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전 시장이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재산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6월 12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전 시장의 부인인 김윤옥 씨가 강남구에서 15차례나 주소지를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위장전입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기자들이 “김 씨의 위장전입 의혹에 대한 증거를 공개하라”고 했지만 김 의원은 “이 전 시장의 답변을 보고 (증거공개 여부를) 얘기하겠다”며 이 전 시장의 해명을 거듭 요구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있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겠느냐. 사실 여부에 책임을 지겠다”고 자신이 입수한 증거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런데 김 의원은 이미 기자회견 전부터 이 전 시장의 주민등록등·초본 기록을 확보해 확실한 물증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이 일단 부인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1차 ‘공격’만 한 것으로 보인다. 예상대로 이 전 시장은 우선 위장전입 의혹을 부인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뒤 일부 언론에서 이 전 시장의 모든 주소지에 대한 현장 점검을 하는 등 위장전입 의혹에 대한 구체적 정황들에 대한 취재에 나서며 일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전 시장이 직접 이번 사안을 확인한 결과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위법 사실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전격적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 당직자는 이에 대해 “사실 이 문제가 여권에서 제기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 정치적 배경이 상당히 불순하다. 그래서 이번 건에 대해서도 해명할 것은 해명하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일단 위법 사실이 드러난 이상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전 시장은 기업가 출신으로서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보다는 인생 역정 자체가 험난했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 그런 현실적인 점을 국민들이 좀 이해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사과 기자회견에는 현실적인 점도 작용했다. 이 전 시장측은 범여권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 등에서 제기한 차명재산 관련 의혹에 대해 일관되게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주가조작 사건 연루설, 친인척과의 부동산 거래 등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자 세간의 여론이 ‘무슨 말 못할 큰 비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군자’처럼 살아오지 못한 점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미리 그런 여론의 ‘오해’를 막아야 하겠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번 이 전 시장의 사과 기자회견은 칼의 양날과 같다. 먼저 실정법을 어겼던 이번 사안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점은 정치적으로 평가받을 부분이라는 것이 이 전 시장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위장전입 의혹이 여권에서 먼저 제기됐고 그것을 시인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일부에서는 “결국 걸려들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캠프의 자세에 대해서도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그동안 이 전 시장 캠프에서는 수시로 후보 검증에 대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고 말해왔다. ‘어떤 의혹을 제기해도 떳떳하게 해명할 것이니 제발 구체적 사안을 가지고 의혹을 제기해 달라’고 했다. 이번 위장전입 건이 그 준비된 내용에 포함됐다면 여권에서 의혹을 제기할 때 차라리 순순히 의혹을 인정하고 일부 잘못된 점이 있었다고 해 김 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전 시장측은 이번 위장전입 문제에 대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일단 사실을 인정한 만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앞으로 이 문제를 확대 재생산해 계속 정치이슈화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캠프에서는 이 문제가 이 전 시장의 지지도 추이 등 대선 국면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분석에 열중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먼저 위장전입 의혹이 향후 대선국면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캠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단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의 인생 이력을 국민들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그가 계속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도덕성 높은 리더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경제 회생에만 국민 역량을 집중시킬 수 그런 지도자를 더 원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위장전입이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그렇게 치명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정적 목소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부동산 문제는 항상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이었다. 수백억 원대 횡령은 눈감아 줄 수 있어도 ‘사소한’ 부동산 관련 의혹이 훨씬 국민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 바로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 전 시장이 그 부분을 알고 전격적인 사과를 하며 정공법을 택한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사소한’ 건이 계속 불거진다면 그 영향력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전 시장 측에서는 여권과 박 전 대표 측의 대대적인 ‘합동공격’에 대한 당 지도부의 대응에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도부가 ‘중립’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여권의 공세까지도 그냥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인정하겠지만 정치 공작 차원에서 하는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가 적극 나서서 우리 후보를 보호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당분간 국민의 판단을 겸허히 지켜볼 생각”이라며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