소비자들은 더 혼란스럽다. 플라스틱도 주의해서 쓰면 안전한 만큼 과민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플라스틱 식기, 혹은 플라스틱을 이용해서 합성한 식기는 어떤 종류든 문제가 있다는 입장도 많다.
플라스틱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은 멜라민(MF) 수지. 이유식 그릇이나 음식점의 플라스틱 그릇 등 사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단단하고 윤이 나는 것이 멜라민 재질이다. 식물성 펄프로 만들어 덜 유해하다. 하지만 멜라민 수지를 모방한 경질 플라스틱 제품과의 구별이 어렵고, 진짜 멜라민이라고 해도 합성수지를 첨가해야 성형이 되는 만큼 완전 무공해는 아니다. 또 멜라닌 식기에 뜨거운 국 등을 담으면 발암성이 있는 포름알데히드가 미량이나마 검출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학부모들이 학교 급식에 멜라닌 재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플라스틱 제품에서 유해물질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플라스틱 제품을 하루아침에 유리나 스테인리스 등의 그릇으로 모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환경정의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 박명숙 국장은 “식기뿐 아니라 장난감도 플라스틱보다는 왁스나 코팅,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나무, 천 등의 소재가 낫다. 물론 이런 장난감보다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다양한 놀이,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평소 플라스틱 식기를 보다 안전하게 쓰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이라도 잘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가열하지 않는다. 어떤 플라스틱 제품이든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게 가장 좋지 않다. 젖병도 전자레인지에 넣지 않는 게 좋고 끓는 물에 소독할 때는 3~5분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한다.
플라스틱 용기에 뜨겁거나 기름기가 있는 음식을 넣는 것도 좋지 않다. 또 냉장고 속에 오래 보관해도 환경호르몬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둘째, 거친 수세미를 사용해 닦는 것도 금물이다. 플라스틱 성분이 음식에 녹아날 수 있으므로 부드러운 수세미를 사용한다.
셋째, 즉석밥이나 죽 등은 전자레인지에 가열할 경우 유리나 도자기 그릇 등에 옮겨 담는다. 제조업체는 폴리프로필렌 소재라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즉석 카레나 짜장 등의 레토르트 식품 포장재의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도 아직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는 보고가 없다. 그렇더라도 전자레인지보다는 중탕을 이용하면 안전하다.
종이컵이나 스티로폼 용기 등의 일회용기를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종이컵은 펄프로 만든 내부를 LDPE라는 경질 폴리에티렌의 일종인 플라스틱으로 코팅처리를 한다. LDPE는 상온에서도 독성 기체를 내뿜는 PVC 같은 연질 플라스틱과는 달리 상온에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뜨거운 물 등을 부으면 미량이라도 톨루엔, 시안화수소 등의 독성 물질이 나올 수 있다. 장기간 섭취하면 정신 이상, 우울증, 짜증, 간·신경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들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남은 음식을 싸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 쓰는 랩도 요주의 대상이다. 랩의 원료는 크게 염화비닐계와 폴리에틸렌계로 구분되는데 염화비닐계의 랩은 소각할 때 다이옥신이 발생하고 내열성을 높이거나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안정제, 가소제, 난연제, 곰팡이방지제 등 여러 가지 첨가물이 사용된다. 140~160℃를 넘지 않으면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안전성이 의심스럽다. 따라서 염화비닐계 랩인지 확인하는 게 좋고, 가능하면 랩을 쓰지 않고 유리뚜껑 등을 쓰는 게 낫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임종한 교수, 환경정의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 박명숙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