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발표’에 ‘새치기다’ 반발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12일 오전과 오후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종로(손학규)와 동작을(정동영)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 간판주자인 두 사람의 서울 동반 출격은 지지층 결집과 ‘대여 견제론’을 부추기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열세인 민주당의 총선 판세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손 대표는 12일 오전 기자회견 직전에 정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서울 북부벨트를 맡을 테니 남부벨트를 담당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두 사람이 긴밀한 사전 협의하에 서울 지역구를 결정한 듯한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울 지역구 선택을 놓고 보이지 않은 신경전과 치열한 정보전을 펼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치 1번지’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종로 지역구를 쟁취하기 위해 ‘물밑 암투’를 전개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 전 장관의 측근으로 총선 실무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K 씨는 13일 기자와 만나 “손 대표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며 울분을 쏟아냈다. K 씨는 “우리(정동영 측근들 지칭)는 오래전부터 정 전 장관의 종로 출마를 준비하면서 하부 조직까지 세팅을 한 상태고 최근에는 정 전 장관이 기거할 전셋집을 계약하는 단계까지 왔었다”며 “손 대표가 이러한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사전 협의 없이 종로 출마를 발표한 것은 배신행위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손 대표가 기자회견 전에 정 전 장관과 전화 통화에서 협의를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K 씨는 “회견 10분 전에 전화로 입장을 알리는 것이 일방적인 통보지 어떻게 협의냐”며 “서울 출마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정 전 장관이 회동을 제의했지만 손 대표가 차일피일 미루면서 당선 가능성과 대권 손익을 계산한 끝에 일방적으로 종로를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 정 전 장관의 득표율을 보면 종로(25.3%)나 동작을(25.6%)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K 씨는 “당 차원은 물론 우리와 손 대표 측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동작을보다 종로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며 “특히 종로는 민주당과, 서로 지지층이 중복되고 있는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간의 3자 대결이 유력한 반면 동작을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자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있어 동작을보다 종로의 당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전했다.
K 씨의 주장처럼 과연 손 대표 측이 종로를 두고 ‘새치기’를 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손 대표의 종로행이 당 주변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선택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 안팎에서 거물들의 ‘수도권 징발론’이 불거진 이후 손 대표는 경기 광명이나 파주, 현 주소지인 서울 중구 출마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하지만 손 대표는 예상을 뒤엎고 종로 출마를 공식화했다. 판세의 유·불리를 떠나 종로 역시 그간 염두에 두고 고민해온 지역이라는 게 손 대표 측의 전언이었다.
결과적으로 손 대표의 ‘깜짝 카드’로 기회를 놓친 정 전 장관은 어쩔 수 없이 서울 출마지역을 동작을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 전 장관 측근들의 주장. 정 전 장관도 12일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당과의 협의를 기다렸고 촉구하기도 했지만 협의는 없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손 대표와 정 전 장관은 정치 운명을 걸고 종로와 동작을을 각각 제2의 고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 두 거물의 엇갈린 ‘선택’이 과연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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