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의장에게는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전주공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정세균은 인문계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어느 날 전주신흥고등학교 교장을 무작정 찾아 갔다. 그는 당시 교장에게 “전주공고에서 1등을 한번도 놓친 적이 없는 정세균이라고 합니다. 신흥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장학금을 안 주시면 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됩니다. 장학금을 주시고 전학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어찌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학생의 제안이었지만 교장 선생님은 그를 장학생으로 받아줬고 그 학생은 이후 신흥고 졸업생으로서 개교 100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모교를 빛내는 주역으로 거듭났다.
정 의장은 한국전쟁 발발로 포연이 자욱하던 1950년 9월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개안들이라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유아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정 의장은 장수군과 인접한 진안군으로 이사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는 세 군데나 옮겨 다녀야 했다.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안성고등학교를 6개월도 채 못 다니고 전주공업고등학교로 전학을 갔으며 다시 신흥고로 옮겨 졸업했다.
유신 한 해 전인 71년 정 의장은 고려대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생활에 접어든다. 정 의장은 대학시절 법학도였지만 고대 신문사 일에 열정을 가지고 정열을 쏟아부었다. 유신이 본격적인 발톱을 드러내던 시기에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다는 사실은 정 의장의 젊은 시절 이념과 노선을 대변하고 있다.
대학졸업 후 정 의장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쌍용그룹이다. 그룹 계열사인 쌍용종합상사에 입사한 정 의장은 시멘트 영업을 시작으로 기계부품, 신발 등 소위 ‘라면에서 미사일까지’라는 국제영업의 최일선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미국지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선진 정치 경제의 현장을 체득하는 좋은 기회를 갖기도 했다.
18년간의 실물경제를 현장에서 체험한 정 의장은 1995년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다. 1996년 4월 제15대 총선 때 고향(전북 무주 진안 장수)에서 출마해 상대후보를 40%라는 큰 표차로 따돌리면서 금배지를 단 정 의장은 이후 16·17대 총선에서도 무난히 당선됨으로써 3선 중진 반열에 올랐다.
외유내강형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 의장은 정계 입문 이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책위 위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면서 정책통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5년 1월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시절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 실패로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재정비하는 등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 의장은 당시 행정도시특별법, 과거사법, 사학법 등을 차례로 통과시키는 데 기여했고 같은 해 10·26 재보선 참패 이후에는 임시 당의장직을 겸하면서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정국현안을 대과 없이 처리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발탁돼 행정 경험을 쌓은 정 의장은 열린우리당이 탈당사태 여파 등으로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한 가운데 치러진 2·14 전당대회에서 당 의장으로 합의 추대됐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두 차례 ‘세이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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