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지도자 결사옹위’ 사상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붙잡힐 위기에 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두 포로는 ‘자총’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붙잡힌 것으로 전해진다(관련기사 : “포로 되면 반역” 러-우 전쟁 파병 북한군 ‘자총 프로세스’의 비밀)
그동안 북한군 포로 2명은 탈북민 단체에 전달한 친필 편지와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 귀순 의사를 표명해 왔다. 정부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군 포로들이 귀순 의사를 명확히 한 만큼 이들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북한군 포로가 우크라이나 측에 붙집힌 지 20개월이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조연설에서 ‘깜짝 발언’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으로 송환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왜 북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을) 화폐처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정상의 입을 통해 북한군 포로 한국 송환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의힘에선 날선 반응이 나왔다. 9월 24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젤렌스키가 대한민국 대통령인가”라면서 “우리 국민이 북한군 병사의 한국행을 왜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엔 연설을 통해 들어야 하느냐”고 했다.
북한군 포로 한국행에 대해 안 의원은 “자유 대한민국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면서도 “그런데 한국과 우크라이나 양국 공동발표도 아닌 무슨 외신 속보 마냥 (북한군 한국 송환 사실을) 접해야 하느냐. 이재명 대통령은 즉시 귀국해 국민 앞에 실상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남북관계가 어떻게 되든, 누가 죽어나가든 개의치 않고, 성과를 생색내느라 포로 송환사실을 징치고 춤추며 온 세상에 광고했을 때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의 비공개 노력이 이해가 안될뿐 아니라 뭔가 문제될 게 있나 싶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국정지지율 만회에 명백히 도움될 북한포로 국내 송환 사실을 공개하자는 내부 주장이 왜 없었겠느냐”면서 “그러나 (포로 송환) 공개로 생길 여러 문제를 생각할 때 비공개하자는 것이 모든 면에서 타당했고 그렇게 합의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로 부른다”면서 “타당하고 정당한 비공개 조치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측은 “해당(북한군 포로 송환) 사안에 대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본인들의 자유 의사에 따라 국내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처리한다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는 현지에서 취재진과 만나 “(북한군 포로 송환 사안이) 공개되면, 더 큰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은 것뿐이지, 특정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어느 나라도 포로 교환을 대놓고 하지 않는다. 공개하지 않으면 흑막이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7월 정상회담에서 북한군 포로에 대해 당사자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고,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신병 처리 방안을) 해결해나가기로 이미 합의했었다”면서 “정부가 갑자기 비공개에 집착한 이유가 무엇이냐.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웠느냐. 그 두려움이 대북송금 사건의 약점 때문이냐”고 지적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낸 메시지와 관련해 “공개 요구에 대해 ‘사익을 위해 생명과 안보를 해치는 살인자나 매국노’라는 대통령의 저주는 이 정부를 포함해 역대 좌파 정권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면서 “미사일을 불살 발사체로, 지뢰 사고를 미상의 폭발로 부르는 굴종적인 언어착란이야말로 안보를 내팽개친 매국의 언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공세에 반박했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9월 26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이 안보를 정쟁 도구로 삼는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음모론 제기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 귀순 문제에서도 국민의힘의 매국적 인식은 고스란히 드러난다”면서 “귀순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불필요한 자극과 대립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안을 비공개로 추진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조치”라고 했다.
그는 “정상적인 정치집단이라면 은폐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이를 먼저 공개한 상대방(우크라이나)에게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면서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정쟁을 위한 음모론 제기를 택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에게도, 저에게도 사후 설명도 없다면 우리 여당 의원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정부의 여당 무시인가”라면서 “총리 이하 정부 인사들은 대통령만 바라보지 마시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서도 공방이 벌어졌다. 드미트로 리트빈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소통담당보좌관은 9월 2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런(북한군 귀순 비공개) 합의는 없었다”면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옥사나 토로프 주영 우크라이나 대사 언론보좌관은 소셜미디어에서 이재명 대통령 포스팅을 인용해 “내가 알기론 그런(비공개) 합의가 있었고, 포로 문제는 한국과의 더 큰 협력 협상 과정의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리트빈 보좌관은 해당 주장에 대해 “침묵하기로 한 합의는 없었다”고 재차 반박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번 젤렌스키 대통령의 북한군 포로 한국 귀순 사실 공개는 한국에 대한 협상력을 끌어 올리기 위한 조치였을 수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북한군 포로를 한국으로 보내줬으니, 이제는 한국이 응답해야할 때라는 점을 국제무대에서 강조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상 ‘국민’으로 분류되는 북한군을 귀순시킴에 따라, 한국에 대한 ‘외교적 채권’을 공개된 외교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천명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