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됐던 류 군이 9월 28일 사문진교 부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진제공=대구 수성경찰서
[일요신문] 엄마, 딸, 아들 등 가족 구성원 3명이 모두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에 대한 정보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실종상태였던 아들까지 낙동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며 이들이 죽은 시점, 사인 등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일가족이 모두 사망했으며 그 과정에서 딸은 백골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됐다. 게다가 11살 아들은 유서로 보이는 글까지 남겼다.
사건의 시작은 어머니 조 아무개 씨(52)의 시신이 낙동강에서 발견되면서부터다. 그는 지난 9월 20일 경북 고령군 고령대교 인근에서 사망한 채로 낚시꾼에 의해 발견됐다.
조사를 위해 찾아간 조 씨의 아파트에서 경찰은 딸 류 아무개 씨(26)의 시신도 발견할 수 있었다. 류 씨의 시신은 이불과 비닐에 싸여 베란다 붙박이장에 숨겨진 형태로 있었다. 붙박이장에 테이프가 붙여져 있고 박스로 가로막혀 있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 경찰이 이를 열자 류 씨가 발견된 것. 그는 겨울 점퍼를 입고 백골에 가까운 상태였다. 사망한 지 수개월이 지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아파트에선 당시 실종 상태인 아들의 메모 형태 유서까지 발견됐다. 조 씨의 아들 11살 류 아무개 군이 남긴 짧은 메모로 그 내용은 ‘내가 죽거든 십자수, 색종이 접기 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 주세요’였다. 경찰은 아들이 이번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보고 아들의 행적을 쫓았다.
경찰이 아파트 CCTV를 확인한 결과 류 군은 엄마 조 씨와 함께 지난 9월 15일 집을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아파트가 위치한 대구 수성구 범물동과 고령대교 인근을 수색하던 경찰은 9월 23일부터 수배전단을 배포하며 공개수사로 전환해 류 군 찾기에 나섰다.
조 씨 가족이 살던 아파트. 큰딸이 붙박이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구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수사초기, 모자의 동선 파악에 주력했다. 이들의 교통편 이용 여부 등을 알기 위해 택시·버스 기사들을 상대로 조사하고 주변 CCTV 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조 씨 모자는 집에서 나서며 택시를 타고 대구 북부정류장까지 이동해 버스로 갈아타고 대구 서구 비산동의 팔달교 인근에서 하차했고 다리 쪽으로 걸어간 것까지 확인됐다.
경찰은 이들이 팔달교로 향했고 조 씨의 시신이 고령교에서 확인된 것을 미뤄봤을 때 류 군도 낙동강에서 발견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강 수색에 집중했다.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낙동강 수색에 보트, 드론, 헬기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고 특수부대의 협조로 수색견도 투입됐다”고 말했다.
나날이 수색 작업에 투입되는 병력을 늘린 끝에 류 군은 지난 9월 28일 대구 달성군의 사문진교 인근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류 군 역시 어머니 조 씨와 마찬가지로 낙동강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류 군마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며 일가족 죽음의 의문이 풀리기는 더욱 힘들게 됐다. 경찰은 이들의 사인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류 군의 부검결과 몸속에 물이 들어가고 부패가 진행돼 익사임을 확신할 순 없지만 외부 충격에 의한 외상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찾기 어려운 사망 이유…사회와 담 쌓은 가족
경찰은 모자가 낙동강에 함께 뛰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망 시점에 차이가 난다해도 방법이나 그 차이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모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류 군의 누나도 이들보다 오래 전에 사망한 것으로만 추정할 뿐 사인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에서는 조 씨와 이혼한 류 군의 아버지, 조 씨의 오빠 등 다른 가족들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조 씨는 8년 전 이혼 이후 전 남편과 연락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큰딸과 막내 류 군 사이 둘째 딸은 전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 가족은 이웃과의 왕래도 드물었다. 조 씨가 살던 아파트 단지 내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은 그에 대해 “이웃과 교류가 없다. 마트에 몇 년간 오갔지만 대화 한 번 나눈 적이 없다.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들도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이 아파트에 2011년 3월부터 살았으며 상인은 지난 10여 년간 마트를 운영해왔다.
조 씨 가족 아파트의 가스 검침표. 가스 사용량은 매달 일정했다.
류 군도 11살임에도 그동안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외출도 잦지 않아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드물었다. 류 군은 홈스쿨링을 진행하다 학교 측의 권유로 올해 2학기부터 4학년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부 발진 등을 이유로 조퇴와 결석이 잦은 상황에서 9월 9일 이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대구 교육청 관계자는 “등교 일수는 5일이며 그마저도 온전히 하루를 학교에서 보낸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4학년 학생도 류 군에 대해 “같은 반은 아니라서 잘 모른다. 다른 친구들이 하는 얘기는 들었다. 가난해서 그동안 학교를 못 다녔고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버지가 안계시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 학생은 류 군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기도 했다. 류 군이 다니던 초등학교 교감은 “학생 개개인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번 사건을 놓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크게 동요가 없는 상황이다. 그 학생이 학교에 짧게 다녀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 가족이 학생의 말대로 생활고를 겪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가스 사용량에 변동이 없었고 옆집과 많게는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달도 있었다. 조 씨는 학습지 교사로 알려졌고 경찰에서는 직장이나 재산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지만 특이사항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구=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가족간 불화 없었나 “모녀는 냉랭, 모자는 각별” 추측뿐 조 씨 가족은 이처럼 이웃이나 다른 가족과 교류도 없고 류 군의 메모 이외엔 유서도 남기지 않아 사인 규명이 어려운 상태다. 이들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모녀간 사이가 좋지 않아 시신이 방치됐고 조 씨가 류 군은 각별히 생각해 함께 사망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둘 사이에 불화가 있거나 어떤 문제가 있어 딸이 죽었음에도 조 씨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그런 방식으로 처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들과는 끝까지 함께하는 등 애착을 보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웃 주민들도 비슷한 예상을 하고 있었다. 마트 주인 A 씨는 “엄마와 아들, 딸과 아들이 둘이 다니는 경우는 많았지만 엄마와 딸이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지는 못한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딸이 보이지 않았는데 항상 엄마와 아들이 함께 다녔다. 그 정도 또래 아이가 혼자서 슈퍼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아이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이 이렇게 됐으니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아무래도 딸이 집안에 그렇게 돼 있으니 혹시나 아들이 딸 얘기를 밖에서 할까봐 학교에도 안보내고 혼자서는 밖에 내보내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 아이가 동네에 어울리는 친구가 없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상] |
낙동강 물줄기 따라가 보니…팔달교서 사라진 후 어디로? 팔달교. 좌측의 대구 3호선에서 차도를 내려다 보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시신은 모두 부검 결과를 거쳤지만 부패 등으로 시체가 훼손돼 정확한 사인이나 사망 시점을 알아내기는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의 경우 익사로 1차 판명 났지만 약물·독극물 검사를 추가로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류 군은 조 씨보다 늦게 발견된 탓에 부패가 심해 사망원인 미상이라는 1차 결과가 나왔지만 익사가 유력해 보인다. 이들은 각각 10km 정도 거리의 경북 고령군 고령대교와 대구 달성군 사문진교에서 발견됐다. 사문진교는 조 씨 모자가 사라진 팔달교와 고령대교의 중간 정도의 위치다. 인근에서 류 군의 시신이 발견된 사문진교. 반면 직선거리로 11km 정도 떨어진 류 군이 발견된 사문진교는 유량이 많고 강폭도 넓어 교량의 규모도 더 컸다. 대구 도심으로부터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 인적이 드물었다. 조 씨가 발견된 고령교 주변도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장소적인 특징만 놓고 볼 때 가장 유력한 사망 위치로 보인다. 하지만 강이 흐르는 형태나 주변 환경, 다리의 규모만을 가지고 사망한 위치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대구 수성경찰서 관계자도 “어느 지점에 집중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고 수사중이다. 특히 모자가 팔달교에서 사라진 이후에 대해서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