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사의 중심에 선 디거 록웰은 국내 대중들에게 익숙한 톰 크루즈의 '액션 캐릭터'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위기를 해결하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이 벌인 일이 재앙을 불러왔음에도 여전히 돈과 권력, 자기만의 논리를 앞세우는 인물이다. 탐욕과 이기주의적 성향을 반영하듯 톰 크루즈는 얼굴 보형물과 팻슈트(몸을 실제보다 뚱뚱해 보이게 만드는 특수 의상), 흐트러진 백발과 강한 남부 억양을 더해 거만하고 요란한 3대째 석유 재벌을 만들어냈다.
앞서 첫 예고편 공개 당시 영국 가디언은 2008년 '트로픽 썬더'에서 뚱뚱한 대머리 영화사 대표 레스 그로스먼을 연기한 이후 톰 크루즈의 가장 알아보기 힘든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트로픽 썬더'에서도 톰 크루즈는 팻슈트와 특수분장을 뒤집어쓴 채 욕설을 쏟아내고 춤까지 추며 기존 블록버스터 액션 스타 이미지를 강렬하게 깨트린 바 있다.

앞서 해외 공개 후 작품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지만 톰 크루즈의 이 같은 변신을 두고는 긍정적인 평가가 다수 이어졌다. 10월 2일 기준 로튼토마토의 '디거' 신선도 지수는 53%다. 부정적인 평가에서는 이냐리투 감독의 자의식 과잉과 설교조의 풍자가 주로 지적되고 있는데, 긍정적인 평가에서는 최근 할리우드 대작에서 보기 힘들었던 과감한 연출 시도와 톰 크루즈의 변신을 높이 샀다.
실제로 LA타임스는 톰 크루즈의 '디거' 출연에 대해 그가 오랜만에 감수한 또 다른 종류의 위험으로 평가했다. 최근 10여 년 동안 대형 프랜차이즈 시리즈에서 자신의 스타성을 극대화해 온 그가 이번에는 블랙코미디 속 추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에 스스로를 던져 넣었다는 것이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완성도가 들쭉날쭉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디거를 연기한 톰 크루즈의 선택과 에너지에는 높은 점수를 매겼다.

'디거'를 택한 이유로는 캐릭터의 낯섦에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톰 크루즈는 "'디거'는 이전에 읽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작품이고 캐릭터라 꼭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 기상천외하고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기뻤다"라며 "영화의 백미는 시대를 초월하는 데 있다.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 캐릭터의 반응과 작은 행동을 통해서도 그런 초월성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작품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리지만 톰 크루즈의 과감한 변신과 연기가 주목받으면서 그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가능성도 일찌감치 거론되고 있다. 톰 크루즈는 '7월 4일생'과 '제리 맥과이어'로 남우주연상, '매그놀리아'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직 수상한 적은 없다. 다만 이 지점에 대해 그는 "오스카나 사람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언제나 내게는 특권이자 영광"이라며 "나는 오직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할리우드 톱스타 가운데 대표적인 '친한파'로 손꼽히는 톰 크루즈의 내한은 1994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번이 13번째다. 할리우드 배우 최다 내한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이날도 "한국을 정말 사랑한다. 앞으로 30번은 더 한국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