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17일 이 살생부가 일간지에 게재되자 즉각 작성자에 대한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 장전형 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실에서 “작성자에 대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당내 국장급 인사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가 이를 철회했고 조사 자체가 유야무야됐다.
작성자가 신주류의 특정인사와 관계가 있는 인물로 드러날 경우 예상되는 파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18일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역적군’으로 분류된 구주류 의원들이 일제히 당의 공식조사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구주류의 이훈평 윤리위원장이 조사 방침을 밝히고 나섰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우선 A4용지 9장 분량에 걸쳐 민주당 소속 의원 94명을 정확하게 계파별로 분류한 것을 감안하면 작성자는 민주당적을 상당기간 보유한 부장급 이상의 간부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이 같은 방대한 작업을 할 열정이 있고 노 당선자 흔들기에 동참한 의원들에 대해 ‘치가 떨릴 정도’의 적개심을 드러낸 것을 감안하면 친노성향이 강한 당료로 보인다. 특히 의원들의 평가기준으로 적시한 내용들이 상당히 구체적인 점을 감안하면 노 당선자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 번째는 대선 당시 노 당선자 수행 과정에서 나타난 의원들의 행태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사례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노 당선자 수행그룹에 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박상희 의원을 ‘역적’으로 분류하면서 ‘나는 선거 직전 신촌유세에서 초라해진 박상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 구석에 군중 사이에 숨어서 그 엄청난 인파에 놀라며 황급히 피하는 박상희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고 적고 있다.
‘2등공신’으로 분류한 이정일 의원에 대해 ‘노 후보가 지난 수해 때 나주에 가서 배를 주우러 갔을 무렵 그 옆에서 배기운과 더불어 함께 배를 줍던 이정일 의원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기술한 것도 같은 사례다.
네 번째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 여러 차례 사례로 적시된 점을 감안하면 노 당선자의 공보, 홍보팀이나 당 대변인실과 연관이 있는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특1등공신’으로 분류한 김경재 의원에 대해 ‘최후의 만찬사건은 그의 존재를 일깨워준 좋은 사례다’고 기술했다.
또 ‘2등 공신’으로 분류한 박인상 의원에 대해서는 ‘대선기간 내내 박인상의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언론에서는 늘 박인상을 친노로 분류한 것을 보아…’도 유사한 사례다. ‘역적’으로 분류된 박주선 의원에 대해서도 ‘11월13일 반노진영 인사들과 만나 골프 치고 폭탄주를 마시며 반노작당을 펼쳤다’고 기술했는데 이 내용도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다섯 번째는 문건에 사용된 표현 중 일부가 작성자가 여자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의원들의 외모에 대한 평가가 그것인데 박병석 의원에 대해서는 ‘눈도 작지만 하는 짓도 참 좁살맞았음’이라고 기술했고 정장선 의원에 대해서는 ‘얼굴은 늙었지만 의외로 젊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으며 홍재형 의원에 대해서는 ‘착하게 생겼으니까 한 번 봐주자’라고 적고 있다.
또한 ‘역적’으로 분류된 의원들에 대한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욕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등 표현 양식이나 톤이 남성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약한 느낌이 든다. ‘설송웅 정말 밉다’라든가 ‘정말이지 지겹게 괴롭혔다’ 등이 대표적 사례다. 또 필명을 ‘빚이 되어’라고 붙인 대목도 여자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 같은 분석을 종합하면 살생부의 작성자는 노 당선자 캠프에서 공보 및 홍보 또는 수행을 담당했던 핵심 당료 중 부장급 이상의 여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살생부의 ‘생산자’로 당 조직의 부국장급 한 남성 인사가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인사는 강하게 ‘작성설’을 부인하고 있다(4면 인터뷰 참조). 당 윤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살생부 작성자가 당내 인사로 밝혀질 경우 불똥은 자연 ‘작성 배경’쪽으로 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연 누가 왜 살생부를 만든 것일까. 살생부 파문은 이제 ‘유탄’이 더 무서울 수도 있는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