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서울 경동시장을 돌아보며, 설 성수품(과일류, 채소류, 축산물 등) 수급 및 물가동향을 점검하고 성수품을 구매하면서 시장상인의 여론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농림축산식품부 제공
23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 임금 상승세는 지지부진하다. 사람들이 받는 임금에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의 경우 지난해 2분기에 전체 근로자 월 평균 319만 5605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 오르는데 그쳤다. 이는 2년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었다.
3분기 월 평균 실질임금은 343만 2468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7% 올랐다. 액수로 따지면 9만 원 정도 오른 셈이다. 4분기 임금도 최근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그다지 오르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실질임금 상승은 지지부진한데 반해 먹거리 물가는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 우리나라의 음식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에 비해 4.5%나 뛰었다. 이러한 음식 물가 상승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3번째로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음식 물가 상승률 높았던 OECD 회원국은 멕시코(4.8%)와 터키(4.8%)뿐이었다.
멕시코와 터키 음식 물가 상승률이 높았던 이유는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최악인 때문이다. 멕시코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페소화 가치가 급락(환율 상승)하면서 수입 물가가 급등했다. 이로 인해 물가가 뛰면서 음식 물가도 덩달아 상승했다.
터키의 경우 지난해 실패한 쿠데타와 최근 잇따라 터진 테러 등 정치 혼란으로 경제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혼란에 리라화 가치마저 떨어지면서 물가가 크게 뛰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멕시코나 터키 정도의 정치적, 경제적 혼란이 없음에도 먹거리 물가가 크게 뛰면서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부터는 4개월 연속 음식 물가 상승률이 4%를 넘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문제는 올해도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할 확률이 높은데 반해 물가는 상승할 요인들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이 2% 중반 수준에 그치면서 3년 연속 2%대 저성장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성장률은 2.5%이고 정부가 내다본 성장률은 2.6%다.
글로벌 투자은행 10개사가 내다본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4%로 한은이나 정부보다 낮다. 노무라는 2.0%로 잡고 있어 자칫 1%대로 떨어질 가능성마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지지부진한 경제성장률로 인해 임금이 오를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여기에 조선과 해운업 구조조정과 기업들의 고용 전망 악화 등은 임금 상승 가능성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한은의 12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계수입전망 지수는 98로 기준치인 100을 밑돌았다. 이 지수가 기준치보다 낮다는 것은 6개월 후 가계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응답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이 더 많다는 의미다.
지난 11일 최상목 기획재정부 차관이 생활물가 점검 차 경기도 성남시 농협 하나로마트를 방문하여 과일, 계란, 채소, 육류 등 주요품목 가격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반면 물가는 연초부터 급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상 한파와 조류인플루엔자(AI)의 영향으로 설을 앞두고 먹거리 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23일 현재 배추 가격은 포기당 4019원으로 1년 전에 비해 61.9%나 뛰었다. 무 가격은 1개에 2600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85.4%나 급등했고, 계란 가격은 30개 한 판 가격이 9180원으로 1년 사이에 24.9% 뛰었다.
또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면서 각종 제조품 가격도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가격은 20일 현재 배럴당 55.49달러로 2개월 사이에 24.9% 상승했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올해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강 달러에 따른 환율 상승 등으로 물가 오름폭이 지난해보다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 또 소비 심리 위축과 고용시장 악화,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 등으로 가계의 실질소득은 줄어들 것으로 보여 소비 위축이 심각해질 수 있다”며 “자칫 저성장 속에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가 서민 생활 안정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