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초 6강 진입조차 쉽지 않았던 고양 소노였다. 시즌을 2연패와 함께 시작, 1라운드 9경기에서 2승 7패를 기록했다. 시즌 대부분을 하위권에서 허덕였다.
반전은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외국인 선수 교체로 승부수(제일린 존슨→이기디우스 모츠카비추스)를 띄웠고 연쇄 효과로 승리가 늘었다.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시즌 막판 10연승을 기록하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결국 최종 5위에 오르며 플레이오프까지 치르게 됐다. 팀이 2023년 데이원에서 소노로 간판을 바꿔 단 이후 역사상 최초의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플레이오프 대진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시즌 막판 상승세만으로도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과정에서 상위 시드를 받는 서울 SK가 시즌 최종전에서 '고의 패배'를 의심받았다. 6강 상대로 부산 KCC가 아닌 소노를 상대하고 싶어 하는 의도가 보였다. 결국 SK는 KBL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전희철 감독은 제재금 500만 원을 내야했다.
'SK와 전희철 감독의 선택을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는 종목에서 시즌 막판 힘을 빼는 것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또한 이번 시즌 SK는 KCC보다 소노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KCC를 상대로는 2승 4패로 열세를 보였으나 소노에는 4승 2패로 앞섰다.
다만 소노 구단으로선 유쾌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자신들이 비교적 '쉬운 상대'로 간주된 것이다. 손창환 감독은 결전에 앞서 "'벌집을 잘못 건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예고했다.
독기를 품은 '벌집'은 무서웠다. 6강 1차전, 전반에만 50점을 쏟아부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결국 소노는 SK에 시리즈 전적 3-0의 완승을 거뒀다. 정규시즌에서의 열세를 단번에 뒤집은 것이다.
소노의 기세는 4강까지도 이어졌다. 정규리그 1위팀이자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던 '디펜딩 챔피언' 창원 LG마저도 눌렀다. 1, 2차전에서 역전승을 가져가더니 3차전에서는 경기 내내 리드를 가져가며 승리했다. 이제 소노는 정규리그 역대 최저 승률(51.9%)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도전한다.

소노의 '에이스' 이정현은 자신의 커리어 중 최고의 시즌을 만들려 한다. 이전부터 국내 최고 가드로 불리던 자원이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메인 볼핸들러로 활용되며 해외파 이현중에 이어 2옵션을 맡는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평균 18.6득점 2.6리바운드 5.2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했다. 커리어 하이에 달하는 기록은 아니지만 완급 조절과 승부처 활약으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시즌 막판 팀의 10연승에 앞장선 공로까지 인정받아 정규리그가 끝난 이후 시상식에서 MVP를 받았다. 프로 데뷔 이래 최초 시즌 MVP 수상이다.
소노 구단으로선 시상식에서 '겹경사'가 이어졌다. 아시아쿼터 자원인 케빈 켐바오(필리핀)가 신인왕에 오른 것이다. 시즌 막판 팀의 분전과 함께 활약상을 더한 켐바오는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MVP와 신인상을 각각 받은 이들 원투펀치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주축 자원으로 활약했다. 플레이오프 첫 경기부터 각각 30점에 가까운 득점을 퍼부으며 기세를 올렸다. 이정현은 적재적소에서의 활약으로 효율을 끌어올렸다. 켐바오는 정규시즌보다 높은 기록을 찍어내고 있다. 4강 1차전에서는 무릎 부상을 당했음에도 이를 극복하며 코트로 돌아와 놀라움을 안겼다.
1옵션 외인 네이던 나이트는 향후 장기적으로 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자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규시즌에서 상위권 기록(18득점 11.4리바운드 2.4어시스트 0.9블록)을 남겼고 플레이오프 무대에서는 전술적 활용도 또한 높다는 것을 증명했다. 6강 1, 2차전에서는 각각 4점과 6점만을 기록하며 공격 욕심을 내려놨다. 상대 에이스 자밀 워니 수비, 리바운드와 스크린 등 궂은 일에 집중하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이어진 3차전과 4강 시리즈에서는 정규시즌 못지않은 공격력도 선보였다.
주축 자원의 활약으로만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 부상 여파 등으로 커리어에서 가장 저조한 시즌을 보낸 베테랑 가드 이재도는 4강에서 날아올랐다. 정규리그와 6강까지는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4강 시리즈에서 각각 17점, 12점, 14점을 넣으며 '조커'로 활약했다. 그 외에도 김진유, 이근준, 임동섭 등 백업 자원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이는 벤치 활약이 아쉬웠던 4강 상대 LG의 모습과 대조돼 더욱 호평을 받았다.

정규시즌 막판부터 시작된 오름세, 소노는 플레이오프에서 6승 0패로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다. 이에 손창환 감독의 지도력도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비주류'로 불리던 인물이다. 1999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7순위(전체 17순위)로 안양 SBS(현 정관장)에 입단했다. 선수로서 활약이 많지 않았다. 2003년 은퇴까지 선수로 남긴 통산 누적 기록은 20득점 10리바운드다. 존재감이 적은 무명 선수에 가까웠다.
은퇴 이후 홍보팀과 전력분석원 등 구단 프런트로 일했다. 장기간 전력분석 팀장을 맡았고 2015년부터는 코치로 전환됐다. 2022년부터는 현재의 고양에 둥지를 틀었다. 앞서 두 명의 감독이 교체되는 끝에 손 감독이 어렵게 지휘봉을 잡았다. 소수의 명문대 출신만이 감독직을 맡는 KBL 무대에서 건국대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감독이 됐다.
이번 호성적으로 과거 힘들었던 일화가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고양 데이원 코치 시절 모기업 문제로 손 감독은 임금을 장기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시 그는 군 입대를 앞둔 선수에게 밥을 사주려 공사장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에 나서 화제를 모았다.
이번 시즌 손 감독을 둘러싼 분위기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일부 신임 감독들이 FA 영입 등 구단으로부터 '취임 선물'을 받는 것과 달리 빈손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초반 승리를 쌓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의심의 눈초리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6강만 가도 성공'이라던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강팀들을 밀어냈다. 드라마 같은 손창환 감독의 농구 인생은 더 많은 팬들을 끌어모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소노 구단은 어렵사리 플레이오프에 올라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무대까지 밟게 됐다. 이들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이정현은 챔프전 진출이 확정된 이후 "이대로는 만족을 못할 것 같다. 반드시 별(우승)을 따겠다"는 다짐을 팬들 앞에서 남겼다. 팬들도 비행기를 동원해 원정 응원에 나서는 등 뜨거운 열기로 힘을 보태고 있다. 소노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