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후기고령자 의료제도는 일본 정부가 치솟는 고령자 의료비 때문에 현역 세대가 큰 부담을 지고 보험 재정이 불안해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보험료를 연금에서 사전 공제하는 형식으로 고령세대도 공평하게 부담을 지라는 얘기.
그런데 지난달 15일 이 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홍보가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두 달치 보험료를 노인들의 쥐꼬리만한 연금에서 공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구나 새 의료제도에 따라 후생노동성이 각 병원 등에 전달한 지시사항의 내용이 밝혀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병원 측이 말기 암 등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로부터 링거, 영양제 투여, 인공호흡기 사용, 심폐소생술 등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받으면 건당 2000엔(약 2만 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여기에 종합검진 보조금이 폐지돼 앞으로는 검진 비용을 노인 스스로 부담하게 됐다. 또한 만성질환으로 통원을 하는 경우 국가에서 부담하는 보조금도 한 달에 최대 6000엔(약 6만 원)으로 묶이게 됐다.
이에 일본의 언론들은 “건강검진 비용부담을 늘려 병의 조기진단 가능성을 봉쇄하고, 일단 병이 나면 통원환자들은 매달 6000엔어치 치료로 만족해야 하며, 75세 이상의 말기 환자는 서둘러 죽는 게 낫다고 권고한 셈”이라며 일본 정부가 노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후기고령자가 숨을 거두기 직전 가족들의 애타는 희망 때문에 1분 1초라도 더 살아있게 하는 갖가지 비싼 치료가 행해지고 있다. 이런 필요 이상의 치료비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전부 부담하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후기고령자들도 함께 고통을 분담해 의료비를 줄이자는 취지”라고 해명하고 있다.
마스조에 요이치 후생노동상도 “국민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 잘못된 부분은 시정하겠다”며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노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앞으로 노인들이 제대로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더 빨리 죽는다면 그 결과 초고령사회 일본이 갑자기 ‘회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