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관의 문제는 때론 생명까지 위협한다. 삼성서울병원 김영욱 교수가 혈관질환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 ||
우리 몸속에 퍼져 있는 혈관을 모두 합한 길이는 무려 12만 5000㎞. 지구를 몇 바퀴 감을 수 있는 정도로 길다. 이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막히면 크고 작은 탈이 나기 마련이다.
젊고 건강한 혈관은 내벽이 깨끗하고 직경이 커서 혈액의 흐름이 원활하다. 이때는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리한 운동을 해서 혈압이 어느 정도 올라가더라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혈관 내벽에 콜레스테롤, 피떡이라고 하는 혈전이 프라그를 만들어 직경이 좁아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심하면 아예 막혀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기도 한다. 혈전은 혈관 안의 혈액이 굳어져서 생긴 덩어리. 원래 혈관 내의 혈액은 응고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만 혈액이 막히거나 혈관 내피의 변화 등으로 혈전이 생기게 된다. 이런 혈관은 말랑말랑하지 않고 딱딱하다. 흔히 말하는 동맥경화증이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한다.
혈관이 존재하지 않는 장기는 없는 만큼 혈관 때문에 생기는 병은 어디에서도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경화증이 생기면 혈액순환이 나빠져서 협심증이 생기고,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혀 심장 근육이 죽으면 심근경색이 찾아온다. 뇌혈관의 경우 혈관이 터지면 뇌출혈이, 뇌세포가 죽으면 뇌경색을 일으킨다. 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 김영욱 교수는 “모두 방치하다가는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혈관질환으로, 실제로 돌연사의 주된 원인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큰 혈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세혈관 역시 어느 한 곳이라도 막히면 안 된다. 만약 뇌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면 자꾸 깜빡깜빡 하는 기억력 감퇴로 고생하게 된다. 햇볕에 의한 피부노화도 알고 보면 피부의 모세혈관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햇볕에 많이 노출될수록 피부에 있는 모세혈관의 크기와 숫자가 감소하면서 영양분,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피부에 탄력을 주는 물질이 재생되지 않아 주름살 등을 만드는 것이다.
남성들의 관심사인 발기력도 음경으로 가는 미세혈관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찾아온다. 음경은 가는 동맥과 정맥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으로, 혈액이 충분히 흘러 들어와야 팽창하면서 발기가 된다. 하지만 혈관의 지름이 0.3㎜ 정도로 가늘어서 조금이라도 탄력을 잃거나 내부 직경이 좁아지면 발기력 저하, 발기부전으로 나타날 수 있다.
동맥경화로 심장혈관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는 음경에 있는 혈관은 이미 손상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기부전이 있는 남성들에게는 협심증, 심근경색 같은 심장병이나 동맥경화증이 흔하다. 발기부전이 나타난 후 2년 내에 심장마비, 뇌졸중이 발생할 확률이 25%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리의 혈관이 보기 싫게 울퉁불퉁 튀어나오는 하지정맥류도 흔한 혈관질환이다. 다리에서 심장으로 올라가는 정맥 안에 있는 판막이 망가지면서 혈액이 역류하거나 정체되는 것이 원인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그대로 두면 피부염이 생기거나 뼈가 썩을 수 있다. 정맥류가 한쪽에만 생기는 경우에는 무릎 관절염, 허리 디스크 발생을 부추긴다. 증상 정도에 따라 주사만으로 치료하거나 레이저수술을 하면 쉽게 좋아진다. 참고로 하지정맥류는 온종일 서서 일하는 판매사원이나 교사 같은 직업에서 많이 나타난다.
20~40대의 흡연 남성이라면 버거스씨병이라는 혈관질환의 위험이 크다. 다리의 작은 동맥에 혈전이 쌓이면서 혈관이 막혀 발가락이나 발이 썩어 들어가는 병이다. 초기에 담배를 끊고 약물치료를 하면 좋아지지만 방치하다가 썩은 부분을 잘라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요즘 간이식이나 신장이식 등의 장기이식이 점차 늘고 있는데, 장기이식 후에 겪어야 하는 만성 거부반응도 혈관에 생기는 일종의 면역반응이다.
그렇다면 혈관을 보다 빨리 노화시키는 주범은 무엇일까. 다행히 흡연이나 과음, 스트레스처럼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없앨 수 있는 요소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흡연은 혈관의 노화를 촉진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폐암, 기관지염 등의 호흡기 질환은 물론 심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이 60~70%나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졸중 발생률도 2~3배나 높다.
흡연을 하면 담배 속의 유해물질로 인해 혈관의 내벽, 즉 혈관 내피세포가 손상된다. 또 손상된 혈관벽에 혈관수축제를 분비하는 혈소판이 쉽게 달라붙어 결국 혈류량이 줄어들게 된다. 담배연기에 많은 일산화탄소는 혈액 내에서 헤모글로빈 대신 산소와 결합해 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흡연으로 인해 생기는 활성산소 역시 혈관 내벽을 손상시켜 동맥경화증의 위험을 높이고 노화속도를 빠르게 만든다. 그런 데다 흡연을 하면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제마저 파괴된다.
흡연으로 동맥경화가 되면 음경으로 가는 혈액이 적어져 발기부전이 된다는 것은 이미 상식.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흡연을 하면 음경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담배를 피우면 음경의 신축성을 담당하고 있는 근육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평소 술을 좋아하거나 업무상 술 약속이 많은 사람도 혈관건강의 요주의 대상이다. 술만 마셨다 하면 2~3차까지 이어져 과음, 폭음을 하는 경우에는 동맥, 특히 뇌동맥을 심하게 확장시켜 뇌동맥경화증 같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뇌출혈, 뇌경색의 위험이 커진다.
업무 또는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빼놓을 수 없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 안에서 활성산소가 많이 만들어져서 혈관에 나쁜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서 다치기라도 하면 출혈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 작동해 혈소판이나 혈액 응고인자가 증가한다. 그만큼 혈액이 쉽게 굳어져 혈관을 노화시키게 된다”는 것이 AG클리닉 권용욱 원장의 설명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필요한 부위에 고루 혈액이 공급되지 않고 보다 중요한 기능을 하는 부위에 집중된다. 즉 뇌와 심장, 근육으로 가는 혈류가 증가하는 반면 피부 소화기관 신장 간 성기 등으로 가는 혈류는 감소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풀지 못하고 오래 지속되면 소화기관으로 가는 혈액이 부족해져서 소화가 안 되는 것처럼 하나둘씩 이상이 생긴다.
요즘 말하는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을 포함해 혈당 혈압 중성지방치 콜레스테롤치 이상 다섯 가지 가운데 세 가지에 해당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이 중 한 가지만 이상이 있어도 이미 혈관 손상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세종병원 내분비내과팀에 따르면 환자 192명을 대상으로 목으로 올라가는 경동맥의 피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대사 이상 요소가 1개만 있어도 정상보다 속도가 10% 이상 빨랐고 4개 이상인 경우 30% 이상 빨랐다고 한다. 그만큼 혈관의 탄력도가 떨어지고 혈관에 불순물이 많다는 의미이다.
대사증후군은 유전적인 요인도 있지만 주로 흡연이나 과음, 불규칙한 식사, 운동 부족 등 잘못된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많이 발병한다. 따라서 이런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지 않으면 혈관 손상이 계속 진행되고 혈전이 혈관을 좁히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아예 막아버려 자칫 심장병, 뇌졸중으로 이어지게 된다.
◇복부비만=가령 체중이 똑같은 A와 B가 있다고 하자. 하지만 배는 B가 더 많이 나왔다. 그렇다면 A보다는 B가 더 혈관의 상태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바로 넉넉한 뱃살 때문이다. 같은 지방이라도 가슴, 팔, 엉덩이에 있는 피하지방보다는 허리와 복부에 있는 내장지방이 우리 신체에 훨씬 나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유해물질을 분비하거나 혈액에 녹아 동맥경화를 잘 일으키고 당·지질 대사 이상을 불러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을 만든다. 복부비만이 있는 성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 발생률이 9배 높고, 뇌졸중은 2.3배가 더 높다.
◇고혈압=고혈압도 혈관의 건강을 위협한다. 혈관에 지속적으로 높은 압력을 가해지면 결국 혈관 내벽이 손상되는데, 이것이 아무는 과정에서 혈관이 딱딱해진다. 따라서 혈압이 높아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번 먹으면 평생 끊기 힘들다거나 부작용이 염려돼 복용하지 않는 것은 금물이다.
◇당뇨병=당뇨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몸 전체의 모세혈관이 쉽게 손상된다. 따라서 손상된 혈관과 관련된 장기가 나빠지는 만성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혈액 내의 끈끈한 포도당과 인슐린에 의해 혈관이 서서히 망가진다. 예를 들어 눈의 망막으로 가는 혈관이 손상되면 시력이 나빠지고, 손발을 지나는 말초 혈관이 손상되면 족부궤양이 생긴다.
◇고지혈증=지방대사가 잘 이뤄지지 않아 혈액 내에 나쁜 콜레스테롤(L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의 수치가 높은 게 고지혈증이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혈관 건강의 바로미터가 된다. 혈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아야 좋고,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아야 한다. 중성지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방으로, 에너지원으로 이용되고 남으면 차곡차곡 쌓여 비만의 원인이 된다.
※혈관을 건강하고 젊게 유지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호에 소개합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 김영욱 교수, AG클리닉 권용욱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