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화가 안된다고 소화제를 너무 자주 마음대로 복용하다가는 체내 소화효소 분비가 줄고 소화운동이 약해지는 등 우리 몸의 소화능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 ||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화제를 좋아한다. 매사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기질 탓이다. 그래서 소화제 정도는 사실 약이라는 생각도 크게 들지 않아 속이 조금만 불편해도 소화제를 찾곤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소화제 소비율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해 1분기에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병·의원의 진료 내역을 바탕으로 처방 당 약품수를 조사한 결과, 한 질병에 대한 처방 1건 당 약품수가 평균 4.13개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픈 곳은 한 군데이지만 평균 네 가지의 약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 가지 약을 한꺼번에 먹을 경우 약값 부담이 느는 것은 물론 약효가 줄거나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평균 4.13개라는 수치는 미국의 1.97개, 호주 2.16개와 비교하면 거의 2배다. 일본 역시 우리보다 낮은 3.0개다. 참고로 처방 1건당 약품 수는 의료기관 규모별로도 차이가 났다. 의원급이 4.24개로 대학병원과 같은 종합전문요양기관의 3.3개, 종합병원의 3.9개보다는 많았다.
이처럼 다른 나라보다 처방 약품수가 많은 것은 제산제, 궤양치료제나 정장제 등의 소화기 관련 약 처방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전체 의료기관에서 소화기 관련 약 처방이 필요 없는 질환에서도 소화제 처방 비율이 60.5%에 달해 소화기 관련 약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았다면 처방받은 약에 소화제·제산제가 들어갈 수 있다. 약으로 인한 소화불량, 위장장애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에 소염·진통·해열제가 위산 분비를 자극해서 속이 쓰리고 거북한 것을 막을 목적으로 소화제, 제산제 등을 함께 처방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감기약에 소화제를 처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소화불량이 아닌데도 다른 치료약에 소화제를 복합처방하면 약물이 위를 자극해 과산 또는 저산 상태를 만들어 오히려 소화불량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왜 소화제를 남용하면 문제가 될까. 무엇보다 소화를 돕는 소화제의 존재 이유 자체를 잃게 된다. 유태우의 신건강인센터 유태우 원장은 “영양과잉 시대인 요즘은 사실 소화불량은 고마운 증상이다. 그런데 소화제를 자주 복용해서 빨리 소화불량을 없애려고만 하면 우리 몸 스스로 위장 운동을 하고, 소화효소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소화운동이 약해져서 소화제를 먹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되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음식을 섭취해도 우리 몸은 스스로 소화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제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린다. 처음에는 과식, 포식 등으로 인해 소화가 안 되지만 나중에는 소화제 자체가 소화불량을 만드는 생각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화제를 계속 복용하면 나중에는 더 많이 복용해야 원하는 약효를 볼 수 있게 된다. 소화효소제를 남용하면 우리 몸의 소화효소 분비가 점점 줄어 전보다 용량을 더 늘려야 되고, 위장운동 촉진제 역시 자주 복용하면 위장이 스스로 운동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어져서 용량을 늘려야 한다. 췌장의 기능도 점차 떨어질 위험이 따른다.
또한 소화제도 약인 만큼 다른 약들보다 상대적으로 가볍기는 해도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소화제는 크게 위장운동촉진제와 소화효소제 두 가지가 있다. 위장의 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속이 더부룩할 때 많이 사용하는 위장운동촉진제는 다시 위장의 운동을 돕는 도파민 차단제와 위장과 함께 대장의 운동까지 촉진시키는 세로토닌 작용제로 나눈다. 도파민 차단제의 경우 드물게는 소화기관 외에 뇌에도 영향을 주어 호르몬의 분비 변화, 신경계 부작용을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즙분비와 호르몬 분비를 늘려 갑자기 가슴이 탱탱해지면서 젖이 나온다거나 손발이 뻣뻣해지는 등의 증상이 그것이다. 세로토닌 작용제는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소화효소제에는 아밀라아제, 리파아제, 프로테아제 같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분해효소가 포함되어 있다. 부작용으로는 피부발진 같은 알레르기 반응이 보고돼 있다.
소화효소제의 단점은 알칼리성인 만큼 위 속에 들어가면 강한 위산에 의해 약효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십이지장의 소화를 돕는 것이 소화효소제의 작용이지만, 대부분은 소화효소제를 먹지 않더라도 효소가 부족하지 않다. 따라서 췌장염처럼 췌장의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소화가 안 되고 영양장애가 있을 때 처방하는 것이 원칙이다. 췌장염에 걸리면 지방분해 효소가 분비되지 못하므로 소화효소제를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소화효소제를 복용할 때는 그냥 소화불량보다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을 때가 적합하다.
흔히 위산과다로 인해 속이 쓰린 경우에 복용하는 제산제도 주의하는 것이 좋다. 알루미늄 성분이 든 제산제는 오래 복용하면 소화불량, 변비를 만들고 마그네슘이 든 것은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한 가지, 위산 과다가 아니라 반대로 위산이 적은 경우에도 속이 쓰리는 증상을 보인다. 위산이 적어서 속이 쓰릴 때는 제산제 대신 소화제를 복용해야 한다. 쉽게 알아보려면 식사를 한 후에 사과식초를 한 스푼 먹어봐서 속쓰림이 심해지면 위산이 많은 경우다.
자주 소화제에 의지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태우 원장은 “소화제를 습관적으로 자주 복용하고 있다면, 소화제를 복용하지 않고 1~2주일만 참아보라”고 조언했다.
소화가 안 돼서 속이 불편해도 2주 정도만 참으면 대부분은 신체의 원래 기능이 되돌아오고, 더 이상 소화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하나, 약부터 찾기 전에 한 끼 굶어라
소화가 안 되거나 체했을 때는 소화제부터 찾기 전에 한 끼 정도 식사를 걸러서 속을 비워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소화를 도와주는 간단한 마사지를 해주는 것도 좋다. 배와 척추, 합곡(엄지와 둘째손가락 사이의 움푹 들어간 부위) 등을 문지르면 된다. 우선 등을 따뜻한 곳에 대고 누워 양 손바닥을 비빈다. 열이 나면 배꼽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면서 5분간 문질러준다. 그런 다음 척추뼈 양쪽 2~3㎝ 바깥쪽 라인을 목 뒷부분에서 꼬리뼈 주변까지 지압해준다. 오장육부의 기능을 조절하는 경혈이 일직선으로 분포되어 있는 만큼 소화기능을 직접 자극해 준다. 합곡은 양쪽을 번갈아가며 마사지하듯 10~15분 주물러준다.
둘, 식사시간은 30분 정도로 길게 잡는다
5~10분 만에 후다닥 식사를 해치우는 직장인들이 많다. 소화기관이 소화를 하지 못할 정도로 과식, 포식을 하지 않으려면 식사시간을 30분 정도로 길게 잡는 것이 좋다. 유쾌한 대화를 많이 하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는 게 요령. 이것이 어렵다면 의도적으로 한 숟가락 뜨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뜨기를 반복하거나 식사 도중에 화장실에 두어 번 다녀오는 방법도 있다.
천천히 식사를 하면 자연히 잘 씹어서 삼키게 되어 위장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침에는 아밀라아제 같은 소화효소가 들어 있어서 소화를 도와 위의 부담을 덜어준다. 자장면을 먹을 때 어떤 사람은 물이 많이 생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바로 침의 분비량이 많고 적기 때문이다. 침이 많이 분비되는 사람은 자장면에 소화효소가 많이 섞여서 물도 많이 생기게 된다.
셋, 많이 움직여라
사무직이나 운전기사 등의 직업이라면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소화가 안 된다는 이들이 많다. 이럴 때는 약국으로 달려가서 소화제를 사먹기보다는 몸을 움직여주는 것이 좋다.
‘무슨 운동이 좋을까’ 하고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할 필요는 없다.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하루에 1만보 걷기만 실천하면 소화 걱정은 물론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의 성인병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각종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는 중년 이후에는 더욱 걷기운동이 필요하다.
소화제를 복용할 때는 주치의와 상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소화제가 많기는 해도 소화불량의 원인에 따라 약과 복용방법이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다른 소화제는 대개 식후에 복용하지만 위장운동 촉진제는 식사하기 30분 전에 복용해야 한다.
소화제는 미지근한 물로 복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우유나 주스, 심지어는 청량음료 등과 함께 복용하는 것은 피한다. 주스나 청량음료 등은 위의 산도를 더 높여서 소화제의 약효를 줄인다. 알루미늄이 들어간 제산제의 경우 오렌지 주스와 함께 복용하면 체내로 알루미늄이 흡수될 수도 있다.
한 가지, 소화를 위해 콜라나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를 마시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속이 더부룩할 때 마시면 속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습관적으로 마시면 위식도 역류의 위험이 높아져 오히려 소화를 방해한다. 탄산음료가 위 내부의 압력을 증가시켜 위산을 위의 윗부분에 있는 식도까지 역류시키는 것이다.
소화제를 보관할 때는 물약인 경우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는다. 위장에 갑자기 차가운 약이 들어가면 오히려 소화장애를 만들 수 있다. 만약 냉장고에 넣어뒀다면 미리 꺼내서 실온에 한참 두었다가 복용하도록 한다. 참고로 물약으로 되어 있는 소화제는 위를 자극해서 소화를 잘 되게 하고 위산을 없애는 효능이 있는 생약을 추출한 것들이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유태우의 신건강인센터 유태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