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축성 발성장애’는 완치의 방법은 없지만 보톡스 주입술로 목소리 떨림을 막는 효과를 볼 수 있다. | ||
‘면접의 계절’을 맞아 목소리 떨림증의 원인과 대책을 자세히 알아봤다.
20~30대 젊은 여성에 흔해
취업을 준비 중인 김은영 씨(27)는 벌써 몇 차례 면접을 봤지만 번번이 떨어진 경험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는 증상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이미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을 여러 개 따놓았기 때문에 서류심사에서는 쉽게 합격했지만 면접 단계만 가면 목소리떨림증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미끄러지는 것이다. 김 씨는 지금까지 기껏 준비한 취업이 수포로 돌아간 후에는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한동안은 친구도 만나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우울하게 지내곤 했다.
이처럼 자신감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대인기피증까지 만들 수 있는 것이 목소리떨림증. 하지만 목소리떨림증이 있더라도 원인에 따라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얼마간은 해소할 수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처럼 ‘본태성진전’이라고 해서 뚜렷한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목소리가 떨리는 사람도 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손발도 자주 떨리는 것이 특징이고, 잠을 잘 때는 증상이 없지만 긴장하거나 집중한 상태가 되면 더욱 심해진다.
보통 목소리떨림증은 20~30대 젊은 여성들에게 흔한 편이다. 특히 마른 체형이거나 신경이 예민한 여성에게 목소리떨림증이 많다. 여성의 음성이 남성보다 고음이기 때문에 쉽게 목소리 떨림을 느끼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고음을 내는 것은 성대의 크기나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다.
굵고 긴 남성의 성대는 진동수가 적다. 이와 달리 여성의 성대는 가늘고 짧다. 참고로 성대의 길이는 남성은 2cm, 여성은 1.5cm, 어린이는 0.9cm 정도다.
사실 중요한 면접이나 발표를 앞둔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긴장을 하는 것이 정상이고, 이런 정신적인 긴장 때문에 평소에는 말을 잘만 하던 사람도 목소리가 떨리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사람들 앞에 노출됐을 때와 같은 긴장되는 상황에서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호흡이 빨라져서 목소리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목소리가 평소와 비교해서 느리고 불규칙하게 떨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럴 때는 정신적인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지나친 긴장,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데만 너무 신경을 쓰면 더 떨릴 수 있으므로 무리하게 감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편이 낫다.
머릿속으로 면접 장면을 미리 연습하는 훈련을 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 운동선수들이 많이 하는 정신 훈련법, 이른바 이미지 트레이닝인데, 면접 상황을 하나하나 떠올린 다음 자신의 말을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지 되돌아본다. 가능하다면 면접이나 발표를 하게 될 장소를 사전에 답사하는 것도 좋다.
실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먼저 긴장을 풀고 호흡을 고르기 위해 복식호흡을 몇 번 해준다. 배가 불룩하게 나오도록 코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배가 들어갈 때 코로 숨을 내쉰다.
그런 다음 목소리와 관련된 턱이나 혀, 입술도 이완시킨다. 혀를 진동시키는 ‘따르르’ 같은 소리를 내거나 입을 크게 움직이면서 ‘아, 에, 이, 오, 우’ 를 반복해서 연습한다.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을 내려면 입에 나무젓가락을 물고 크게 말하는 연습을 하면 좋다.
안정감이 있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중요한 미팅 전에 10분만 연습을 해도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입 안에 공기를 잔뜩 머금고 입천장을 올리고 혀를 내린 상태에서 입술과 볼에 진동이 느껴지도록 공기를 내보내면서 가볍게 ‘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때 성대가 가볍게 진동하면서 성대 마사지 효과가 생긴다고 한다.
말을 할 때의 자세는 턱을 최대한 뒤로 당겨 귀가 어깨와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변화가 없다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증상이 심한 경우 인지행동치료나 항우울제 등을 처방하기도 한다.
▲ 컴퓨터 음향분석(위), 후두 내시경. 사진제공=예송이비인후과 | ||
목소리를 조절하는 후두신경의 이상 신호 때문에 목소리가 떨리는 경우도 있다. 연축성 발성장애가 그것이다. 목소리는 목의 양쪽에 위치한 성대가 진동해서 나오는데, 이 성대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뇌신경이 잘못된 신호를 보내 성대나 발성기관이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여 목소리가 떨리는 질환이 연축성 발성장애다.
연축성 발성장애가 원인이라면 긴장해서 떨릴 때와는 조금 다르다. 주로 특별한 단어를 발음할 때 목소리가 떨리거나 끊기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시작될 수도 있다. 특별히 긴장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고 긴장하면 더 심해진다.
“무의식적으로 목소리가 떨려 면접, 대화 등 직장생활이나 사회활동에 크게 지장을 준다. 하지만 긴장 탓으로만 생각하고 병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해 연축성 발성장애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이 김형태 예송이비인후과 원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연축성 발성장애가 생기는 것일까. 예송이비인후과 음성센터가 연축성 발성장애 환자 241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2.7%가 후천적인 요인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목소리 오·남용이 17.0%로 가장 많았고 과도한 스트레스, 장시간 이어폰 통화, 심한 감기 순이었다.
우선 목소리를 잘못 사용하거나 과도하게 사용하면 성대근육이나 인대 등 발성기관이 손상되기 쉽다. 그 결과 후두를 조절하는 뇌신경이 손상된 발성근육을 움직이기 위해 무리하거나 잘못된 신호를 보내기 쉽고, 이것이 반복되면 연축성 발성장애가 생길 수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분비되는 단백질이나 감기 바이러스, 후두에 생기는 염증은 면역체계를 통해 대뇌에 직접 영향을 미쳐 목소리를 조절하는 신경의 장애를 유발한다. 감기, 후두염에 걸려 성대가 부은 상태에서 목소리를 무리하게 사용하는 것도 목소리 오·남용과 마찬가지로 후두신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직업상 장시간 이어폰을 꽂고 말을 많이 하는 텔레마케터나 상담원의 경우, 듣는 신호가 양쪽 귀에 전달되는 소리의 시간적인 차이로 인해 대뇌에서 이를 감지해 조절하는 목소리 조절신경센터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오랜 시간 통화를 하는 직종이라면 양쪽 귀로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연축성 발성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아직까지 완치시키는 방법은 없고 성대 보톡스주입술 등 효과적인 치료법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보톡스 주입술은 근전도 바늘을 이용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성대근육에만 선택적으로 보톡스를 소량 주입해 뇌의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보톡스로 인해 이상이 있는 성대 근육이 마비되면 뇌신경이 성대에 경련을 일으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도 성대가 반응하지 않는다.
보톡스 주입술은 방법이 간단해 시술 시간이 짧고 시술한 직후에도 말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일정 시기마다 재주입을 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또 보톡스를 주입한 후 2주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면접 일정에 맞춰 시술을 하려면 미리 병원을 찾아 목소리떨림증의 원인이 연축성 발성장애인지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연축성 발성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치료 기간이나 효과, 부작용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시술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보톡스주입술의 1회 비용은 20만~50만 원가량으로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예송이비인후과 음성센터 김형태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