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의 철학이 잘 묻어난 영화를 좋은 영화로 꼽는 사람이 많았다. 프랑스 배우 리제 벨링크는 “독창적이면서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 <족구왕>의 우문기 감독 역시 리제 벨링크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우 감독은 “감독의 사고와 느낌이 잘 녹아 있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봤다.
개개인의 생각뿐만 아니라 ‘시대성’을 강조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지난 7월 7일 영화 <트릭> 언론 시사회에 이창열 감독은 “동시대에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평했다. 최광희 영화평론가 역시 “시대정신을 잘 담고 있는 영화”를 좋은 영화의 조건으로 지목했다.
그 외 의견도 몇 있었다. 류승완 감독은 “어떻게든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영화”라고 좋은 영화를 정의했다. 2008년 충무로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영화 <디어 헌터>와 <천국의 문>의 감독 마이클 치미노는 “보는 동안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해주는 영화”를 좋은 영화가 가진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토록 좋은 영화의 정의는 제각각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세계적인 원로 영화감독들조차 좋은 영화의 조건을 물으면 “난 아직도 좋은 영화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최근 국방부는 이런 수많은 의견을 뚫고 ‘좋은 영화’의 표본을 직접 제시했다.
최근 국방부는 영화 <제5열> 촬영 협조를 거부하며 “<국제시장>과 <명량>,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등 ‘좋은 영화’는 지원이 된 바 있다. 영화 <제5열> 시나리오를 검토했는데 영화에서 드러난 우리의 이미지와 군의 실제 이미지가 다를 수 있어 지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신연 감독이 지휘하는 영화 <제5열>은 군납 비리 관련 사건을 둘러싸고 군수사관에게 벌어지는 액션 스릴러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실시한 ‘발각된’ 주요 방산 비리 수사로 장성급 10명 포함 군인 총 38명이 기소됐으며 비리 금액만 총 1조 477억 원에 육박했다. 수사 결과만 봐도 실제 군과 영화 속 군 이미지는 비슷하다. 결국 국방부가 촬영 협조를 거부한 이유는 군 이미지 차이보다는 <제5열>의 시나리오 자체가 <국제시장>과 <명량>,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처럼 ‘좋은 영화’의 조건을 못 맞춘 탓으로 풀이된다.
지난 16일 <제5열> 제작진은 제작 시기를 내년으로 늦춘다고 밝혔다.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원신연 감독이 영화 <제5열>의 결론 부분을 <국제시장>과 <명량>,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과 비슷하게 수정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영화감독이 그렇듯 원신연 감독도 분명 ‘좋은 영화’에 대한 욕심이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