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호흡하는 산소의 2~5% 정도는 몸속에서 활성산소로 바뀐다. 우리 몸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활성산소(Free Radical)의 존재를 이해하기 쉽다. 자동차를 사면 처음에는 잘 가동되다가 오래 사용하거나 무리해서 운행을 하면 매연의 양이 늘어난다. 우리 몸도 이와 마찬가지로 젊을 때는 별 문제가 없다가 노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활성산소가 많이 만들어진다. 때문에 흔히 활성산소를 ‘인체의 배기가스’라고 표현한다.
[도대체 왜 생길까]
우리가 호흡을 통해 들이마신 산소는 탄수화물과 지방을 산화, 즉 분해시켜서 에너지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산소가 음식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만들어진다. 몸속에서 약 100초 이상 머무르는 산소와 달리 활성산소는 분자구조가 불안정해 100만~10억분의 1초 동안 생겼다가 순식간에 없어진다. 하지만 반응성이 매우 강해서 순식간에 우리 몸의 기본단위인 세포를 공격한다. 세포의 원래 기능이나 재생능력을 떨어뜨리고 정밀하게 작동 중인 각종 신호전달체계를 망가뜨린다.
호흡하는 과정 중에 만들어지는 활성산소는 강한 자외선이나 방사선, 화학첨가물, 농약, 살충제, 담배연기 등에 과다 노출될 때 체내에서 그 양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무조건 나쁘다?]
흔히 ‘활성산소’하면 무조건 불필요한 물질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정상적인 에너지 생성과 신진 대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활성산소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면역반응에 필수적인 요소다. 실제로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배윤수 교수는 활성산소가 우리 몸을 침투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죽이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우리 몸의 TLR4란 단백질이 병원균의 체내 침투를 인식하면 소량의 활성산소가 만들어져 살균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활성산소는 우리 몸에 필요한 만큼 만들어져서 제 역할을 수행하고, 남은 활성산소는 제거되기를 반복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을지대학병원 최희정 교수는 “활성산소의 양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오히려 인체를 공격하는 물질이 되고 만다”며 “우리 몸의 세포와 DNA를 공격해 각종 만성질환과 노화를 부추긴다”고 설명했다.
▲ 녹차나 홍차를 자주 마시면 폴리페놀의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를 늦출 수 있다. | ||
['산화성 스트레스'란]
신문이나 잡지 등의 기사를 읽다 보면 ‘산화성 스트레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활성산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용어로, 체내의 활성산소 농도가 증가해 정상 세포를 손상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산화성 스트레스는 활성산소가 많이 만들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능력이 감소하면서 생긴다. 우리 몸은 활성산소가 만들어지면 자동적으로 이를 제거하기 위해 ‘슈퍼옥사이드 디스뮤타제(SOD)’라는 항산화 효소를 분비해 활성산소를 몸 밖으로 내보낸다. 이 항산화 효소는 간이나 심장, 위, 췌장, 혈액, 뇌 등 모든 부위에 들어 있다. 하지만 40대 이후에는 항산화 효소의 분비량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또한 과로나 흡연, 공해,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스트레스 등의 요인이 산화성 스트레스를 더욱 증가시킨다.
만약 자신의 산화성 스트레스 정도가 궁금하다면 병원에서 간단한 혈액검사를 받으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질병 찾아오나]
산화성 스트레스는 노화는 물론 만성피로나 고지혈증, 당뇨병, 동맥경화증, 심장질환, 신장질환, 말초혈관질환, 알레르기성 피부염, 혈관성 치매, 암 등 수많은 질환의 원인이 된다. 또한 원래 있던 질병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뇨병은 활성산소의 발생이 증가하고 항산화능력이 감소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산화성 스트레스는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 특히 손발저림 같은 말초신경염의 중요한 원인이다.
신장질환도 발병 원인과 상관없이 신장의 기능이 감소하면 산화성 스트레스에 의해 기능 손상이 가속화된다. 또 계속되는 산화성 스트레스는 세포의 유전자 변형을 유발, 여러 가지 암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다.
[항산화 습관은 무엇]
굳이 비싼 약이나 영양제를 복용하지 않더라도 좋은 습관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항산화제다. 이제부터라도 질병과 노화를 멀리하는 항산화 습관을 하나씩 들여 보자.
◇신선한 채소·과일이 천연 항산화제
정상적인 인체 대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물질이므로 아예 생기지 않도록 할 수는 없다. 때문에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항산화 효소와 함께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물질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항산화물질로는 비타민 C·E와 베타카로틴, 셀레늄 등으로 대부분 신선한 채소와 과일에 많이 들어 있다. 평소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곱고 혈액이 맑아지는 것도 항산화물질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다.
비타민 C의 경우 미국 캘리포니아 버크 노화연구소가 수명을 1주일로 유전자를 조작한 쥐를 대상으로 비타민 C 항산화제를 투여한 결과, 쥐의 수명이 4배나 연장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비타민 C는 아스파라거스, 양배추, 키위 등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에 많다.
베타카로틴은 당근을 비롯해 토마토, 고구마, 호박 등에 주로 들어 있다. 특히 당근즙 한 컵에는 무려 2만㎎의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어 아침 공복에 마시면 천연 항산화제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양배추즙도 베타카로틴과 함께 유전자 손상을 막는 클로로필이 들어 있어서 좋다.
이외에 비타민 E는 아몬드나 땅콩, 잣 등의 견과류에 풍부하게 들어 있고, 셀레늄은 각종 해산물에 많은 성분이다.
활성산소를 줄이려면 식사 후에 마시는 커피나 청량음료도 녹차, 홍차 등으로 바꾼다. 녹차, 홍차 등의 차를 자주 마시면 폴리페놀의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흡연, 과음, 과식, 스트레스 멀리~
활성산소의 발생을 줄이려면 흡연을 삼가고 과음이나 과식 등도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음을 하면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게 되고, 따라서 유해산소도 많이 발생한다.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할 때도 활성산소가 많이 만들어지므로 육류를 섭취할 때는 마늘, 양파 등 채소를 많이 먹도록 한다.
화학첨가물 등의 우려가 많은 가공식품이나 기름에 튀긴 음식도 줄이는 것이 좋다. 공기 중의 산소는 특히 기름과 결합하기를 좋아해서 음식을 기름에 튀기는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쉽게 달라붙는다. 이것이 몸속으로 들어가 기름과 분리되면 다시 세포 속 핵산에 달라붙어 핵산을 손상시킨다. 인스턴트식품도 기름에 튀기는 조리법이 많아 적게 먹는 것이 좋다.
과도한 스트레스도 활성산소 발생의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즐긴다.
◇운동은 적당히!
그렇다고 너무 과격한 운동을 하면 산소 소모량이 늘고, 활성산소도 많이 생긴다. 건강에 좋은 운동도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즐기는 것이 좋다.
특히 젊은 때는 활성산소가 발생해도 항산화 체계의 작용이 활발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중년 이후에는 항산화 능력이 떨어지므로 운동을 심하게 하면 활성산소의 영향을 더 받는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무리한 운동은 삼가고, 건강유지 차원에서 적당한 운동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학병원 가정의학과 최희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