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곡을 통해 쌀밥에는 없거나 부족한 단백질, 필수 지방산, 비타민,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잘 공급되면 전반적인 신진대사가 원활해지고, 당뇨나 고혈압 등의 성인병과 암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괴로운 질환인 아토피에도 쌀에 비해 농약을 적게 쓰거나 쓰지 않는 잡곡밥을 먹는 게 좋다. 최근에는 섬유질이 풍부해서 적은 양을 먹어도 쉬 포만감이 느껴지고 배변을 좋게 만든다고 해서 잡곡다이어트까지 유행이다. 기온이 들쑥날쑥한 환절기를 건강하게 보내려면 잘 여문 햇잡곡으로 지은 구수한 잡곡밥을 밥상에 올려보자.
쌀은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50~90%의 열량원을 차지하는 주식이다. 최근 국제연구잡지인 ‘항암연구’는 쌀겨(미강)와 쌀눈에 많은 항암물질을 소개하는 특별호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항암물질이 많은 쌀겨와 쌀눈을 섭취하려면 여러 번 도정한 하얀 쌀밥이 아니라 현미밥을 먹어야 한다.
백미와 현미의 영양가를 보면 75~76%의 당질을 비슷하게 함유하고 있지만 현미는 백미보다 지방이 2배 이상이고 섬유소는 17배, 비타민 B1 및 B2는 각각 3배 정도, 비타민 E도 4배 정도 많다.
또 현미에는 쌀눈과 식이섬유 그리고 여러 가지 미강 내에 있는 생리활성물질을 비롯해 비타민 E, 피틴산, 이노시톨, 식물스테롤, 감마오리자놀 등이 있어서 암 예방은 물론 혈관질환·당뇨·간질환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정과정을 적게 거친 현미에 영양이 많은 것처럼 다른 잡곡들에도 쌀에 없거나 부족한 각종 영양소들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예를 들어 단백질이 41%나 들어 있어 ‘밭에서 나는 고기’로 불리는 콩의 경우에는 여성의 유방암, 골다공증, 또 남성의 전립선 비대·전립선암 예방에 좋은 이소플라본이라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성분이 풍부하다. “뿐만 아니라 콩에는 페놀성분, 사포닌, 트립신저해제, 피틴산 성분 등이 있어 암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의 설명이다.
흔히 먹는 잡곡의 효능은 다음과 같다.
△변비 없애는 현미=천천히 소화되고 장의 연동운동을 도와 장을 활발히 움직이도록 해서 배변량이 늘어나게 된다. 대장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현미가 들어가면 흰쌀밥보다 거칠고 충분히 씹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씹어서 삼키는 버릇을 들이면 오히려 위장질환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 밥을 지을 때는 흰쌀은 30분 정도만 불리는 게 좋지만 현미는 두세 시간 이상 불리는 것이 좋고, 저녁에 불려두고 아침에 밥을 짓는 것도 괜찮다.
△다이어트에 좋은 율무=비만한 사람이 율무를 오래 먹으면 체중이 줄어든다. 하지만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깔깔하다. 율무차를 많이 마시는 것도 좋다. 피부가 거칠거나 습진, 버짐이 났을 때는 율무를 삶은 물에 자주 씻고, 간질환이나 황달에는 율무 삶은 물을 자주 마시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임신부나 변비가 심하거나 소변을 자주 보는 사람은 먹지 않는 게 좋다.
△당뇨·동맥경화증 개선시키는 콩=쌀에 부족한 영양소인 필수아미노산 중 리신과 트립토판이 콩에 많다. 반면 콩에 부족한 필수아미노산인 메티오닌과 시스테인 등은 쌀에 많다. 그래서 콩과 현미는 궁합이 잘 맞는다.
특히 당뇨병, 동맥경화증이 있는 경우에 콩을 넣으면 좋다. 섬유소가 풍부해서 장에서 천천히 흡수되는 만큼 식사 후에 혈당이 서서히 올라간다. 또 혈압을 조절하고 몸의 붓기를 빼주는 칼륨도 풍부하다.
콩 중에서도 검은콩은 뛰어난 해독작용을 한다. 육식, 어패류, 생선에 중독되었을 때 삶아 물을 마시면 좋다.
△위 따뜻하게 하는 찹쌀=소화기능이 약해서 조금만 먹어도 속이 쓰리고 배가 부르며 트림이 나는 사람에게 좋다. 몸이 차서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다.
△설사에 좋은 기장과 조=설사를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질 수 있다. 특히 찰기장은 팥과 섞어 오곡밥이나 떡을 만들어 먹으면 맛이 좋다.
소화기에 쌓인 열을 가라앉히는 잡곡이 조. 차조는 기력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열을 내리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설사를 멈추게 하려면 차조로 미음을 쑤어 먹으면 좋다.
△항산화·항암작용 기대되는 수수=노화를 방지하는 항산화물질인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또 기장과 함께 실험용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암세포를 제거하는 면역세포인 ‘자연 살해세포’의 기능을 한층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천연소화제 보리=식욕을 돋우고 설사를 멎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 식체를 없애는 곡식으로 유명하다. 한방에서는 보리 엿기름을 소화제로 쓴다.
△노화를 방지하는 흑미·검은깨=흑미의 검은 색깔을 내는 안토시아닌 색소에 뛰어난 항암, 노화방지 효과가 있다. 검은깨 역시 젊어지는 식품이다. 검은깨를 많이 먹으면 몸이 가볍고 머리가 검게 되며 오장이 튼튼해지고 중풍, 고혈압, 동맥경화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대장암을 예방하는 옥수수=섬유질 성분이 배변을 촉진하고 유해물질이 보다 빨리 장을 통과하도록 돕는다. 따라서 대장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참고로 한방에서는 체질에 따라 궁합이 잘 맞는 잡곡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머리가 크고 허리가 가는 태양인이라면 메밀이 잘 맞는다. 위와 장 등 소화기 기능을 튼튼히 만들어 준다. 찰 메밀을 이용하면 더 구수하고 맛이 좋다. 또 키가 크고 배가 나온 태음인은 콩·현미·율무·고구마 등을 밥에 넣어 먹으면 비만 예방에 효과가 있고, 소화기능은 좋지만 신장 기능과 하체가 약한 소양인은 철분과 단백질이 풍부한 보리가 잘 맞는다. 비타민과 사포닌이 많이 들어 있어 독을 풀고 장을 깨끗하게 만드는 팥도 좋다. 소화기능이 약하면서 왜소하고 마른 체형인 소음인이라면 소화기능을 좋게 만드는 찹쌀·감자 등이 잘 맞고, 보리·팥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 태음인도 보리를 피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잡곡을 어떻게 섞어 먹어야 좋을까. 잡곡을 섞는 비율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정경연(정경연한의원 원장) 한의사는 “각자의 기호에 맞게 섞어 먹으면 되는데, 처음 잡곡밥을 먹기 시작할 때는 백미:잡곡의 비율을 8:2 정도로 했다가 조금씩 잡곡의 비율을 늘려가면 된다. 쌀보다 잡곡이 많아지지 않도록 쌀 1컵에 잡곡이 한 줌 정도 들어가면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또 12곡, 15곡, 24곡 등 너무 많은 종류의 잡곡을 넣기보다는 자신의 체질에 맞는 2~4가지 정도만 구입해서 넣는 게 좋다. 너무 많은 잡곡이 들어가면 체질에 잘 맞지 않는 것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잡곡밥을 지을 때는 콩과 팥, 율무는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사용하고, 전기밥솥보다는 압력솥이나 전기압력솥을 이용하면 더 부드럽고 맛있는 밥이 된다. 이때 천연소금을 1작은술 넣고 지으면 밥맛이 훨씬 좋아진다. 이때 잡곡을 불린 물도 무심코 버리지 않는다. 수용성 비타민 등의 성분이 녹아 있는 만큼 쌀뜨물처럼 국, 찌개를 끓일 때 쓰거나 세안용으로 써도 된다.
잡곡밥 외에도 잡곡밥으로 빵이나 떡, 쿠키, 강정 등의 건강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만들어 놓았다가 아이들이 간식을 찾을 때 주면 그야말로 영양만점 간식으로 손색이 없다. 예를 들어 검은콩의 경우 깨끗이 씻어서 말린 다음 곱게 가루를 내서 우유에 미숫가루처럼 타 마시면 청소년들의 두뇌회전에 좋은 간식이 된다. 모유를 끊고 이유식을 하는 아기가 있다면 볶은 현미에 물을 붓고 끓여서 수시로 먹이면 좋다. 변비가 없고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건강체질이 된다.
잡곡을 보관할 때는 1.5ℓ 빈 PET병을 깨끗이 씻어서 넣어두면 쓰기에 편하고 속이 보여서 좋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벌레가 생길 염려가 없어서 좋고, 작은 항아리에 보관해도 좋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정경연한의원 정경연 원장,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