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1일 삼성사건 6차 공판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삼성전자 같은 회사를 또 만들려면 10년, 20년 갖고는 안 될 겁니다.”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건희 전 회장은 이 말을 꺼내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6월 12일 첫 공판 이후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재판 과정의 피로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아들(이재용 전무)과 함께 법정에 선 얄궂은 운명에 대한 회한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 특검 수사로 비롯된 이 재판이 모두 끝났을 때도 과연 이 전 회장의 표정이 이때와 같을지는 의문이다.
삼성 특검법에 따라 이번 재판은 1심 3개월, 2심과 3심을 각각 2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 1심 재판 기한이 기소일(4월 17일) 후 3개월인 만큼 오는 7월 17일 안에는 1심 재판이 종결된다. 이 전 회장 재판을 맡은 민병훈 부장판사는 법조계에서도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최근 진행 중인 공판과정에서도 이 전 회장과 변호인단 그리고 검사에게까지 논리부족에 대해 호통을 치는 데 주저함이 없을 정도다. 법조계와 재계 일각에선 이 전 회장의 1심 결과가 실형 선고로 나올 가능성도 조심스레 예측해보고 있다. 양형이 지나치게 가볍거나 무죄 판결이 나올 경우 재벌 봐주기 논란이 점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지난해 2월 비자금 사건 재판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도 법정구속을 피한 것처럼 이 전 회장이 구치소로 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삼성 특검팀은 수사발표에서 이 전 회장의 경제발전 기여도를 언급하면서 불구속기소를 결정한 바 있다. 쇠고기 파문 등으로 이반된 민심 수습을 위한 경제정책 추진에 삼성 같은 대그룹의 협조가 절실한 정부의 정서가 사법부에 전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월 12일 시작된 1심 공판 일정이 한 달여 만에 끝나는 만큼 2심과 3심 또한 빠른 속도로 전개될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으면 항소를 포기할 가능성도 엿보인다(물론 검사 측이 항소하면 2심, 3심까지 가야 한다). 이 경우 재계 인사들은 삼성이 법조인맥을 총동원해 처벌강도 낮추기에 공을 들이는 한편 향후 특별사면 대상에 이 전 회장 이름이 포함되도록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광복절 특사는 불가능하겠지만 성탄절이나 연말 특사를 도모해 볼 수는 있는 셈이다.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들도 이 전 회장 사면을 위해 적극 거들 태세다.
이 전 회장은 최근 폐수종과 저혈당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1심 선고 이후 이 전 회장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거론된다.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 전 회장의 병세, 특검에서 드러난 차명계좌 재산에 대한 공익기금화, 그리고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 등이 맞물려 최종 판결의 무게가 결정될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