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에 팀장으로 승진한 J 씨는 시간이 지나도 승진에 따른 부담감이 줄어들지 않아 고민이다. 주변에서는 어려운 시기에 승진한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솔직히 ‘승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했던 그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새로운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부담스럽게만 여겨지고, 팀의 성과에 대해 문책이나 질타라도 받는 날이면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면접 때마다 실패하는 20대 후반의 취업준비생 Y.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개그맨’으로 통할 정도로 쾌활한 성격의 그는 이상하게도 낯선 사람들 앞에만 서면 전혀 달라진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물론 진땀이 나고 눈앞이 아득해지곤 한다. 때문에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은 그는 ‘사회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현재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돼 취업에도 성공했다.
이처럼 새로운 시작을 앞둔 상황에서 지나치게 적응하기가 힘들다면? 심신이 괴롭고, 실수가 많다면 혹시 스타트 신드롬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출발점에서는 누구나 두렵고 긴장되기 마련이지만 지나친 두려움이 심신에 영향을 미쳐 출발을 더디게 하거나 심각하게는 출발 자체를 망친다면 스타트 신드롬일 가능성이 크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 직장인들에게는 이직도 스트레스가 많은 출발점 중 하나다. 흔히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을 배우자의 죽음으로 본다. 만약 배우자의 죽음을 100으로 본다면 해고는 47, 이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39 정도로 만만치 않은 편이라고 한다.
<스타트 신드롬>이라는 책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스타트 신드롬을 분석하기도 했던 김진세 고려제일정신과 원장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상담을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의 30% 정도는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고통이 스타트 신드롬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주로 어떤 사람들에게 스타트 신드롬이 많이 생길까. 김진세 원장에 따르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청·장년기에 많은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노인 인구가 늘어 스타트 신드롬이 생기는 연령이 늦추어지고 있다. 또한 핵가족과 심각한 입시문제 등으로 청소년기의 스타트 신드롬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성격으로 봐서는 소심한 성격, 꼼꼼한 성격, 의존적인 성격, 자꾸 남의 탓을 하는 성격 등 출발을 방해하는 성격의 유형은 다양하다. 심지어 지나치게 의욕적이어서 자꾸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만 끝을 못 맺는 성격도 스타트 신드롬을 만든다.
우선 생애주기 스타트 신드롬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애주기에 따라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종류의 스타트 신드롬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걷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고, 결혼을 하는 등의 일이 모두 생애주기에서 누구나 겪는 새로운 출발이다. 이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스타트 신드롬을 겪는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스타트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에 비해 생활사 스타트 신드롬은 누구나 해당되지는 않지만 흔하게 겪는 경우다. 보통은 부정적인 생활사 때문에 일어난다. 자칫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 오래 이어지면 병적인 상태로 진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첫 번째 결혼 상대에 대한 불신이나 분노 때문에 스타트 신드롬을 겪을 수 있다.
생애주기 스타트 신드롬과 생활사 스타트 신드롬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많은 경우 잘 극복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병적 스타트 신드롬.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일시적인 스타트 신드롬이었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되면서 병적 스타트 신드롬이 되기도 한다.
김진세 원장은 “병적 스타트 신드롬의 경우 혼자서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 경우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진세 원장은 스타트 신드롬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 정신자세를 꼽았다. 첫 번째는 스스로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다. 현실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성격이나 업무능력, 대인관계 능력과 한계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두 번째는 평소에 준비하는 자세다. 마치 마라토너가 대회에서 잘 뛰기 위해서는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해서 체력을 다지고 준비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과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활발한 대인관계를 위해 노력하면 스타트 신드롬을 잘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시작하는 용기다. 모든 스타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이번에 안 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때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열린다. 스타트 신드롬을 이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시 스타트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틀릴 것만 같은 일도 막상 시작하면 술술 풀리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다스리기 힘든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상담을 통해 스타트 신드롬의 숨은 원인을 찾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예를 들어 대인공포증이 있어서 매번 면접 등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어렵다면, 원인이 되는 대인공포증을 치료해야 스타트 신드롬도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고려제일정신과 김진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