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겹살 구이는 포화지방이 많고 발암물질 발생 위험이 높은 편. 건강을 생각한다면 삼계탕 등 닭요리도 즐겨보자.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불에 까맣게 탄 고기에는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 그런데 탄 고기가 아니더라도 구워 먹으면 발암 위험이 높다. 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 식품을 구우면 헤테로고리아민(HCAs)이라는 발암성 물질이 생긴다. 헤테로고리아민은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 등급 중 2~3등급에 속하는 발암 우려물질로, 식품의 종류나 조리과정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의뢰로 신한승 동국대 교수가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삼겹살구이와 고등어구이에서 나오는 헤테로고리아민은 조리온도가 높을수록, 조리시간이 길수록 종류가 늘어나고 생성량도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분이 아주 적은 조리법보다는 조림처럼 충분한 수분이 공급되는 조리법에서는 오히려 생성량이 줄었다.
따라서 보다 안전하게 고기를 섭취하려면 불에 직접 굽는 구이나 바비큐보다는 삶거나 찌는 백숙, 수육, 스튜 등이 좋다. 삶거나 찌면 헤테로고리아민뿐만 아니라 벤조피렌까지 줄일 수 있다. 돼지고기나 생선의 경우 삶거나 찌면 불에 직접 굽는 조리법과 비교해 헤테로고리아민이 70~97%까지 크게 줄어든다.
이뿐만 아니라 푹 삶거나 찌면 지방이 제거돼 비만의 위험이 적고 가축이 먹은 사료 속의 항생제나 DES 등 발암물질이 거의 제거돼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튀기는 조리법도 피한다. 특히 여러 번 사용한 기름으로 고기를 튀기면 트랜스 지방의 함량이 높아져서 해롭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숯불구이나 연탄구이 등으로 불에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경우 고기만 해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에 떨어진 고기 기름이 타면서 나는 연기에도 유해 성분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구이 요리를 하는 경우에는 양념과 조리방법을 잘 활용해서 발암성 물질을 줄인다. 예를 들어 육류를 날 것 그대로 굽는 것보다는 마늘이나 올리고당을 첨가해 굽는 경우 헤테로고리아민 생성량이60~80%가량 줄어든다.
실제로 미국 캔자스 주립대 식품공학과에서 양념장에 재운 고기를 불에 구웠을 때 얼마나 많은 발암물질이 생기는지 비교 분석한 적이 있다. 시판하는 세 가지 종류의 고기 양념장에 1시간 정도 재운 고기를 불에 직접 구워 헤테로고리아민 발생 정도를 측정했는데, 그냥 구웠을 때에 비해 57~88%까지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것은 양념장에 들어가는 허브나 와인, 향신료 등에 항산화 성분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구울 때는 불에 직접 굽기보다는 두꺼운 불판이나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 좋다. 숯불 대신 프라이팬에 구우면 벤조피렌 생성량이 100분의 1로 감소한다.가열·조리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도 벤조피렌의 발생을 줄이는 방법이다. 가능하면 고기를 바짝 익혀서 먹지 않는다.
또 고기를 굽기 전에 전자레인지에 넣어 1분 정도 돌린다. 이렇게 하면 헤테로고리아민이 녹아 나오므로 생긴 육즙을 버리고 조리한다. 햄버거 고기 패티도 전자레인지에 몇 분 돌리면 헤테로고리아민의 양이 95%까지 줄어든다. 다른 고기나 생선도 마찬가지다.어떤 고기를 먹든 가능하면 지방이 적은 부위를 선택하는 게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데, 여러 부위 중에서도 유난히 삼겹살을 좋아한다. 하지만 삼겹살에는 포화지방이 가장 많이 포함돼 있으므로 가급적 적게 먹는 것이 좋다. 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등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건강을 생각한다면 지방 함량이 낮은 등심, 안심 부위를 고르는 것이 좋다.
100g당 지방 함량을 비교하면 삼겹살은 28.4g이지만, 등심은 8.8g으로 훨씬 적다. 닭고기의 경우 다리보다는 가슴살에 지방이 적다.“이미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당뇨, 비만, 심장·뇌혈관 질환 등이 있다면 특히 살코기 위주로 먹으라”는 것이 분당제생병원 소화기내과 백현욱 교수의 조언이다.
장수지역에 속하는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도 돼지고기(특히 등심)를 푹 삶아서 지방을 제거하고 먹는다고 한다. 이런 식습관 때문에 돼지고기를 많이 섭취하는데도 오키나와의 뇌졸중 사망률이 일본 내에서 가장 낮다.또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항생제나 성장호르몬 등을 사용하지 않은 고기를 먹는 것이 좋다.
가까운 유기농 가게에서 구입하거나 한살림(www.han salim.or.kr), 초록마을(www. hanifood.co.kr), 두레생협연합(www.ecoop.or.kr), 여성민우회 생협(www.minwoocoop.or.kr) 등 유기농 제품을 파는 사이트에서 회원 가입을 한 뒤 주문하면 배달해 준다.고기를 좋아하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채소, 과일을 함께 먹는 습관을 들인다.
채소와 과일에 풍부한 비타민, 미네랄 같은 미량 영양소는 단백질 대사에 꼭 필요한 성분이다. 또 채소, 과일의 종류에 따라 육류에 없는 종류의 단백질이 들어 있는 것들이 있으므로 함께 먹도록 한다.고기를 구워 먹을 때 채소를 함께 섭취하면 과산화지질, 벤조피렌 등의 유해물질이 적게 만들어진다. 채소에 많은 엽록소는 대장암의 원인이 되는 붉은색 육류의 동물성 지방, 헤모글로빈과 경쟁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시킨다.
또한 굽거나 튀긴 고기를 먹은 후에 후식으로 배를 먹으면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조리가 간편해서, 맛이 좋아서 육류 가공식품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은 삼가야 한다. 우선 다른 가공식품과 마찬가지로 육류 가공식품도 발색제나 산화방지제, 산도조절제 등 여러 가지 화학첨가물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예를 들어 햄이나 소시지의 포장지를 확인하면 대부분 ‘아질산나트륨’이라는 발색제 성분이 들어 있다.
착색제가 색깔을 내기 위한 첨가물이라면 발색제는 그 색깔을 유지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여러 가지 발색제가 있는데, 흔히 쓰는 아질산염의 경우 식중독균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아질산염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지만 단백질의 주요 성분인 아민과 결합해 발암물질인 니트로스아민을 만드는 게 문제다.
방부제로 사용하는 솔빈산, 솔빈산염과 혼합해 열을 가하거나 산성 상태로 변하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물질이 생길 수도 있다.가능하면 유해성 논란이 있는 화학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은 햄이나 소시지를 고르는 것이 좋고, 이것이 어려울 때는 조리 전에 햄이나 소시지를 끓는 물에 한번 데친다.
또 하나, 육류 가공식품은 칼로리가 매우 높은 편이다. 햄 제품 중에서는 특히 캔으로 된 것이 지방이 많으므로 햄을 먹을 때는 덩어리 고기로 만든 등심 햄이나 안심 햄을 고르는 것이 좋다.어떤 고기를 주로 먹는지도 중요하다. 미 국립암연구소(NCI)는 1995년부터 10년간 매일 육류 4온스(작은 햄버거 크기)를 섭취하는 미국 중장년층 50만 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적색육 섭취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과 암 등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30%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참고로 소시지와 냉동육, 가공육 등도 사망 위험률을 높이는 음식물로 분류됐다.그동안 적색육이 유방암이나 대장암, 노인성 황반변성 등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때문에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의 적색육, 즉 붉은색 고기는 줄이고 대신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 생선 섭취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색육은 하루 50~80g 이내로 먹는 것이 좋다.
간혹 암환자의 경우 채식을 권하기도 하는데, 과연 좋은 방법일까. 박재우 동서신의학병원 한방내과 교수는 “평소 고기를 많이 먹은 환자라면 육류를 줄이고 채식 위주로 바꾸는 것이 증상을 완화시키고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암환자라고 무조건 고기를 안 먹는 것보다는 영양섭취가 필요한 경우에는 조리법에 신경 써서 적당량을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동서신의학병원 한방내과 박재우, 분당제생병원 소화기내과 백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