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법률안이 위헌, 집행불능, 국익 위배, 행정부 고유권한 침해 등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어 “검찰은 수사부터 기소, 영장청구 등 형사사법체계 전반에 걸쳐 과대하게 집중된 권한을 행사해왔다”며 “수사·기소 분리는 이런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는 대통령이 잘 쓰는 SNS(소셜미디어)에 계정까지 개설해서 형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절박하게 호소했다”며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국민이 국가를 향해 피해자의 편이 돼달라고 절규하는 이 현실보다 이 악법의 본질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 어디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보완수사권 폐지는) 장윤기 같은 살인자 편, 돌려차기 범인 같은 범죄자의 편을 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범죄 피해자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지옥문이 열렸다”고 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 씨(가명) 역시 형소법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을 두고 “이 대통령이 지지한다 아니면 반대한다 이런 얘기도 하지 않고, ‘헌법에는 위반되지 않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본인이 막중한 책임을 지기 싫다는 공무원의 태도”라며 “회피형 대통령”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소위 ‘검수완박’을 추진한 적이 없다. 일부 민생 치안 범죄에 한해 검찰의 사법적 통제를 받는 전제에서 경찰 수사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수사권 조정을 추진했다”며 “국가 권력은 권력기관 상호간에 나뉘어져야 하고 서로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곽 의원은 국회의 형소법 개정안 처리 당시 당론을 거스르고 민주당 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는 이재명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8월 3~4일 무선 ARS 조사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가 전주 대비 4.0%포인트(p) 하락한 47.7%를 기록했다. 지지율이 일주일 만에 40%대로 내려앉았다. 부정평가는 48.5%로, 전주 대비 4.9%p 상승했다.
2030세대의 지지율 하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긍정평가가 20대와 30대에서 각각 33.9%와 36.6%로, 30%대에 머물렀다. 특히 20대 지지율은 전주와 비교해 18.8%p가 급락했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들 세대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증시 변동성 확대와 부동산 정책 등과 함께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가 거론된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보완수사권 문제와 관련해 ‘예외적으로 최소한 허용해야 한다’ ‘조금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이 우세한 흐름을 보였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2030세대 여성들은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이 대통령의 중요한 지지층으로 활동했다”며 “2030 여성들이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논의 과정에서 수차례 성범죄·스토킹 범죄 해결 과정에 우려점을 제기했다. 하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20대 일부 지지층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민변 여성인권위원회·장애여성공감·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전화 등 5개 여성인권단체는 7월 31일 공동성명을 통해 “피해자 없는 검찰개혁이자 본질을 잃은 개혁”이라며 “여성 폭력 피해자와 지원단체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인 여당 주도 형소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라고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았다. 한동훈 의원은 8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 씨를 발언자로 초청해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를 주최했다. 이 자리에는 ‘친한계’로 분류되는 서범수 진종오 의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서 의원은 간담회 시작 전 맞은편에 앉은 진 의원을 향해 “돌려차기 한번 하지”라고 말했고, 진 의원은 “나는 발보다 손을 잘 쓴다”고 받아쳤다. 사건 희화화 망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서 의원과 진 의원은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사과했다.
장동혁 대표는 “실수로라도 있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당 차원에서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두 의원의 언행이 심각하다는 데 이견 없이 공감했고, 중앙윤리위원회를 통한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만약 당권파에서 피해자 조롱인 돌려차기 운운 막말을 했다면 장담하는데 친한계 전체가 나서서 융단폭격을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들 모두 서범수 진종오 의원의 막말에 대해서는 조용하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피해자의 상처를 다시 후벼 팠다” “피해자의 눈물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민주당 관계자는 “자칭 합리적 보수라고 하는 한동훈 의원과 친한계 의원들의 수준을 보여준 것”이라며 “국민의힘에게 범죄 피해자는 보호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를 때리고, 본인들의 권력을 지키는 데 필요한 소품이었다”고 직격했다.

민주당에선 ‘피해자 보호 공백’ 우려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민주당은 형소법 개정안 시행 전 남은 과제로 ‘전건송치’를 위한 개별법안 개정을 꼽는다. 전건송치는 경찰 등 1차 수사기관이 수사한 사건기록을 검사에 넘겨 검토 받게 하는 제도다. 현재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범죄만 전건송치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성범죄 △아동 성범죄 △스토킹 △장애인 학대 △노인 학대 범죄까지 전건송치 범위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관련 개정안이 김남희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후속 입법을 오는 10월 2일 전까지 모두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친명계’ 민주당 초선 의원은 “이미 통과된 형소법 개정안은 돌이킬 수 없다. 8·17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구성되면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을 충분히 듣고 새로운 개정안 등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권에선 개정된 형소법 시행 후 벌어질 혼란 등이 결국 부메랑이 될 것이란 관측이 곳곳에서 나온다. 2028년 총선, 2030년 대선에까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었다.
친명계로 꼽히는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밀어붙였던 강경파 의원들이 과연 나중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이미 법조계에선 개정된 형소법이 결국은 폐지되거나 다시 수정될 것이란 말이 파다하다”면서 “부작용들이나 국민들의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민주당의 재집권 플랜은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두고두고 민주당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