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80여 가지. 뇌를 비롯해 부신, 소화관, 성기 같은 내분비기관에서 분비되는데 뇌에서 분비되는 여러 가지 호르몬 중 하나가 세로토닌(Serotonin)이다.
세로토닌 하면 ‘행복호르몬’으로 불린다.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의욕, 생기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면역력과 관계가 깊은 T-임파구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엔도르핀은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호르몬. 엔도르핀의 이런 작용 때문에 한때 엔도르핀 열풍이 불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엔도르핀 분비가 지나치면 중독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박을 하면서 흥분과 쾌감을 느낄 땐 엔도르핀, 아드레날린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이런 쾌감을 맛보면 보다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스트레스 상태에서 많이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호르몬은 ‘분노호르몬’이다. 심장박동수가 늘어나고 혈압이 오르는 등 우리 몸을 흥분 상태 혹은 공격성이 강한 상태로 만든다.
이처럼 중독성이 강한 엔도르핀, 공격성이 강한 아드레날린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경우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세로토닌이다.
최근 단순히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분야에서 세로토닌의 중요성을 알리는 ‘세로토닌 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시형 박사(신경정신과 전문의·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는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불안이나 우울, 중독 등은 모두 세로토닌 결핍이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려면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이나 강박증 등에 잘 걸린다. 실제로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의 뇌는 일반인보다 세로토닌의 양이 적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우울증을 치료할 때는 뇌 속에 결핍된 세로토닌 수치를 높여주는 항우울제를 주로 처방한다.
세로토닌이 모자라면 전보다 피로도 심해진다. 두통이 잦거나 뒷목이 쑤시고 가슴이 답답하며 소화가 잘 안 되기도 한다.
식욕과도 관계가 깊어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거식증, 비만이 되기 쉽다. 반대로 세로토닌이 충분하면 식욕이 억제된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 상황에 닥치면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식욕을 증가시켜 과식, 폭식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면 코르티솔의 수치가 낮아지고,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면 코르티솔이 증가하면서 식욕이 왕성해지고 지방 합성이 촉진된다.
또한 숙면에 도움을 주는 세로토닌이 결핍되면 수면장애를 보일 수 있다. 공부나 일에 대한 집중력, 기억력도 더 떨어지고 조절 능력이 약해지면서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남성들의 고민인 조루도 세로토닌과 관계가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정 현상 자체를 관장하고 있는 중추신경계의 사정중추에서 세로토닌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조루가 나타난다. 때문에 사정중추의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조루 치료제도 나와 있다.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 실천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소 많이 걷는 것이 좋다. 적어도 하루에 30분씩 걷는 습관을 들인다. 그것이 어려울 때는 5~10층 정도까지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걷다 보면 운동량을 늘릴 수 있다. 틈틈이 계단 오르내리기를 한다면 1주일에 3일만 30분씩 걸어도 좋다.
다음은 심호흡을 많이 해야 한다. 얕고 짧은 호흡을 하면 세로토닌이 분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때문에 천천히 복식호흡을 하면서 심신을 이완시키는 명상도 좋은 방법이다.
이시형 박사는 “학생들의 경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자세를 반듯이 한 채 1~2분 명상하고, 느리고 깊은 호흡을 세 번만 해도 집중력, 기억력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마음자세도 중요하다. 미움이나 시기보다는 이해, 사랑의 마음을 가질 때 훨씬 세로토닌 분비량이 많아진다.
또 하나! 어울려 사는 즐거움을 느껴본다. 사람에게는 ‘군집본능’이라는 것이 있어서 마음 편하고 좋은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안정이 된다.
식품 중에서는 트립토판이 풍부한 식품을 자주 먹는 것이 좋다. 세로토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트립토판이 꼭 필요하다. 어쩐지 기분이 가라앉는다 싶을 때는 트립토판이 많은 식품을 먹어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트립토판은 돼지고기, 오리고기, 양고기, 붉은살 생선, 콩, 케일, 바나나, 무화과, 초콜릿 등에 많이 들어 있다. 우유에도 트립토판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커피보다는 우유 한 잔을 마시는 것이 효과적이다.
오메가-3가 많은 식품도 가까이한다. 뇌의 세로토닌 수치를 조절해 우울증, 조울증 치료에 약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오메가-3는 연어나 고등어, 청어, 정어리 같은 생선이나 호두, 아마씨, 올리브오일 등에 많다.
음식을 충분히 씹는 것도 좋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부드러운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씹는 횟수가 적어졌다. 부드러운 백미밥보다는 다소 거칠더라도 현미잡곡밥을 잘 씹어서 삼키는 것이 훨씬 좋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사를 거르는 것은 금물이다. 뇌 속에서는 음식을 통해 섭취한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으로 바뀌는 화학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때 뇌 속으로 트립토판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포도당이 필요하다. 식사를 거르거나 다이어트를 한다고 식사량을 너무 줄이는 경우, 트립토판이 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해 세로토닌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하나는 햇볕이다. 햇볕을 적게 쏘이면 아무리 트립토판을 많이 섭취해도 세로토닌이 많아지지 않는다. 균형이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적당한 햇볕을 쏘여야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으로 바뀐다. 섭취한 트립토판은 장에서 소화·흡수돼 그 일부가 세로토닌으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 반드시 햇볕이 필요하다. 햇볕을 쏘이기 위한 야외 활동은 하루 15~30분 정도로도 충분하다.
실제로 야간 교대근무를 하거나 올빼미족 등 주로 밤에 일하는 사람은 세로토닌이 부족해지기 쉽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햇볕을 쏘이지 않고 실내에서 주로 생활하는 경우 혈중 세로토닌 농도가 특히 낮은 것으로 나온 바 있다. 세로토닌 분비를 늘리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형 수면습관이 나은 셈이다.
참고로 햇볕을 쏘이면 고혈압, 심장병 예방 효과도 있다고 한다. 혈관 속의 콜레스테롤이 피부로 스며 나오면서 비타민 D로 바뀌고, 그 결과 뼈가 튼튼해지는 것은 물론 혈중 콜레스테롤이 줄어들면서 혈관이 깨끗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것도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 방법이다. 소음, 공해에 시달릴 때는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만 물, 바람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는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등산을 하더라도 빨리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는 물, 바람 소리를 들으며 느껴본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이시형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