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상파 아나운서가 요즘 ‘프리랜서 아나운서 러시’를 바라보는 심경이다. 돌려 말하면 자신은 아직 “덜 잘나가기 때문에” 방송사에 몸담고 있다는 의미다.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프리랜서 전향을 선언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 가장 주가가 높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MBC 출신 김성주와 KBS 출신인 전현무와 조우종이다. 김성주와 전현무가 구축하던 ‘쌍두마차’ 체제에 조우종이 도전장을 던지는 모양새다.
MBC 출신 김성주는 입담에 탄탄한 진행 솜씨로 숱한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사진제공=티핑엔터테인먼트
전현무의 행보도 돋보인다. 일찌감치 JTBC <히든싱어>라는 대표작을 배출했고, 친정인 KBS에서는 유재석과 함께 <해피투게더>를 진행하고 있다. tvN <수요미식회>와 <문제적 남자>, <프리한 19> 등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조우종도 프리 선언과 함께 러브콜이 빗발치고 있다. MBC <라디오스타>를 통해 입담을 과시한 데 이어 <나 혼자 산다>로 고정 프로그램을 꿰찼고, tvN <예능인력소> 등으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KBS에 남아 사장까지 하겠다”던 공언을 예능 소재 삼아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모양새다.
프리랜서라는 수식어가 주는 보답은 꽤 달콤하다. 일단 ‘몸값’이 다르다. 지상파 방송국 연봉이 꽤 센 편이지만 부장급 이상이 되지 않으면 1억 원 미만이다.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도 월급을 받는 터라 회당 출연료는 2만~3만 원 수준이다.
게다가 방송국에 소속돼 있을 때는 프리랜서 방송인들의 주수입원인 ‘행사 출연’에 제약이 걸린다. 몇몇 아나운서는 주말을 활용해 몇몇 행사에 참여했다가 내부적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행사 1번으로 월급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지만 이를 할 수 없으니 갑갑하기만 하다.
KBS 출신 전현무는 ‘해피투게더’로 친정에 복귀했고 tvN ‘수요미식회’ ‘문제적 남자’ ‘프리한 19’ 등에서 맹활약 중이다. 사진출처=전현무 인스타그램
한 지상파 출신 방송인은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당직을 설 필요도 없다. 선후배 관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순번처럼 돌아오는 뉴스프로그램 진행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프리랜서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아나운서들의 프리랜서 선언을 부추긴 또 다른 요인은 ‘김영란법’이다. 기자가 아니어도 지상파 3사 아나운서들의 경우 ‘언론사’ 소속이기 때문에 법적용 대상자가 된다. 때문에 배정된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는 고액 연봉 연예인들과 편하게 술 한 잔 기울이기도 어려워졌다. 친분을 이유로 비싼 밥이나 술을 얻어먹었다가 괜한 구설에 오르면 회사 내에서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도 그들의 프리랜서 선언을 부추긴다. 아나운서들과 함께 출연하는 MC들의 회당 개런티는 최소 500만 원 이상. 이를 곁에서 바라보는 아나운서들은 씁쓸하기만 하다. 게다가 프리랜서인 연예인들 사이에는 그들만의 ‘라인’이 존재한다. 돈독한 선후배들끼리 서로 챙기는 사이에 방송사 직원인 아나운서들은 소외되곤 한다. 인기가 높은 아나운서들이 프리랜서 선언을 통해 연예기획사의 품에 안겨 매니저들의 보호 아래로 들어가 ‘연예인’으로 분류되려 하는 이유다.
최근 프리 선언을 한 조우종은 MBC ‘나 혼자 산다’ 고정을 꿰찼고 tvN ‘예능인력소’ 등으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사진출처=조우종 인스타그램
몇몇 연예 관계자들은 “자신의 위상을 잘못 파악하는 이들이 많다”고 꼬집는다. 성공하고 롱런하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예능친화적’ 인물이 많다. 입담을 바탕으로 탄탄한 진행 솜씨를 발휘하며 연예인 MC 곁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중계인의 자세를 취하며 정리를 잘하는 김성주가 <복면가왕>, <냉장고를 부탁해>, <슈퍼스타K> 등의 MC로 각광을 보이는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교양이나 뉴스 등에서 두각을 보였던 아나운서도 적잖이 프리랜서를 선언한다. 사실 이들이 설 자리는 많지 않다. 특히 몇몇 여자 아나운서는 “감춰두었던 끼를 보여주고 싶다”거나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다”며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적정 수준을 유지하지 못해 대중이 거부감을 느끼거나, 손발만 오그라들게 만들곤 한다. 방송사에 최적화된 아나운서가 안락한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다.
아나운서들의 잇단 프리랜서 선언은 ‘예비 아나운서’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끼치고 있다. 공채 아나운서 할당량이 날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규직보다는 경력 아나운서를 계약직으로 뽑기도 한다. ‘이들은 인기를 얻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 방송사의 선택이다.
한 방송사 인사팀 관계자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잘 키워놨더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떠나는 아나운서들이 야속하다. 남은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크기 때문에 인력 유출을 막으려는 자구책”이라며 “결국 정규직 아나운서 수를 줄이거나 방송 기회나 활동폭을 줄여서 프리랜서를 선언할 확률을 줄이려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