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슐린은 혈당을 조절해 정상치를 유지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우리 몸의 에너지 대사에도 폭넓게 관여한다. 사진은 혈당 체크 장면. 제공=을지대학병원 | ||
그런데 최근 인슐린이 장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다낭성 증후군 같은 여성의 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인슐린 호르몬이 장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는 일본에서 발표됐다. 일본 순천당대학교 시라사와 다쿠지 교수팀이 일본의 100세 이상 장수노인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장수노인들의 인슐린 수치가 낮았으며, 인슐린 질환인 당뇨병과 파킨슨병의 유병률 역시 낮았다고 한다. 시라사와 교수는 “100세 이상 고령자들의 경우 인슐린의 기능이 좋다”며 “장수하기 위해서는 인슐린이 제대로 기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 보스턴 하워드 휴즈 연구소의 모리스 화이트 박사는 “인슐린의 양을 줄이면 장수와 연관이 있는 항산화 효소 분비가 촉진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인슐린이 대장암 위험을 높인다는 대규모 추적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연구반은 “전국 9개 지역에서 40~69세 남녀 약 4만 명을 대상으로, 1990~2003년까지 체내에서 인슐린이 만들어질 때 생성되는 부산물인 ‘C-펩타이드’의 혈중 농도와 대장암 발병과의 관련성을 조사했더니, 인슐린의 수치가 높은 남성은 낮은 남성에 비해 최대 3배가량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인슐린 수치가 높은 사람은 비만이나 고인슐린혈증, 당뇨병에 빠질 위험이 있는 데다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암이 촉진될 가능성까지 있다는 것이다.
인슐린과 관련이 큰 질병으로는 당뇨병이 대표적이다. 당뇨병은 크게 인슐린 분비 기능 자체가 떨어지는 인슐린 의존형(제1형 또는 소아당뇨라고 한다)과 인슐린은 잘 분비되지만 제 기능을 못하는 인슐린 비의존형(제2형 또는 성인당뇨) 두 가지가 있다. 인슐린 비의존형, 즉 성인당뇨는 유전적인 요인에 비만이나 과식, 과음, 스트레스, 약물남용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형 당뇨는 1~2%로 적고(서양은 5~10%), 2형 당뇨가 85%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머지 14% 정도는 1.5형 당뇨(인슐린 요구형)라고 해서 서양에는 없는 새로운 유형이다. 인슐린 분비가 1형보다는 잘 되지만 2형보다는 안 되는 당뇨병이라고 보면 된다. 주로 20~30대에 많이 생기는데, 체중이 적고 공복혈당이 250mg/dL 이상으로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인슐린의 양이나 기능에 문제가 생길 때 찾아오기 쉬운 질환은 다음과 같다.
◇인슐린 저항성=충분한 양의 인슐린이 분비되더라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만큼 세포가 포도당을 효과적으로 연소하지 못해 문제가 된다. 복부비만이나 운동 부족, 열량 과잉 섭취 등이 인슐린 저항성을 만든다.
인슐린 저항성이 높으면 몸속에서 지나치게 많은 인슐린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대사증후군이 되기 쉽다.
◇대사증후군=대사증후군은 고지방 고칼로리의 식사, 과음, 과식, 흡연, 운동 부족, 스트레스, 비만, 유전 등의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긴다. 일단 대사증후군이 있으면 심장병이나 뇌졸중, 당뇨병 등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태아 또는 성장기에 영양이 결핍됐던 사람이 30~40대에 갑자기 체중이 늘어나면서 대사증후군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미리미리 주의하는 것이 좋다.
만약 대사증후군의 5가지 위험요인인 △공복혈당 100mg/dL 이상 △혈압 130/85(mm/Hg) 이상 △허리둘레 남성 90cm, 여성 80cm 이상 △혈청 중성지방 160mg 이상 △혈청 양성콜레스테롤 남성 35mg, 여성 40mg 이하 중에서 세 가지 이상에 해당된다면 대사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우에는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내당능장애=공복 또는 식후에 고혈당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공복시 혈당이 115~139mg/dL, 식후 2시간째 혈당이 140~ 199mg/dL이며 식후 30~60분이 지났을 때 혈당이 정상치인 200mg/dL를 넘으면 내당능장애로 본다. 다른 용어로는 당불내성이라고도 한다. 당뇨병이 생기기 전의 단계로 어떻게 혈당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정상이 될 수도, 당뇨병이 될 수도 있다.
‘국민병’이라고 할 만큼 당뇨 환자가 많은 것처럼, 내당능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젊은 30대의 경우 10%가 당뇨병이고 다른 10% 정도는 내당능장애로, 30대 인구 10명 중 2명이 이미 당뇨에 노출되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아직 당뇨병은 아니지만 심장과 순환계 등에 미치는 손상은 이미 내당능 장애 단계에서 시작되는 만큼 혈당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내당능 장애에서 혈당조절이 잘 되면 제2형 당뇨병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하지만 내당능장애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 다음이나 다뇨, 다식 등은 당뇨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증상일 뿐, 내당능장애에서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혈당검사를 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 콩 두부 버섯 채소 잡곡밥 생선 등 저혈당 식품들은 인슐린 분비 부담이 적어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고 비만을 해소시켜 준다. | ||
인슐린의 분비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을지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조영석 전문의는 “보통 건강에 나쁜 것으로 알고 있는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 비만 등의 기본적인 요소만 멀리 해도 인슐린 분비와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대사증후군의 경우, 미국 당뇨병협회에서는 일단 생활습관을 바꾸기를 권고한다. 나쁜 식습관을 바꿔 인슐린 분비 부담이 적은 저혈당지수 식품 위주로 먹으면서, 꾸준히 운동해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고 비만을 해소하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협회가 대사증후군 환자 552명을 대상으로 3년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식습관 개선, 운동 등의 생활습관 변화만으로도 당뇨병 발생 위험이 무려 58%나 감소했다고 한다. 혈당강하제를 복용한 그룹의 31%보다도 훨씬 나은 효과다. 이외에도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혈관 내피의 기능이 좋아졌고, 혈액을 끈적거리게 하는 성분들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슐린 분비 부담이 적은 저혈당지수 식품으로는 채소나 과일, 해조류, 버섯류처럼 섬유질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이 대표적이다. 섬유질이 영양의 흡수 속도를 생리적인 수준, 즉 치아나 위 소장 대장 간장 등의 인체기관이 무리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조절해 준다. 영양분이 천천히 흡수되면 당분의 흡수 속도가 완만해 인슐린의 분비, 기능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이렇게 혈당을 급격하게 올리지 않고 서서히 올리는 식품이 바로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이다.
빈속에 음식을 섭취한 후 2시간 동안의 혈당치 상승률을 나타내는 지수가 혈당지수(GI)다. 섭취 후 혈당을 가장 빠르게 올리는 포도당의 혈당지수 100을 기준으로, 혈당지수가 70이상이면 고혈당지수 식품, 56∼69는 중혈당지수 식품, 55 이하는 저혈당지수 식품으로 구분한다. 곡류와 빵·면류를 예로 들면 백미나 흰 밀가루, 옥수수, 소면, 라면 등은 고혈당지수 식품이고 보리, 통밀, 메밀국수 등은 저혈당지수 식품이다. 과일 중에서는 바나나 파인애플 수박 등이 혈당지수가 높은 편이다.
한 가지,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만 먹으면 영양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이럴 때는 고혈당지수 식품이라도 양을 줄여서 먹고, 섬유질이나 단백질과 함께 먹으면 혈당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주식은 백미밥보다는 현미밥, 잡곡밥이 좋다. 빵을 먹을 때도 흰 밀가루로 만든 빵보다는 통밀, 보리 등의 잡곡을 넣어서 만든 빵이 좋다. 면 중에서는 흰 면보다는 메밀, 칡 등을 넣어서 만든 것이 낫다. 반찬은 콩이나 콩제품, 생선, 채소, 버섯, 해조류 위주로 먹으면 되고 소스류는 버터나 마가린, 마요네즈 대신 간장, 식초 등을 이용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먹었을 때 혀에서 강한 단맛이 바로 느껴지는 사탕이나 주스, 청량음료 같은 식품은 혈당지수를 급격하게 올리는 식품인 만큼 삼가는 것이 좋다.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을 좋아하면 시간이 갈수록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이 소진되면서 당뇨병, 심장병, 담석 등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따라서 당뇨병이나 비만 등이 염려된다면 평소에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 위주로 먹는 것이 좋다.
인슐린을 자극하는 지나친 탄수화물 섭취도 문제가 된다. 섭취 칼로리의 60%를 탄수화물로 하고, 단백질과 지방은 20%씩 배분하면 적당하다.
지방 섭취량도 줄여야 한다. 지방 섭취량은 전체 섭취 열량의 30% 이내가 적당하고, 육류에 많은 포화지방의 섭취는 전체 열량의 10% 이내가 좋다. 불포화지방산은 생선이나 견과류 등에 많이 들어있다. 지방 섭취량을 줄이려면 튀김이나 볶음요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을 삼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운동도 중요하다. 걷기, 천천히 달리기, 수영, 고정식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주 3회 이상씩 30분 이상 하면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고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좋은 고밀도 콜레스테롤로 변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렇다고 유산소운동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근육운동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하체를 강하게 해주는 운동이 인슐린 저항성을 없애는 데 좋다. 마음먹고 운동을 하기 힘들다면 출퇴근 시간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거나 점심식사 후에 가벼운 산책을 하는 정도라도 좋다.
운동을 시작하면 복부비만 등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살을 뺄 때는 갑자기 이루어지면 무리가 따르는 만큼 1년에 10%의 체중 감소를 목표로 서서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외에도 과음이나 과식, 흡연 등을 삼가야 한다. 예를 들어 하루 두 잔 이상 소주를 마시면 대사증후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조영석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