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도와 위장의 경계인 괄약근이 약해지면 위장의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며 강산성의 위액이 식도에 염증을 유발, 역류성 식도염이 생긴다. | ||
최근 뱃살이 두툼하게 잡히는 데다 가슴의 통증, 속쓰림 등의 증상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혹시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소화기 질환을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요즘 업무량이 많아져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상사, 거래처와의 피하기 힘든 회식 자리가 끊이지 않아서 힘든 직장인 L 씨(37). 새벽이면 가끔 가슴의 통증을 느끼다가 1주일 전에는 과음을 한 다음날 통증이 너무 심해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우선 협심증을 의심해 심전도 검사와 심혈관 조영술을 받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나중에야 찾아낸 원인은 바로 역류성 식도염. 위장 속 내용물이 식도를 타고 거꾸로 올라와 식도에 염증이 생긴 상태라고 했다.
흔히 가슴에 통증이 나타나면 심장의 이상부터 의심하지만 역류성 식도염 같은 소화기 질환이 원인인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속이 쓰린 증상 때문에 단순한 ‘위염’으로 생각해서 약국에서 그때그때 제산제나 소화제를 사먹으면서 버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증상이 비슷할 뿐 엄연히 차이가 있다. 위염은 명치 끝이 아프면서 속 쓰림을 느끼지만, 역류성 식도염일 때는 명치의 등쪽이 타듯이 아프면서 속 쓰림이 있고, 목구멍에 뭔가 걸린 것처럼 불편한 느낌이 든다.
다만 음식이 역류하는 느낌이 든다고 모두 역류성 식도염은 아니다.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이윤정 교수는 “주 1회,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심한 통증이 있는 경우에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며 “주로 식후 약 30분 이내에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고 눕거나 앞으로 구부릴 때 속이 더 쓰린 것도 특징”이라고 조언했다.
식사를 통해 섭취한 음식물을 위까지 전달하는 통로가 식도. 보통 성인의 식도는 길이가 약 25cm 정도로, 4개의 협착 부위가 있다. 협착 부위 중에서 가장 아래 위치한 횡격막 협착부가 식도와 위가 직접 연결되는 부분이다. 횡격막 협착부에는 하부 식도 괄약근이라는 것이 있어서 위장으로 내려간 음식물이 식도로 거꾸로 넘어오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괄약근이 제 기능을 못하거나 위산, 펩신 같은 강산성의 위액이 식도로 역류하면 식도의 점막을 자극해서 염증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역류성 식도염이다. 심한 경우에는 점막을 손상시켜 궤양, 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 음식물이 더 위쪽인 목(후두)까지 역류하면 역류성 후두염이 된다. 이때는 목이 아프고 뻐근하다. 또 가래, 기침이 잦고 가슴이 답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에게 역류성 식도염이 많이 생길까. 우선 복부비만이라면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크다.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 소화기내과 김동희·정수진 교수팀은 얼마 전 “환자 7078명의 내시경 검사와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분석, 내장지방이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복부비만이 있으면 역류성 식도염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복부비만이라도 피하지방보다 내장지방이 역류성 식도염의 위험을 높인다. 내장지방 정도를 4단계로 나눴을 때 내장지방이 거의 없는 정상 단계에 비해 내장지방이 가장 많은 단계에서 역류성 식도염이 1.6배 더 많이 발생했다.
▲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환자의 위 내시경 진찰 모습. | ||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등 다른 대사증후군 증상이 있을 때도 역류성 식도염 위험이 1.4배 높았다.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허리둘레) 외에도 몸에 좋은 고밀도콜레스테롤(HDL)과 혈당, 혈압, 중성지방 수치 5가지 중에서 3가지 이상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복부비만 외에도 역류성 식도염의 원인은 다양하다. 흡연이나 과음을 해도 음식물이 서서히 내려가면서 역류가 일어나기 쉽고,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에서는 식도의 괄약근이 열려 역류가 생길 수 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임신을 하면 복부의 압력이 올라가 식도 괄약근이 느슨해지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복부비만, 흡연, 과음, 스트레스 등의 여러 가지 위험요인에 노출되는 남성 직장인, 특히 사무직인 경우에 역류성 식도염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역류성 식도염 환자 3명 중 1명이 가정주부일 정도로 여성에게 많다는 보고도 있다. 특정 성별이나 직업이 아니더라도 평소 여러 가지 위험요인에 노출될수록 요주의 대상이 된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병원에서는 위산분비 억제제를 몇 개월 복용하라고 권한다. 경우에 따라 위장관운동 촉진제를 같이 주기도 한다. 일단 약을 복용할 때는 복용기간을 잘 지키는 것이 좋다. 이윤정 교수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좋아졌다고 마음대로 약을 끊다가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약물치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역류성 식도염을 잘 일으키는 습관을 빨리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식생활에서는 괄약근을 약하게 만드는 탄산음료나 튀김 등의 기름진 음식, 초콜릿, 겨자 등의 식품을 삼간다. 술이나 카페인 음료도 마찬가지고 담배도 흡연 중에 마신 공기를 트림으로 토해낼 때 위산이 같이 역류되므로 삼가야 한다. 레몬이나 오렌지 등의 신 과일주스는 식도 점막을 직접 자극한다.
식사를 너무 빨리 하거나 과식을 해도 위장이 늘어나면서 위의 내용물이 식도로 올라올 수 있으므로 천천히 적당량만 먹어야 한다. 잠자기 전에 야식을 즐기는 것은 금물이다. 서 있을 때는 중력 때문에 역류가 일어나지 않지만 누운 상태에서는 식도로 역류가 잘 된다. 늦어도 잠자기 3시간 전에는 먹지 않는 게 좋다. 늦은 시간에 먹고 잠자리에 들 때는 상체의 높이를 15도 정도 높게 자는 자세를 취해준다.
아스피린 같은 진통소염제나 통풍 치료제, 근육이완제 등 약 중에서도 괄약근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므로 복용 중인 약에 대해서도 주의사항을 체크해 보도록 한다.
두툼한 뱃살은 적당한 운동과 식습관을 통해 날씬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매일 1시간씩 1주일에 4~5일은 운동으로 열량을 소모해 기초대사율을 높인다. 과잉 섭취한 열량을 소모시킬 뿐만 아니라 근육이 생기면 기초대사율이 높아져서 뱃살이 잘 찌지 않게 된다. 운동의 종류는 유산소운동과 함께 근력운동을 해야 효과적이다. 단, 식사 후에 바로 운동을 하는 것은 피한다.
과식을 하는 편이면 세 끼를 모두 챙겨 먹되, 평균 섭취량의 60~70% 정도로 식사량을 줄인다. 이보다 더 적게 먹거나 끼니를 거르면 지방이 아닌 근육이 분해되어 에너지로 이용돼 자칫 건강을 해치고, 기초대사율이 떨어져 더 쉽게 살찌는 체질이 돼버린다.
옷은 지나치게 꼭 끼는 것을 피한다. 거들이나 코르셋 등의 속옷이나 허리띠로 몸을 압박하면 역류가 잘 일어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이윤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