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가 11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총리 내정 소감을 밝히기 위해 참석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도 포기한 김 내정자는 20일 넘게 식물 총리 내정자 신분으로 고립무원 처지에 빠졌다. 다만 야권 내부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의결 전이라도 총리 추천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다는 점은 변수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 등은 “전원위원회라도 소집해야 한다”며 ‘황교안 불가론’에 힘을 실었다.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김병준 카드’는 탄핵 정국의 변수다.
탄핵이든, 질서 있는 퇴진이든 ‘김병준 카드’를 거치지 않고선 실타래처럼 꼬인 정국을 풀 수 없다. 김 내정자는 홀로 고립된 채 “내 존재는 총리 후보 추천 압박”이라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불명예인 자진 사퇴보다는 장렬++하게 버티다가 전사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김 내정자가 “청와대와 여야가 합의하면 내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행법에는 총리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시한 규정이 없는 것도 장기전 승부에 한몫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탄핵 정국에서 한 번은 불거질 총리 인선의 시나리오는 ▲황 총리 체제 지속 ▲여야 합의로 새 총리 추천 ▲김병준 카드 등 세 가지다.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한다면, 탄핵이 현실화해도 ‘황교안 체제’는 지속한다. 야권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헌정 사상 초유의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황 총리 체제의 연장은 ‘박근혜 정권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야권이 박 대통령과 함께 황 총리도 함께 탄핵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회 추천 총리 합의 가능성도 미지수다. 야 3당이 ‘선 총리’를 접은 데다 박 대통령이 국회 합의로 추천된 새 총리를 과도내각이 아닌 책임총리 수준으로 격하할 경우 야권으로선 사실상 ‘빈손’ 처지다. 야권이 명분을 쥐더라도 실리까지 챙길지는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남은 선택지는 ‘김병준 카드’다. 그간 야권 물밑에선 박 대통령의 2선 퇴진이 전제되지 않은 ‘김병준 카드’와 탄핵 정국의 ‘김병준 카드’는 다르다는 기류가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적으로 논의할 때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지만, 한 야권 관계자는 “탄핵 정국이 장기 국면으로 접어든다면, 결국 ‘김병준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권이 거부한 카드를 다시 수용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점은 고민 지점이다. 또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탄핵 정국에서 김 내정자와 야권이 정면충돌할 경우 야권의 실익까지 공수표로 전락한다. 이래저래 야권의 딜레마는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